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카스미>
있는 힘껏 신나게 도망치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시대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세상을 이루고 있는 인류는 저마다의 가치관과 개성에서 따라 자신만의 인생을 그려나가고 있다. 이에 반하여 세상의 한구석(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비중 있는 중심부)에는 여전히 관습적인 격식과 제도가 깊이 스며들어있다. 그런 연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르지만, 다르지 않게 살아가도록 구성된 모순적인 세상의 이치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평범’ 혹은 ‘보통’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곤 한다. 되도록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주변 사람들과 생의 주기(진학-취업-결혼-임신-육아의 과정으로 단순화할 수 있는 과정)를 맞추길 은근히 강요하는 것은 기본이고, 조금이라도 이 주기에서 벗어나거나 벗어나기를 시도하는 이들에게 염려와 애정을 앞세워 ‘제자리’를 지킬 것을 강제한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남들이 다 누린다는 ‘보통’이라는 게 너무도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이 빈번하게 다가온다.
<보통의 카스미>는 소바타 카스미(미우라 토우코)라는 인물을 통해 지금 이대로가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마음가짐에 대하여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남들의 시선에서는 ‘평범’과 ‘보통’의 위치로부터 한참 멀어져 있을지언정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만큼 아름답고 활기찬 시간인지 카스미를 통해 배운다. 카스미의 삶에는 거짓 없이 맑고 투명한 생기로 가득하다. 물론, 음대에 진학하여 첼로를 전공하였지만, 이를 살리지 못하고 고향에 내려와 부모님 댁에 빌붙어 생활하는 카스미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본다면 성공이나 희망이라는 긍정의 표현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하지만 카스미에게는 먹고살기 위해 노력하는 에너지가 풍성하다. 콜센터에서 상담을 할 때도, 고향 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한 보육교사의 업무를 할 때도 카스미는 최선을 다한다.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그림동화 작업도 맡겨진 일이기에 열심히 완성해 내는 근성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카스미가 너무도 멋지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카스미의 나날에 그림자를 지우는 건 오직 연애(혹은 결혼)이다. 카스미는 몇 번이고 자신은 결혼 같은 것에 관심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연애 감정 또는 성적인 관심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의사를 밝힌다. <보통의 카스미> 원제인 そばかす(소바카스)는 ‘주근깨’를 의미한다. 주근깨는 얼굴 군데군데에 생기는 갈색의 작은 점을 지칭한다. 까뭇까뭇한 주근깨가 박혀 있는 얼굴이 귀엽고 신비로운 매력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일상에서 주근깨는 화장으로 가리거나 레이저 시술 등으로 제거해야 하는 존재로 취급받곤 한다. 주근깨의 숙명이 카스미의 현재와 매우 많이 닮아 있다. 주인공의 이름이 소바타 카스미를 축약하면 원제와 같은 발음인 것은 우연이 결코 아닐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어도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울 수 있는 자신의 정체성인데, 주변의 간섭과 압박으로 인해 숨겨야만 하다니 답답하기가 그지없다.
이토록 매섭고도 매정한 세간의 시선을 ‘극복’ 하기 위해 카스미가 선택한 방안은 바로 ‘도망’이다. 이겨내기 위한 도주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카스미의 이러한 결정은 영화에서 여러 장면을 통해 암시되었다. 초반부의 저녁식사를 빙자한 소개팅 자리와 보육원 동료들과 회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서 카스미는 꾸준하게 톰 크루즈의 <우주전쟁>이라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유는 달리는 장면이 마음에 들어서. 카스미의 설명에 따르면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의 대부분에서 톰은 목적을 향해 멋진 자세를 유지하며 달린다. 그런데 <우주전쟁>에서의 톰은 뒤에서 쫓아오는 외계 생명체를 피해 볼품없이 내달린다. 살기 위해 마구잡이로 달리는 모양새가 카스미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마지막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도망치는 카스미로부터 상쾌함이 감도는 해방을 느낀다. 자신을 둘러싼 구속과 억압의 말과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신명 나게 도망치는 것도 꽤나 현명한 대안일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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