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구하기>
세상이라는 물 속에 빠진 내 자아 구하기
잠자리는 불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이다. 번데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애벌레 단계에서 허물을 벗으며 성충으로 탈피하는 곤충의 성장 방법을 불완전변태라고 한다. 불완전변태의 특징은 대게 애벌레와 성충의 모양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간간이 물에 빠진 잠자리의 모습이 삽입되어 있다. 물에 빠진 잠자리는 감독 본인이자, 감독 자신과 같이 이제 막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고3 친구들이다. 그들은 이제 곧 미성년에서 성인이 될 예정이지만, 애벌레와 같은 모습으로 성충이 된 잠자리처럼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만 같다. 바로 거기서부터 <잠자리 구하기>는 시작한다.
이 작품은 홍다예 감독이 2014년 고양시 주엽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2022년 대학 졸업 때까지, 약 8년간의 세월을 기록한 자전적인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대학입시와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 대한 고3 학생들의 코멘트로 시작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수능을 보고 대학에 가야 하는 일’이 절대적 진리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월식을 보기 위해 창문으로 모여드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화면을 통해 보이는 지구의 그림자와 달의 형상은 대학입시 앞에 선 학생들에게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연이은 장면에서는 물에 빠진 잠자리를 보며 감독의 자전적인 내레이션이 나온다. 잠자리는 날고 싶어 하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잠자리는 물에 빠져 그대로 죽고 만다. 물에 빠진 잠자리에 대한 감독의 내레이션은 사뭇 비극적이지만, 계속해서 기록을 이어 나가는 감독의 태도는 무언가를 찾아낼 것만 같은 희망을 느끼게 하고 동시에 관객은 감독의 이야기와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레 따라가게 된다.
감독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의 신분으로 친구들의 불편함과 가족들의 의문들 앞에서 꿋꿋하게 다큐멘터리를 찍어나간다. 왜 하필 지금 다큐멘터리를 찍냐는 가족과 친구들의 물음 앞에 감독은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고 답한다. 기록에 대한 욕망이다. 이에 더하여, 고3이기 때문에 지금 다큐멘터리를 찍어야 진정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감독 본인과 친구들의 고3 생활, 그리고 대학입시를 기록하고 보여주기 위해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영화의 중반까지는 대학입시에 대한 친구들의 코멘트가 계속 이어진다. 고3 학생들의 입을 통해 거친 직구처럼 던져지는 수험생이라는 신분에 대한 자조적인 한탄과 생각들은 결과주의, 엘리트주의, 기회주의, 자본주의에 잠식된 한국 사회의 작동 원리를 생각나게 한다. 학생들은 결국 경쟁의 원리 앞에서의 무력감, 수능 이후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불안을 토로하며 끊임없이 자기 내면과 지금의 상황을 관찰한다. 학생들의 태도는 처음에는 장난스러워 보일 수 있으나, 그 내용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다.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더 정확하게는 ‘수능’ 시험 후) 감독 본인과 친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수능 시험 전 가지고 있었던 고민에서부터 성인으로서의 인생이라는 것과 그에 따른 불안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으로 흥미진진하게 확장된다. 영화는 대학입시가 끝난 이후를 보여주며 후반부로 진입하고 그 이전의 질문보다 더 큰 질문들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감독과 친구들은 정해지지 않은 막연한 미래는 성인이 되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며, 이에 대한 불안은 죽기 전까지 해결할 수 없고 계속 가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다큐멘터리의 말미에는 시간이 흘러 취준생 또는 직장인이 된 친구들이 자신의 고3 시절을 회상하고 그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찾아가는 장면을 보여주며 감동적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물에 빠진 잠자리를 구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우린 이제 물에서 막 빠져나온 잠자리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자기 삶과 내면의 깊은 곳을 용감하게 들여다본 자전적 (반)성장 다큐멘터리에 공감됐기 때문이다. 다시 어디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또 스스로를 구하게 될지.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 관객리뷰단 최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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