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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원> 리뷰 : 내 청춘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7. 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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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정원>

내 청춘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작은정원>은 들여다보는 맛이 있는 영화이다. 칠십을 훌쩍 넘긴 할머니들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본다는 게 신선하기도 하고, 저도 모르게 응원하는 마음이 피어난다. 카메라를 통해 명주동 할머니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감독의 시선을 따라 그녀들의 도전을 관망하는 시간이 따뜻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은 야속하게도 지나간 자리에 노화를 남기고 간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지구별의 생명들은 어쩔 수 없이 나이듦의 전철을 밟고 나아간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지닌 힘은 기대와 달리 강하지 않아서 살아가는 동안 주름진 내 모습이 초라하고 병약해진 내 모습에 힘겹게 느껴질 때가 종종 아니, 빈번하게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댁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 세월을 보낸 언니와 동생들이 있기에 명주동의 할머니들에게는 위태로운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 비친 그녀들에게는 오히려 짱짱한 삶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제 막 스물을 넘긴 청춘들이 자아내는 초록빛 생기와는 결이 다른, 인생을 채워나가는 동안 깊이 뿌리내린 심지로부터 비롯한 강인함과 비슷한 것이다. 이는 명주동 할머니들이 살아온 시간들이 혼자가 아닌 우리로 채워졌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작은정원>의 촬영 기간 동안 명주동 할머니들은 두 편의 작품을 완성한다. 첫 번째 작품 <우리 동네 우체부>는 동네에 비범한젊은 우체부와 명주동 할머니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엮어낸 단편 극 영화이다. 명주동 할머니들은 이 작품의 시나리오 작업에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 그래서일까. 명주동 할머니들은 상상인 듯 상상이 아닌 등장인물과 사건을 빌어 자신을 둘러싼 가까운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차기작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명주동 할머니들의 일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이다. 밖을 향해 있던 카메라의 렌즈를 자기 쪽으로 돌려 그녀들의 추억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 바라본 그녀들의 존재에 대한 속내를 진솔하게 그려낸다. 명주동 할머니들이 찍은 영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기준에서 별거 없는 인생이었을지 몰라도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 덕분에 우리의 인생은 특별한 것이 되었다는 고백처럼 느껴진다. 담쟁이가 우거진 담벼락, 할머니들의 자택 이곳저곳에서 진행되는 촬영은 투박하지만 정겹고 소담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하다. 영화의 현장이 참으로 명주동 할머니들과 닮아서 새삼스레 놀라움을 느낀다. 사람이 지닌 성정이 주변 환경을 물들일 때가 있다고 하는데, 명주동이 뿜어내는 따스함이 할머니들로부터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알아차림에 절로 마음이 뭉클해진다.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내려 가자

너와의 추억들로

가득 채울래

…….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넘겨볼 수 있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작은정원>의 막이 내리고 엔드 크래딧이 올라가는 동안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명주동의 활력을 책임지는 할머니들의 인생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것이다. 명주동 할머니들에게는 함께 인생의 희로애락을 나눠온 공동체가 건재하기 때문이다. 세월의 급류에 속절없이 끌려다닐지라도 함께 오늘을 추억으로 만들어 갈 동지가 있다면 기꺼이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지녀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명주동 할머니들을 통해 배운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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