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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리뷰 : 침략자의 후예들이 꿈꾼 혁명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8. 2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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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침략자의 후예들이 꿈꾼 혁명

 

영화는 참으로 생소하다. 침략의 역사를 자행한 민족의 후손들이 자국의 과거를 비판하고 바로 잡으려 한 사건을 담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무엇보다 일본인이 자국을 상대로 혁명운동을 한 역사가 낯설다. 일본인은 보통 평화를 위해 다투지 않고 전면에 나서서 해결하는 것을 꺼린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 일본인들이 국가를 상대로 무력 투쟁을 벌였다는 사실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감독은 관객이 느낄 수 있는 이 낯설음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감독이 조사한 이 사건을 감독 자신이 바라본 시선에 따라 보여줄 뿐이다.

 

영화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라 불리는 한 집단의 투쟁 역사를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지도부가 없는 단체에서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세 부대(늑대, 대지의 엄니, 전갈)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등장한 순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제국주의 시대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고 침략의 역사를 이어나가는 것을 저지하고자 폭탄으로 항거한다. 영화의 사이사이에 삽입된 1974~1975년 당시의 영상과 신문 기사가 이 이야기가 과거에 실재했던 사건임을 증명한다.

 

투쟁에 참여한 자들과 이들의 지인들의 인터뷰가 영화의 중심 서사를 담당한다. 감독은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고 이들이 현재의 시점에서 기억하는 1970년대 무장 투쟁의 시절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 중 아라이 마리코라는 여성이 인상적이다. 마리코는 늑대부대를 지원했다는 죄목으로 12년간 고스게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였다. 그래도 그곳에 고양이가 있어 즐거운 추억이었다고 말한다. 그녀에게서 지난 행동에 대한 일말의 후회를 찾아볼 수 없다. 분명 힘든 시간을 보냈을 텐데 이상하리만큼 마리코에게서 평온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또 한 명의 주목할 만한 여성 에키타 요시코가 등장한다. 에키타 요시코는 대지의 엄니의 부대원으로 활동하던 1975년 체포됐다가 석방된 뒤 아랍에서 적군파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1995년 루마니아에서 일본으로 강제 이송되어 수감되었다. 영화에서 요시코는 형무소에서 보낸 편지로 그녀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녀가 70년대 한국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한국인을 보며 일본 반일 운동과 함께 연대하고 그 뜻을 일본 전달하기 위한 고민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가슴에 아릿하게 스며든다.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마냥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도쿄 형무소에 수감된 늑대부대의 일원 다이도지 마사시는 미쓰비시 건설 본사 폭파를 위해 사용한 폭탄이 사실 천황을 암살하기 위한 철도 폭파용 폭탄이었다고 고백한다. 미쓰비시 건설 본사 폭파 사건으로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많은 사상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것을 반성한다. 마사시는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실패한 사건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조직이 주장한 자기비판을 실천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2017323일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날은 에키타 요시코가 출소하는 날이다. 무장 활동 후 42년 동안 일본 사회에 발을 내딛지 못한 그녀가 60대의 노년이 되어서야 수용소에서 벗어난 것이다. 형무소 울타리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옛 동료들도 백발의 노인들이다. 그러나 카메라에 비친 그녀와 동료들의 눈빛은 노화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이야기 뒤로 무장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현재가 검은 화면에 하얀 글자로 나타난다. 그들의 현재가 현대 일본인들이 과거를 제대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조심스레 기원한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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