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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범죄들> 리뷰 : 기괴하고 난해한 신인류의 진화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7. 2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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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범죄들>

기괴하고 난해한 신인류의 진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들은 오랜 세월을 두고 진화(進化)되어 왔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適應)한 개체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개체는 멸종(滅種)되고야 만다. 현존하는 지구의 유일무이한 최상위 포식자인 호포 사피엔스(인간이라고도 불리는 종) 역시 이와 같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갈림길을 무수히도 겪어왔으리라. 그렇기에 굴곡진 자연사 속에서 기어코 살아남은 종자가 생태계 피라미드의 최고층에 올라 군림하는 게 자연스러운 순리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45억 년 지구의 역사 중 말엽의 100만 년을 겨우 차지하는 인류가 그 짧은 시기 동안 초래한 지구의 삼중위기(기후 비상사태, 생물 다양성 붕괴, 만연한 오염)를 목도하고 있노라면 자연을 상대로 오로지 생존에 목적을 둔 인류의 투쟁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행위는 아니었을지 의구심이 생겨난다.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인류의 존립에 대한 의문의 연장선에서 본인의 작품 <미래의 범죄들>을 통해 인류가 자초한 생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간의 신체가 진화할 수 있을지에 관한 질문을 제시한다.

 

 감독은 플라스틱(plastic)의 섭취에 기반을 두고 인류의 진화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펼쳐나간다. 영화의 첫머리, 모로 누운 채 부식된 배를 배경으로 홀로 해변에서 놀고 있는 소년 브레켄(소조스 소티리스)이 등장한다. 눈에 보이는 이것저것 집어 들어보는 브레켄의 뒤에서 거기서 주운 것을 함부로 먹지 말라.’라는 엄마 듀나(리히 코르노우스키)의 당부 어린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어진 장면, 세면대 아래에 쭈그려 앉아 플라스틱 휴지통을 씹어먹는 브레켄이 등장한다. 입가에 흰 거품을 내며 게걸스럽게 휴지통을 뜯어먹는 아들을 지켜보는 듀나의 경악스러운 표정은 관객의 놀라움을 대변한다. 아들의 특이성(합성 플라스틱 수지를 분해하는 소화기관의 기능)을 받아들이지 못한 듀나는 결국, 존속살인이라는 죄를 범하고야 만다. 듀나는 브레켄의 주검 옆에서 아들의 친부이자 전남편인 랭(스콧 스피드먼)에게 전화를 걸어 괴물의 시체를 가져가라고 통보한다. 프롤로그에 담긴 브레켄의 짧은 생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상반된 입장이 충돌할 때 벌어질 비극을 예감하게 한다.

 

 듀나와는 달리 랭에게 있어 브레켄의 존재는 진화한 인류의 증표와도 같다. 플라스틱 식용화를 위한 비밀조직을 운영하는 랭은 브레켄의 존재를 적당한 시기에 세상에 공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싸늘한 주검이 된 아들의 몸을 냉장시설에 보관해 둔 것도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행위 예술가 사울(비고 모텐스)과 접촉한 것도 혁명적인 인류 진화의 증표를 되도록 인상적으로 알리기 위한 방안의 일환이었으리라. 영화가 설정한 시대적 배경은 과학 기술의 발전을 발판 삼아 신체의 변종이 자유로운 미래의 한 시기를 바탕에 두고 있다. (마치 장신구처럼) 신체 일부를 임의로 탈부착하는 시대에 사울은 진화가속증후군(Accelerated Evolution Syndrome)’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이 특이한 질환의 증세는 신체의 내부에서 기능을 알 수 없는 새로운 장기가 수시로 생겨나는 것이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체내의 변화를 사울을 하나의 예술 장르로 만들어 낸다. 사울은 그의 파트너 카프리스(레아 세두)의 도움을 받아 새로 생성된 장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그 장기에 타투를 새겨 넣는다. 그리고 시체검시기계 사크 안에 들어가 장기를 체내에서 제거하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사울의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그가 몸 안에서 생성한 기관이 밖으로 나오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가운데 내적 아름다움(Inner beauty)의 극치를 경험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인류가 세대를 거듭하는 동안 급변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발생한 체내의 돌연변이들은 유전인자에 잠재되어 있다가 예측하지 못한 어느 때에 발현되기도 한다. 영화는 이러한 유전적 특이성(혹은 진화)의 가능성을 사울과 브레켄의 장기를 통해 표현한다. 동시에 권력 집단의 통제권 내에서 허용되는 쾌락의 한계를 드러낸다. 고통과 감염의 공포가 사라진 시대에서 신체를 훼손하고 변형하는 것은 ()적 쾌감을 즐기기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 이 원초적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여 예술로 승화한다고 한들 성적 유희를 위함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크 안에서 사울과 브레켄의 장기를 헤집고 밖으로 들춰내는 과정을 감상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예술품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는 신체에 발전을 요구하지도 허락하지도 않는 시대의 압박이 만들어 낸 결과물로 보인다. 은근한 통제가 지배하는 시대에 내장 기관의 산업 폐기물을 소화할 수 있는 기능을 어필하며 새로운 인류의 등장, 즉 세대의 혁명을 예고하는 집단에게 가해진 폭력은 무감각(전동드릴로 후두부를 뚫는 이들의 표정을 보라)하여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 공기처럼 만연한 권력의 억압을 뚫고 합성 플라스틱바를 씹어 삼킨 사울의 마지막 얼굴에 피어난 황홀경은 과연 단순한 오르가슴이었을까. 아니면 진화를 한 결연한 의지였을까. 답을 내릴 수 없는 의문 앞에 혼란만 키워나갈 뿐이라 조금은 답답한 심경이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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