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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다운> 리뷰 : 죽음, 태양을 피하는 단 하나의 방법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9. 14.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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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다운>

죽음, 태양을 피하는 단 하나의 방법

 

<썬다운>은 온통 죽어가는 것들 투성이다. 뭍에 올라 빠끔빠끔 숨을 헐떡이는 물고기 더미, 햇볕에 타 벗겨진 죽은 피부 세포, 도륙된 돼지의 사체 그리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생기 없는 닐(팀 로스)의 눈동자. 화창한 여름날의 휴양지에서 스며 나오는 서늘하고 음습한 기운에서 불길한 예감이 떠나지 않는다. 화려하고 활기 넘치던 일상이 순식간에 끈적한 파멸과 죽음으로 뒤덮이는 서사의 구조는 감독의 전작 <뉴 오더>와 유사하다. 그러나 감독 미첼 프랑코가 <뉴 오더>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군중을 매개로 권력을 향한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그렸다면, 이번 신작 <썬다운>에서는 회피하는 개인을 통해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무력(無力)을 나타내고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것은 바로 일몰(日沒). 옆으로 누운 채 반쯤 모래톱 아래에 파묻혀 있는 닐과 그 위를 오렌지빛 하늘로 채운 홍보 포스터에는 <썬다운>이 담고 있는 주제가 응축되어 있다. 모래 속으로 사라져 가는 듯한 닐의 형상은 저물어가는 삶을 말하는 듯 보인다. 그러한 닐을 보며 미첼 프랑코가 선사하는 죽음으로 향하는 인생에 대한 사유에 자연스레 빠져든다.

 

영화의 시작은 실로 평화롭다. 화면은 부유한 계층의 여유로운 휴가를 단편적으로 나타낸다. 고급 리조트에서 수영을 즐기는 조카들, 마사지를 받으며 휴식을 취하는 앨리스(샤를로트 갱스부르) 그리고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무표정한 닐. 휴양지에서의 시간을 맘껏 누리고 있는 네 사람에게서 즐거움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영화의 질감은 앨리스가 전화로 모친의 위독한 상황을 전해 듣는 순간, 불안과 슬픔으로 전복된다. 급히 짐을 꾸려 공항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결국 모친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앨리스는 감정적으로 무너진다. 이 장면에서의 인물들의 위치가 의미심장하다. 앨리스와 그녀의 자녀들은 서로 붙어 앉아 있는 반면, 닐은 그들의 반대편 좌석에 앉아 거리를 둔 상태이다. 차 안의 두 그룹은 앞으로의 전개를 조금은 예감하게 한다. 공항에 이르러 닐은 호텔에 여권을 두고 왔다며 앨리스와 두 조카를 먼저 런던으로 보낸다. 그리고는 택시기사가 이끄는 대로 아카풀코의 어느 낡고 작은 호텔에 짐을 풀고는 해변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일광욕을 즐긴다. 닐의 여행 가방 안쪽에 꽂혀있는 여권이 너무도 뚜렷하게 보여 어이가 없을 정도다.

 

닐은 처음에는 호텔 분실과 영사관 휴일을 핑계 대며 거짓말을 만드는 노력을 하지만, 나중에는 이마저도 놓아버리고 해변에서 유유자적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닐의 모습은 방금 모친의 부고를 들은 사람이 할 행동이라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부모의 죽음을 정리하는 책임은 자녀들에게 있다. 그중 가장 첫 번째 자식이 부모의 장례를 이끌기 마련인데, 닐은 그런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닐의 기행에 가까운 회피는 의도하지 않은 비극이 따라붙는다. 닐을 찾으러 온 앨리스는 닐의 집안이 막대한 자산가임을 알게 된 택시기사의 욕심으로 총살당한다. 한순간에 고아가 된 앨리스의 자녀들은 닐에게 증오와 경멸의 눈빛만 보낸다. 애초에 닐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한 인물이다. 자신에게 남겨진 유산과 권리를 앨리스에게 넘겨주고 그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그의 결심은 무실할 뿐이다. 격변의 상황에 중심에 선 닐은 그저 무덤덤하고 무기력한 모양이다. 앨리스의 죽음을 알게 된 순간을 제외하고는 그의 얼굴에서 도무지 감정을 읽어내기가 어렵다.

 

<썬다운>은 제목이 무색하리만큼 영화에서는 해가 지는 장면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 부신 태양이 하늘 꼭대기에 자리한 한낮이 주 배경이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만물을 생동하게 만드는 태양빛이 닐에게는 너무도 밝아서 세상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게 하는 모양이다. 태양광에 시각을 빼앗긴 여파인지 영화는 후반부로 향할수록 진하게 돼지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닐의 환각을 점점 진하게 드러낸다. 사육장에서 길러진 돼지(를 비롯한 온갖 가축들)의 마지막은 죽음이다. 그리고 그 죽음의 대가로 인간은 재산을 불린다. 닐의 환시에서 나타난 갈라진 배 옆에 나란히 진열된 내장들과 피로 흥건한 바닥에 모로 누운 도살된 돼지는 어째서인지 닐의 형태와 겹쳐 보인다. 닐의 집안이 도축업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도축되어야 할 돼지의 말로가 정해져 있듯 태양을 벗어나려는 인간에게 주어진 결말이 오직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목도하는 순간이다.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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