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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리뷰 : 누구를 사랑해야 하나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9. 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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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누구를 사랑해야 하나

 

주인공 율리에는 러닝 타임 내내 고뇌한다.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싶어 하고, 끊임없이 나아가고 싶어 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인생은 좀처럼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델마>, <오슬로, 831>로 유명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오슬로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으로 인물들의 욕망과 고민을 가감 없이 다루고 있다. 그러나 15세 이용가라고 하기엔 노출 장면과 선정적인 장면이 많았고, 성적인 대화도 서슴없이 하는 편이라 청소년들보다는 약관을 넘긴 성인 관객들이 더 영화에 공감하며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영화는 한 장이 끝날 때마다 단시간 영화가 암전되는데, 관객들은 이 간극으로 인해 이야기의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느껴졌다. 또한 카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율리에를 중심으로 화면을 채우고 있다. 그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 그로 인해 율리에가 결정하는 대로 전개가 펼쳐지는 것이다. 맞다. 이 영화는 율리에라는 사람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생 이야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영화엔 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라는 제목이 붙었을까? 필자는 율리에가 걷는 여정에 사랑이란 감정이 빠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 감히 생각해보았다.

 

율리에는 쉽게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다. 의학을 공부하다가, 자기 내면을 연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해 심리학으로 전과했다가, 다음엔 갑자기 사진을 공부하고 싶다며 서점에서 일하며 필요한 돈을 충당해 공부를 시작했다. 율리에는 이런 자신의 행보에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잘라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그가 그동안 쌓아온 공부도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다면 뭐든지 치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람 간의 사이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고, 그들 각자 가지고 있는 감정과 생각 또한 같지 않다. 율리에는 그 사실을 악셀과 사귀면서 알아갔다.

 

그러나 발전하는 삶을 원했던 율리에는 계속 제자리걸음인 자신의 옆엔 이미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많은 팬들을 보유한 성공한 만화가 악셀이 자리하고 있으니 스스로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속적으로 그와 가치관 문제로 다투면서 감정의 골은 깊어갔다. 그 결과가 바로 에피소드2. 율리에는 악셀의 전시회에서 나와 누구의 파티장인지도 모르는 곳에 들어가 에이빈드를 만나게 되고 둘은 그들이 지칭하는 "바람피우는 행위"는 아니지만 서로의 가장 깊은 속살까지 꺼내 보이며 짧고 굵은 밤을 보내고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율리에는 그날 파티장에서 만났던 에이빈드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여기서 율리에가 악셀에게서 에이빈드에게로 달려가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글 앞머리에 서술했듯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의 시간이 멈춰 커피를 내리던 악셀도, 길을 걷는 행인도, 하다못해 하늘을 나는 새조차 그를 막지 못한다. 오직 에이빈드가 있는 곳 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율리에의 표정은 후련하다 못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것을 모두 던져버린 것처럼. 이게 보통의 사랑 얘기 영화라면 율리에가 새로운 사랑을 찾고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는 작품이 아니다.

 

율리에는 끊임없이 사랑했지만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 악셀과 사귀는 동안 그는 눈에 띄는 사진가로서 발전하지도 못했고, 자신의 몸을 뉠 집이나 돈을 많이 모으지도 못했다. 에이빈드와 사귈 때는 평범하고 특출한 부분이 없는 그와의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며 계획 없는 임신을 했을 땐 신경이 너무 날카로웠던 나머지 그에게 심한 말을 퍼붓기도 했다.

 

율리에는 자기 주체성을 찾으려 할 때마다 사랑을 포기했다. 의예과에서 심리학과로 전과할 때도, 경제적 독립과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을 때도, 마지막 에이빈드와의 결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에필로그에서 율리에는 혼자이나 근사한 집과 사진작가로서 제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어쩌면 사랑할 때 최악이 되는 이유는 사랑을 하는 상대가 타인이 아닌 나에게로 바뀌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 아닐까? 감독은 어쩌면 사랑이 가장 중요한 감정으로 올라온 현대에서 사랑해줘야 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묻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관객 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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