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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파레> 리뷰 : 서늘한 재미를 주는 잔혹 우화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7. 2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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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파레>

서늘한 재미를 주는 잔혹 우화

 

영화는 등장인물이 언제 죽을지 예측하는 데에서 재미를 만들어낸다. 극의 초반 드라큘라 분장을 한 남자의 죽음이 우발적 살인에 의한 결과라는 게 대놓고 드러난다. 영화는 시작부터 진범 찾기에서 만들 수 있는 긴장감을 대신하여 사고를 수습하는 인간들의 어리숙한 행동들로부터 긴장감을 만든다. 거기에 살인이 벌어진 현장을 벗어날 수 없는 공간적 제한과 실내를 장식한 붉은 조명이 더해져 스산한 분위기를 한층 살린다. 독립영화에서 이런 장르적 스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낯설지만 즐거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건이 시작된 공간에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모인다. 희태(박종환)는 나약한 인간을 대표한다. 화면 속에 나오는 땀에 젖은 희태의 얼굴이 그의 불안함을 드러낸다. 영화 속 두 차례 우발적 살인사건은 침착함을 잃은 희태로부터 시작된다. 희태는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나려 발악할 뿐 자신이 벌인 일들에 대해 반성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자신의 상황과 자기 때문에 죽은 이에게 잘못을 돌린다. 소파에 누인 강태(남연우)의 시체 앞에서 울부짖는 희태의 혼잣말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그로 인한 비겁함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다.

 

강태는 무책임한 인간의 대표상이다. 강태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단 번지르르한 거짓말로 눈앞에 놓인 상황을 해결하려 든다. 그는 희태가 죽인 시체 처리를 위해 아무 상관도 없는 센(이승원)과 백구(박세준)를 범행 현장으로 들인다. 강태의 임기응변은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강태의 눈 밑에 새겨진 뱀 모양의 타투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 나오는 뱀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인다. 이브를 홀려 인류가 죽음이라는 형벌을 받게 했다는 뱀처럼 강태는 세 치 혀로 사람들이 비극의 길로 걸어 들어가도록 유혹한다.

 

센은 인간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강태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도 자신이 처할 위험보다는 물질적 보상에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강태의 뺨을 때리며 마약이 있는 곳을 말하라고 하는 센은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경멸을 느끼게 한다. 백구는 무감각한 인간이다. 시체처리반으로 사건 현장에 발을 들인 그는 타인의 불행을 그저 돈으로 환산한다. 비극의 결과물로 먹고사는 인간이기에 자신에게 다가온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무덤덤하다. 온 사방으로 튀는 피를 뒤집어써도 테이프로 온몸이 칭칭 감겨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희태와 강태 그리고 센과 백구, 네 사람을 맞이하는 비극의 현장에는 제이(임화영)가 있다. 사실 제이가 먼저 들어와 있는 곳으로 네 사람이 차례대로 걸어들어온 것이다. 제이는 네 사람의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벌이는 온갖 행각을 관망할 뿐이다. 서로를 의심하고 위협하는 상황들이 지루하게 느껴질 무렵 제이가 나서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제이는 권총 한 자루로 차례차례 인물들을 처리한다. 나뒹구는 시체 조각 더미를 지나 피가 낭자한 현장을 뒤로 한 채 제이는 사건이 벌어진 공간을 벗어난다.

 

영화 속에서 제이는 인간이 생의 끝자락에서 마주하게 될 절망을 상징하고 있다. 인간이 현실을 살아가며 자행한 어리석은 선택은 결국 제이로 형상화된 비극의 순간으로 향하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백미러 너머로 보이는 제이의 두 눈은 정면으로 관객을 응시한다. 제이의 눈빛에서 다음은 당신 차례야.’라는 그녀의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영화의 제목 <팡파레>의 사전적 의미에는 의식을 알리는 신호가 있다. 영화 속에서는 제이의 눈빛이 바로 비극의 축제를 알리는 팡파레일지도 모르겠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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