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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릴리스> 리뷰 : 수면 아래로 들어가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8. 2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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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릴리스>

수면 아래로 들어가다

 

수중발레 연습을 마치고 바나나를 먹는 플로리안(아델 에넬)을 보고 한 친구는 왜 그렇게 바나나를 먹는 거야?”고 묻는다. 남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행동이 아니냐는 가시를 담은 말에 플로리안은 익숙한 듯 도발적으로 응수를 하지만 괜찮을 리 없다. 바나나를 먹는 방법으로 욕망을 드러낼 수 있다면 플로리안에게만 이런 지적을 하는 건 부당하다.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애초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영화 속 세 주인공은 성적 대상화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이 어떤 것인지, 누구를 향하는지 집중하며 성인이 되어가는 순간을 솔직히 보여준다.

 

마리(폴린 아콰르)와 친구인 안나(루이즈 블라쉬르)가 함께 있을 땐 아직은 아이같이 천진한 모습을 보여준다. 친구가 전부인 마리는 홀로 있을 땐 지루해하며 늘어지거나 벽에 기대어 화면에 나타난다. 그런 마리가 플로리안을 본 후 자신의 욕망을 마주하며 스스로 변하기 시작한다. 플로리안이 연습하는 것을 밖에서 바라보던 마리가 물속에서 더 잘 보인다는 플로리안의 말에 이끌려 물속으로 들어간다. 평온한 수면 위와 달리 아래에 보이는 격렬한 팔다리의 움직임은 낯선 생동감으로 마리를 압도시킨다. 마리가 플로리안에게 이끌려 그 이면을 발견하는 것은 수면 아래에 있던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플로리안은 욕망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다가 처음으로 또래인 마리에게 자신의 욕망에 대해 말한다. 화면은 초반 소극적으로 남자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가만히 있던 플로리안이 엔딩에 이르러 그들의 시선을 등지고 춤에 몰두한 모습 보여준다. 마리를 만나고 처음으로 욕망하는 시선을 보내는 주체가 되어 자신 있게 욕망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꾸는 안나는 자신을 던져가며 사랑에 돌진한다. 그 과정에서 친구인 마리도 떠나고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가장 원하던 순간에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을 소중히 하는 법을 배운다. 자신의 욕망을 응시하고 시도하며 상처받으며 세 주인공은 성장한다.

 

마리와 안나가 보여주는 우정이 마리가 플로리안과 하는 행동들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다를 뿐이다. 어디로든 흐르고 변할 수 있는 십대들의 욕망을 유동적인 물의 심상을 이용하여 표현한다. 마시는 물은 마리와 안나의 놀이도구가 되고, 수영장은 마리와 플로리안 사이에서 숨겨진 욕망을 풀어내는 역할을 한다. 겉과 속이 다른 수중발레의 특성 또한 또래친구와 어울리는 십대의 모습과 복잡하게 얽힌다. 수영장 대기실에서 다른 친구들의 목소리나 모습이 주인공들과 시종일관 겹쳐 보이며 서로를 비교하고 의식하게 만든다. 대상화된 성장기의 몸은 이성애를 기반으로 한 시선과 잣대에 끊임없이 검열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으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첫 장편영화이다. 감독은 20대에 만든 <워터 릴리스>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여성의 욕망을 시선에 담아 그 내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 스크린에 구현한다. 카메라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두 장면은 특히나 아름답다. 플로리안의 수영복을 입고 있는 마리와 마리의 말과 시선에 감화된 플로리안이 천천히 손을 잡는 장면, 또 더 이상 미련 없이 첫사랑으로부터 벗어난 마리와 안나가 수영장 물속에서 떠 있는 장면은 변화의 순간을 선명하게 캐치해 관객에게 그 순간을 오래 느끼게 하고 또 오랜 기억들을 복기시킨다.

 

-관객 리뷰단 박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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