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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리뷰 : 그들의 만남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9. 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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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그들의 만남

 

고립된 사람들이 나온다. 예전의 기억에 갇혀 단절되어있는 두 사람, 제문(윤제문)과 해효(권해효)는 소담(박소담)의 유입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한국에서 좁은 책방을 운영하는 제문과 일본 후쿠오카에서 좁은 술집을 운영하는 해효는 28년 전에 만났던 후배 순이와의 사랑 때문에 생긴 마찰로 서로 만나지 않고 있었다. 제문의 헌책방을 드나드는 오랜 손님인 소담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후쿠오카를 가자고 제문에게 권유한다. 그 순간부터 제문의 귀에 들리는 해효의 목소리는 제문에게 새로운 움직임을 감행할 계기가 된다.

 

좁은 세상에 있던 두 사람을 보여주는 공간은 은밀하고 깁고도 좁다. 제문의 책방은 벽과 책장들로 구획되어 있어 답답해 보인다. 생각보다 공간이 넓은 해효의 술집도 기둥과 벽에 가려 화면에는 좁게 보인다. 그 공간 안에서 두 사람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영화에 사용된 윤동주의 시는 두 사람을 은유하듯 오래된 책장에 갇혀있거나 벽에 고정돼 붙어있다. 그 단호한 고집은 오랜 단절을 지속한 원인이다.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오랜 기간 살아오면서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었지만 만나지 않는다.

 

제문의 세계는 소담과 함께 움직이며 조금씩 넓어진다. 일본으로 건너가고 길을 걷고 하는 화면은 이전보다 넓고 더 많은 활기를 보여준다. 사랑은 예전만큼 단순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것을 젊은 소담의 말로 일깨운다. 서로 안부를 묻는 제문과 해효의 모습을 화면 밖에서 지켜보던 소담은 갑자기 화면에 등장해 둘이 사귀어요? 사귀는 것 같은데?”라고 말한다. 제문과 해효가 보여주는 집착 같은 미움은 때론 다른 시선으로 보면 둘이 애정하는 마음을 가진 게 아닌가하는 일말의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소담이 일본에서 만난 유키(야마모토 유키)와의 키스는 뜬금없으면서도 예전의 사랑의 방식과 다른 대척점으로 사용된다. 철탑 위에 올라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제문과 해효의 모습은 그들이 달라졌음을 알게 된다.

 

제문과 해효, 소담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각각 다른 이야기이다. 소담은 엄마와의 기억을 간직하고 일본에 왔다. 제문이 이상한 소리라며 후쿠오카 여행을 거부한 순간 소담이 혼자 떠난 여행기로 생각해도 충분하다. 제문과 해효의 만남 또한 그렇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교차하고 얽히면서 이야기가 충돌하고 연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소담의 등장과 퇴장을 기점으로 이야기가 끊어지는 것이 이 영화를 혼돈스럽게 느끼고 각각의 개체로 느껴지는 데 큰 몫을 한다.

 

이전에 보았던 장률 감독의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에서 보여준 모호한 시간과 공간의 교차는 난해하면서도 이상한 흥미를 이끈다. 더불어 귀신, 인형, 다른 언어로의 대화, 독약상자 안의 사탕 등 영화에 등장하는 이상한 소재들은 흥미를 증폭시키면서도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유발한다. 답답한 그 둘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도구로서 사용되는 소담의 역할이 장식처럼 느껴질 때쯤, 소담의 만남과 사랑을 다른 축으로 보여주며 관계에 대한 새로운 바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관객 리뷰단 박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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