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말아> 리뷰 :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9. 6. 16:09

본문

<말아>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코로나로 인해 집에 틀어박혀 종일 게임만 하다가 잠들기 일쑤인 백수 주리(심달기). 주리는 병세가 악화된 할머니를 돌보러 시골로 간 엄마(정은경)를 대신하여 며칠 동안 깁밥집을 맡게 된다. 취업도 연애도 말아먹은 주리는 김밥을 말며 뜻밖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안 그래도 충분히 힘겹게 살아가는 청년들이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더 혹독하게 현실을 버텨내는 작금의 사태를 영화는 극적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청년들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감정적으로 호소하거나 청년들에게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지도 않는다. 그저 상황을 담백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등장 인물에게 자기 모습을 투영할 수 있도록 한다. 벌어지는 사건들이 어쩐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눈물을 찔끔 흘리게 만들다가도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디테일한 현실 묘사와 가벼운 유머로 경쾌하게 풀어내며 웃음을 자아낸다. 이렇듯 <말아>만의 통통 튀는 리듬에 매료되어 극장을 나설 때면 자그마한 희망과 함께 내일을 마주할 용기가 생겨난다.

 

주리는 엄마가 시골에 가 있는 동안 김밥집을 대신 운영하지 않으면 자취방을 빼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장사도 안되는 김밥집을 잠시 닫으면 되지 않냐며 화를 내지만, 어쩔 수 없이 신나라 김밥집을 맡게 된다. 주리는 툴툴거리면서도 열심히 엄마의 김밥 비법을 전수 받는다. 김밥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김밥을 처음 싸는 주리는 재료 하나하나를 다듬고 볶고 밥을 양념하고 손질한 재료를 가지런히 놓아서 둘둘 말아야 하는 모든 과정에 서툴다. 주리의 손에서 탄생한 김밥은 옆구리가 터져있고 어딘가 엉성하다. 그래도 주리는 연습을 거듭하며 제법 그럴듯한 김밥을 만들어낸다. 김밥 꽁다리를 집어 먹고 미소 짓는 주리의 얼굴에서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비친다. 주리는 김밥을 말고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무기력한 일상에서 벗어난다. 얼음도 제때 얼리고 빨래도 하고 방도 말끔하게 치우면서 오늘을 충실히 살아간다.

 

한 끼 밥값이 만 원을 훌쩍 넘는 시대에 김밥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다. 신나라 김밥집은 사람들이 식사를 해결하고 위안을 얻는 장소일 것이다. 그런 김밥집에서 주리가 마주한 첫 손님은 바로 취준생 원(우효원)이다. 주리는 칼질하다가 손님이 들어오자 놀라서 손가락을 베이고 원은 주리가 다친 게 자신 때문인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밴드를 가져다준다. 주리는 원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전 애인과 찍었던 영상을 보며 울적해 하고 전 애인의 SNS를 염탐하며 한숨짓던 주리에게 새로운 설렘이 찾아온다. 어느 날 우연히 주리가 시험장에 늦은 원을 스쿠터로 데려다주면서 둘은 더 가까워진다. 주리는 꽉 찬 김밥 속처럼 오늘을 알차게 보낼 뿐만 아니라 내일이 기대되는 나날을 보낸다.

 

주리는 캠코더로 자취방 구석구석과 직접 요리를 해 먹는 모습을 촬영한다. 이는 미래의 어느 힘든 날에 꺼내 볼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이 꽤 행복한 순간임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흐뭇해진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엄마로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는다. 불행은 불현듯 찾아왔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주리와 엄마의 관계는 더 돈독해지고 주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앞서 엄마는 주리에게 잔소리하고 주리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투닥거리는 모녀 관계를 현실적으로 드러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면, 그래도 힘든 순간에는 함께 담배를 피우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의지하는 주리와 엄마의 모습은 감동을 선사한다.

 

엄마는 장사가 잘 안돼서 김밥집을 닫으려고 한다. 주리는 더는 엄마 손을 벌리지 않겠다고, 그러니 계속해서 좋아하는 김밥집을 운영하라며 취업을 준비한다. 엄마가 옷장에서 꺼내준 정장을 위에 입고 아래는 추리닝을 입은 채로 화상 면접을 본다. 대학을 중퇴하고 마땅한 스펙이 없는 주리에게 현실의 벽은 막막하다. 그럼 무엇을 잘하냐고 묻는 면접관의 질문에 주리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김밥을 잘 만다고 답한다. 이후 엄마의 김밥집에 취업하여 배달을 하고 홍보를 맡는다. 코로나로 인해 자영업자와 취준생이 처한 현실을 담담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힘든 시기를 버텨내는 우리의 공감을 자아내는 동시에 등장인물들이 우리와 함께 어딘가에서 꿋꿋하게 살아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며 나도 힘내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영화는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지 않지만, 필자는 어쩐지 한 마디 얹고 싶다. 모든 것을 다 말아먹은 것 같고 미래에 아무 희망이 없어 보여도 우리의 고통은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영화 속 배경인 여름이 지나가고 어떻게든 가을이 오듯이 아무리 힘든 일도 다 지나갈 것이며 그러다가 말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로 가자.

 

-관객 리뷰단 박솔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