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드리의 솔루션북>
주저하지 말고 시작하라
영화감독 마크(피에르 니네이)는 자신의 새로운 영화가 제작사의 반대에 부딪히자, 영화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함께 숙모 드니즈(프랑수아 레브런)의 집으로 도망친다. 그는 그곳에서 누구의 간섭도 없는 자유로운 창작을 꿈꾸지만, 모든 것이 그가 바란 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숲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에서 마크는 더욱 바쁘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마무리 지어야 하고,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창작욕을 해소해야 하며, 나이 든 숙모의 건강도 걱정해야 한다. 그는 마치 혼자서 모든 무게를 짊어진 햄릿처럼 행동하는데, 당연하게도 그의 주변인은 마크의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행동을 감당하며 지쳐간다. 마크의 동료 샤를로트(블랑슈 가르댕)와 실비아(프랭키 월러치)는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제작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갈등은 커져만 간다. 과연 이들은 난관을 이겨내고 무사히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까?
예술가의 별난 기질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건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과장된 방식으로 보여 주면서, 그들이 ‘정말 그렇다’고 고맙게도 (혹은 불행하게도) 온몸으로 소리치는 영화이다. 영화는 각본의 유머러스함과 배우들의 재치를 통해 프랑스식 코미디의 유쾌함을 보여 주지만, 동시에 마크의 독단적인 행동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날카롭게 비춘다. 마감 일을 앞두고 다른 것에 몰두하거나 중요 서류 검토를 끝없이 보류하는 직장 상사,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단언컨대 많은 관객이 마크보다는 실비아와 샤를로트에게 공감할 것이다. 마크의 이정표로 존재하는 솔루션 북은 그런 관객과 마크의 동료들에게 또 다른 난관이다. “실천을 통해 배워라. 타인의 말을 듣지 말아라.” 마크가 솔루션북을 적어가는 순간, 관객과 동료들은 한마음이 된다. ‘제발 말 좀 들어라!’
다행스럽게도, 마크의 행동은 대부분 성공으로 이어진다. 그가 ‘봐, 내가 맞았지?’와 같은 표정으로 스크린을 돌아볼 때, 관객은 그의 동료들과 같은 표정을 짓게 된다. 인정과 함께 찾아오는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그가 앞으로도 같은 방식을 고수할 것을 예견하는 것까지. 영화는 분명히 예술가의 독창성을 조명하고, 때로는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함을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행위를 무조건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혼자만의 예술이 아니며, 창의성만큼이나 협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를 위해 숙모 드니즈를 등장시킨다. 드니즈는 마크와 동료들 사이의 소통을 돕고 마크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인식시킴으로써 예술가의 자유와 책임 사이의 균형을 말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마크가 유독 자신의 작품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함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그는 편집 과정조차 기피하는데, 창작의 ‘결과물’을 두려워하는 태도는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진다. 완벽주의 예술가의 눈으로 그를 보면, 일편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창작물을 내보이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창작의 열정에서 벗어나, 완성된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느껴질 아쉬움, 그리고 타인의 평가에 대한 걱정과 닿아있다. 혹은 앞으로의 창작을 저해할지도 모르는 ‘경험’과 연결될 수도 있겠다 (기존 창작물은 누군가에게는 경험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비교 대상, 진부함이 된다.). 즉, 마크가 도망친 것은 단순히 자신의 영화가 아닌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인 것이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2013년 작품 <무드 인디고> 제작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시골 마을로의 도피, 영화가 아닌 광고로만 자신을 인식하는 주민들, 몸으로 음악을 만들어 내는 독특한 장면 등은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이 투영된 결과물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영화를 감상하면 감독의 세계관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관객리뷰단 조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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