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의 판타지아>
잊고 있던 중요한 가치
동화 작가 주환(송훈)이 책 집필을 위한 조사 차원에서 딸 하영(윤하영)과 그의 친구들을 부른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각자 갖고 있는 꿈을 말한다. 형사, 변호사와 같은 직업을 말한 친구들도 있고, 돈 많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나 자신을 괴롭히는 아빠가 싫어 누가 그를 말려주면 좋겠다는 소원을 얘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하영은 꿈이 없다.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거냐는 물음에도 중요하지 않으니 생각해 본 적 없다,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인데도 원하는 것, 이루고 싶은 것이 없던 하영을 염려하던 주환은 정령의 편지를 건네며 정령을 진심으로 알면 소환할 수 있을 거라고 방학 숙제로 정령 소환을 제안한다.
이현지 감독은 작품 설명에서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의 표정과 감정들이 이 영화의 주제"라고 말했다.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감독의 염원은 과연 영화에 잘 담겼는가.
하영은 총 세 번 정령을 소환한다. 타인을 쉽게 무시하고 깔보는 도위의 아빠로 인해 택배 기사가 곤란해졌을 때, 부모님의 다툼으로 숨 막힌다는 동화가 요청했을 때, 가난을 못 이기고 가연과 자살하려던 가연의 어머니를 말릴 때. 소환 주문을 읊는다 해서 실제로 정령이 소환되지는 않았고, 정령을 부르면 기적처럼 일이 해결되었다.
택배 기사는 갑질하는 도위의 아빠를 참지 않고 멱살을 잡으며 사과를 요구했고, 아빠는 서둘러 사과하며 자신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센 택배 기사에게 어쩔 줄 몰라했다. 효은과 동화의 집에서는 남편을 무시하던 아내에게 억지 논리로 민원을 제기하던 이웃을 남편이 제지하며 갈등이 완화되었다. 하지만 가연의 집에서는 정령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힘을 합쳐 자살하려던 가연의 엄마를 설득하고 직접 일을 해결한다.
일련의 일들을 통해 관객은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처음 하영의 아빠가 하영에게 정령 소환 숙제를 내준 까닭은 하영이 꿈 없이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하영이 꿈을 찾게 된다던가, 무기력한 태도에서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식의 성장이 있었느냐 하면 이것 역시 애매하다. 영화의 결말은 가연을 구출한 뒤 친구들이 아지트에 모여 동이 트는 하늘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갑질에 대처하기 힘든 택배기사가 도위의 아빠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장면에선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희망을 주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가연이와 동반 자살하려는 그의 엄마를 설득할 때도 정령에게 기대지 않고 가연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진심 어리게 전달하며 결국 그들의 우정이 가연을 구하는 결과를 낳게 만들었다. 그러나 감독이 말한 이야기를 모두 전달하기엔 갈등 상황이 등장인물들과 제대로 어우러지지 못하거나 주인공이 갖는 서사가 부족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하영이 정령을 소환하게 된 계기와 그에 따른 과정, 마지막에 하영이 어떤 점을 얻게 되었고 초반과 비교하여 어떤 인물로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서사가 궁금했다. 중간중간 삽입된 프랑켄슈타인 영화나 강도 사건이 일어났다는 대사와 같이 등장인물들이 보는 소품, 콘텐츠들과 말하는 대사들이 흘러가는 이야기로 남을 뿐 제대로 된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것 역시 아쉬운 지점으로 남는다.
전개 과정에서 관객이 전부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고 아역 배우들 역시 최선을 다했다. 아쉬움이 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결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동이 트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들에게 정령은 어떤 것을 부여했을까.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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