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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리뷰 :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9. 2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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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리뷰 :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올여름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이 침수되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폭우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주거 취약 계층의 고충만이 적나라하게 남았다. 이들의 삶은 왜 항상 재난이 일어난 뒤에야 사회적인 주목을 받는 것일까,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전에는 주거 환경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 고민이 이어지는 와중에 마주한 <홈리스>는 참으로 시의적절했다. 영화는 집이 없는 어린 부부와 집은 있지만 마음 나눌 가족 하나 없는 독거노인을 통해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을 다룬다.

 

고운(박정연)과 한결(전봉석)은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찜질방과 모텔방을 전전한다. 자식인 우림(신현서)을 남들만큼만이라도 키우고 싶지만, 현실은 모델 하우스 침대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속상해할 뿐이다.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여 집을 계약하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으나, 이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증금을 되찾으려고 경찰에 하루가 멀다하고 연락해도 방법이 없다. 고운은 아이를 들춰 안고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한결은 배달 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쁘다. 보증금을 다시 모으기는커녕 찜질방에서 다친 우림이의 병원비도 겨우 마련한다. 우림이의 상처가 점점 심해지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집이 있어야 한다는 고운의 말에 한결은 어느 빈 주택으로 가족들을 데려간다. 왠지 익숙한 전개는 <기생충>을 떠올리게 한다. <기생충>은 계급 차이를 통해 빈곤층의 삶을 드러냈다면, <홈리스>는 어린 부부가 몰래 들어가서 살게 되는 주택조차 독거노인 예분(송광자)의 집이라는 점에서 소외 계층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예분은 집이 있지만 자식들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어 집에 드나들 사람이 없다. 배달하러 온 한결만이 예분의 말벗이 되어주고 전구도 갈아주며 실제 자식보다 더 살갑게 지내왔다. 한결은 예분의 집에 잠시 머물 생각이었기에 할머니의 흔적을 지우고 자기 집인 것처럼 행동하는 고운을 이해하지 못한다. 고운은 우림이를 좋은 환경에서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둘은 계속해서 갈등을 빚는다. 한결은 찜질방보다 예분의 집에서 더 잠을 이루지 못 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이에 예분의 행방은 미궁으로 빠진다. 영화는 배경 음악 없이 생활 소음과 우림이의 울음소리, 보일러실 소리만으로도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고운과 한결의 뒷모습을 흔들리는 화면으로 담아냄으로써 막막함과 불안감을 극대화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더 암담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고운은 진실과 마주하지만, 수중에 있는 돈으로 갈 수 있는 곳이 곰팡이 핀 반지하뿐이라는 현실이 지긋지긋하다. 보증금을 모으기 위해 애쓰는 한결에게는 연이어 고난이 찾아온다. 한결의 행동은 가난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지를 보여준다. 고운과 언쟁하던 한결 역시 할머니의 흔적을 지우는 데 동참하고 결국 할머니 집에 남기로 결심한다. 가난을 혐오하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기에 가난한데 아이는 왜 낳았냐, 혹은 게을러서 가난한 것 아니냐고 하는 말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고운과 한결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관객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 부부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고운의 경우 입양됐다가 부모에게 버려졌으며 한결은 쪽방살이하는 아버지와 오래전에 연락이 끊겼다. 대물림되는 가난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힘들다. 언제까지 할머니의 집에서 생활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면 커튼을 치고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마지막 장면은 언젠가는 끝날 불안불안한 평화로 느껴진다. 지극히 현실적인 엔딩에 무거운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게 된다.

 

최근 정부는 반지하 주택을 없앤다는 방침을 밝혔다. 누가 우리에게 관심이나 주냐, 이 할머니도 마찬가지라고 외치던 고운의 말이 떠오른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주거 취약 계층의 주거 환경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관심이 쭉 이어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그들의 삶을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여기지 않는, 나아가 타자화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필자 역시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가질 수 없는 자그마한 방구석에서 고민을 거듭한다.

 

-관객 리뷰단 박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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