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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넥스트 도어> 리뷰 : 가벼움의 정의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11. 1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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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넥스트 도어>

가벼움의 정의

 

 누구나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저 운이 좋게, 우연히 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던 우리가 죽음은 선택할 수 있는가.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는 책을 쓰는 작가다. 출간 사인회를 하는 곳에 친구 스텔라가 찾아와 과거 친하게 지내던 마사(틸다 스윈튼)가 암 센터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갔다. 서로 바빠 오랫동안 연락이 소원했지만 만나자마자 반갑게 인사하고 바로 대화의 물꼬를 틀 정도로 잉그리드와 마사는 한때 친밀한 사이였다. 잉그리드는 마사가 질릴 때까지 계속 찾아와 주기로 약속하고, 곧 그들은 어떤 누구보다도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관계가 되었다.

 

 영화는 아주 담백하고 절제된 연출로 '존엄사'란 주제를 다룬다. 1960년대 출생의 틸다 스윈튼과 줄리안 무어의 온도가 다른 명품 연기, 그리고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아름다운 미장센과 카메라 무빙까지 잘 짜인 그야말로 경이로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종군기자 시절, 그리고 혼자 딸을 낳아 키운 과거와 남편에 관한 옛날이야기를 풀던 마사는 갈수록 나빠지는 자기 몸과 과거의 자신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낀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며 노래를 즐겨 듣던 자신은 이제 없다고 우울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잉그리드가 마사의 존엄사 결정을 돌릴 수 없는 이유다. 자신의 끝은 본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으로 마무리 짓고 싶다는 열망이 집요할 정도로 끈질겼기에.

 

 <룸 넥스트 도어>를 보다 보면 '내가 저 상황이 된다면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앞서 제기한 죽음이란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 그 여부를 판단하게끔 말이다. 잉그리드는 지인을 통해 다크웹으로 손쉽게 안락사 약을 구입하고,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계획을 하나하나 세우는 마사를 보며 죽음이 가벼운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죽음이란 게 사람의 손 위에 너무도 가벼이 들릴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반해 마사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야유를 던지는 세상에 넌더리가 난다. 가망 없는 싸움에 지치고 낡은 육체가 더 추해지기 전에 끝내고 싶어 하는 바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둘의 의견이 모두 맞는 말이기에 지켜보는 이들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거나, 피로한 다툼 혹은 신경전 없이 오로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끝까지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라 피로감 없이 편안히 감상할 수 있는 영화였다. 바이올린의 잔잔하고도 섬찟한 선율이 자연스러운 소음과 어우러져 몰입감을 더했고, 영화의 절반 이상 등장하는 공간이자, 마사가 선택한 숲 속 주택 경관이 아름다워 보는 눈도 즐겁다. 존엄사를 다루기는 하나 부가적으로 진행되는 마사의 종군기자 시절과 남자 친구의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베트남전에 징집되어 전쟁에 다녀온 군인이 얼마나 힘든 PTSD를 겪는지, 이라크 전쟁에서 끝까지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가지에 남는 가톨릭 수사의 이야기 등 실제로 전쟁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절제된 연출로 찝찝하거나 지나치게 무거운 여운을 남기지 않는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죽음에 대해 상반된 생각을 가졌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잉그리드는 매일 새벽 마사가 말한 '죽음의 표시'인 방문이 닫혀있는지 찾아가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아직 살아있는 자신의 소중한 친구에게 아낌없이 애정 표현을 해주며 그를 위로하고 지지한다. 마사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는 잉그리드를 존중해 그가 무섭지 않도록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죽음의 이야기를 자제하려 노력했다. 또한 두려움을 딛고 그의 마지막을 함께해 주기로 결심한 잉그리드를 배려해 그가 외출한 사이 편지를 남기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해가 비치는 선베드 위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마사의 사인이 안락사인 것을 짐작한 형사가 잉그리드를 매섭고 집요하게 추궁할 때, 잉그리드는 처음으로 마사의 죽음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맞이한 죽음 역시 똑같이 무겁고 어려운 것인데 형사는 마치 마사와 자신을 죄인처럼 다그친다. 변호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조사를 마친 잉그리드는 마사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딸 미셸과 함께 둘이 마지막까지 머물던 숲 속 저택에서 함께 눈을 맞는다. 마사와 함께 본 눈과 다를 것 없이 내리는 그것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위로 내린다. 한없이 가볍던 눈의 무게가 잉그리드에겐 더 이상 가볍지 않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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