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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쓰는 시> 리뷰 : 어우러진다는 것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4. 2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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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쓰는 시>

어우러진다는 것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연결사, 정영선 조경가는 본인을 이렇게 소개했다. 자연과 새소리, 바람 소리, 지극히 일상적인 소리가 맞물리며 눈과 귀를 사로잡은 도입부는 마치 직접 선유도 공원을 방문한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공원 속 아이는 뛰어다니고, 앉아보고, 자연으로 꾸며진 공원을 둘러본다. 인간이 만든 공간이 자연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비추는 화면은 곧 한반도 전체를 띄우며 도입부를 마무리 짓는 것이 인상 깊다.

 

 <이타미 준의 바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의 도시> 등 건축물을 통해 사람과 공간을 탐구해 온 다큐멘터리스트 정다운 감독의 신작인 <땅에 쓰는 시>는 정영선 조경가를 필두로 그가 가꿔온 조경, 그리고 사랑하는 한국의 자연을 소개한다. 일일이 들의 나무와 꽃들의 이름을 자막으로 달고, -여름-가을-겨울-다시 봄으로 돌아가는 사계절을 담는 동안 정영선 조경가의 손길이 닿은, 혹은 그가 영향을 받은 자연의 사계절 모습을 동시에 담았다.

 

 정영선 조경가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1호 졸업생, 최초의 여성 국토개발기술사다. 1984년 아시아 공원을 시작으로 수많은 미술관과 공원의 조경을 담당했으며 오설로 티뮤지엄, 최근 개관한 디올 하우스까지 한국 대부분의 조경은 정영선 조경가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단 하나, 보존이다.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되새기고, 잘 보존시켜 관리하고, 자연을 인간의 삶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하는 작업이 바로 조경이라는 것이다. 이는 상영 시간 내내 다른 후배 동료들에게서도 자주 언급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해 자연경관을 훼손하기보다 어우러지게 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정영선 조경가의 조경은 조화로웠다.

 

 정영선 조경가가 직접 작업에 착수하는 모습 역시 스크린에 그대로 드러난다. 작업을 하면서 지시하는 대로 작업하는 다른 기술자들과 조경을 의뢰한 여러 의뢰자, 그리고 현재 한국의 조경을 이끌어가는 2, 3세대 종사자들이 함께 출연하여 곁에서 지켜봐 온 그의 모습을 증언하고, 감독은 말들과 더불어 조경 작업의 과정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아무리 설계를 잘해도 기술자가 없으면 구현 못 한다는 말을 전함과 동시에 없던 산을 쌓고 꽃과 나무를 정해진 자리에 심는 기술자들, 이 공간을 찾아왔을 때 사람들이 따뜻한 위로를 받아 갈 수 있도록 대지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분석하는 조경가들. 정다운 감독은 정영선 조경가가 직접 도면을 수정하고, 어울리는 식물을 고민하고 작업에 착수하는 모든 이들의 작업기를 고스란히 영화에 녹여 영화를 보는 내내 땅 위의 모든 걸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말미에 다다르면 추운 겨울이 지나 다시 봄이 오면서 정영선 조경가의 손자가 그의 집과 정원을 찾는다. 직접 심었던 식물의 성장을 보며 생명의 소중함을 손으로 느끼고, 그 옆에 새로운 씨앗을 다시 심으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운다. 어린이들이 꿈꾸는 세계를 만들어 주고, 그 세계에서 사는 방법을 교육하는 정영선 조경가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세계 조경가 협회가 최고의 조경가에게 4년마다 수여한다는 제프리 젤리코상을 수상하면서 남긴 정영선 조경가의 소감 역시 인상 깊게 남는다. 모든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정신을 기르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의 염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적어도 정영선 조경가가 써 내려간 시들은 우리 땅에 남아 더욱 푸르르게 기억되길, 그리고 그가 땅에 쓴 시들을 보며 아이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자연이 계속되길. 영화관을 나서며 공원을 뛰어다니던 아이의 모습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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