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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리뷰 : 바람이 머무는 날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8. 2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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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리뷰

바람이 머무는 날

 

영화 <녹턴>의 특별함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성호와 그의 엄마 틈바구니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동생 건기를 통해 보여진다. 내레이션이 전혀 없는 대신 종종 등장하는 건기의 인터뷰는 영화에 긴장과 동시에 불편한 기류를 지속적으로 불어넣는다. 고등학생 시절의 철없고 삐딱한 모습부터 시작된 그의 인터뷰는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특유의 거침없고 솔직한 표현으로 장애인 가족의 삶을 더할 나위 없이 신랄하게, 너무나 아프게 들춰낸다. 그리고, 그 또한 음악에 재능과 열정이 있었음에도 대부분의 관심과 투자가 성호에게 집중된 탓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피해의식은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었던 장애인 가정이 겪기 쉬운 상처를 짚어낸다. 형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애정과 지원을 형에게 빼앗겨버린 동생의 입장은 일종의 선의의 피해자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을 보태야 할 가족이 오히려 상처를 더하는 가해자로 보이기도 하며 관객의 마음과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영화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갈수록 관객에게는 조바심이 몰려온다. 건기의 말처럼 잘못된 배팅 같은 성호에 대한 엄마의 과몰입이 과연 어떤 형태로든 결실을 맺기는 할 것인가. 설혹 결실을 맺는데 성공한다 한들, 엄마 없이는 혼자서 면도조차 할 수 없는 성호가 과연 독자적인 생존을 이어갈 수는 있을 것인가. 막연하기는 건기도 다를 바가 없다. 음악은 진작에 포기하고 홀로 독립해서 핸드폰을 팔거나 이탈리아 현지 여행 가이드를 하며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지만, 지속 가능한 자기만의 일을 잡지 못하는 것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오랜만에 한집에 모여서도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방으로 나뉘어 각자의 것에만 몰두하고 있는 형제의 모습을 찍는 카메라는 이 가족이 처한 건조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 둘 사이를 어떻게든 이으려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건기의 격한 반발만 일으킬 뿐인 엄마의 구차한 모습까지 바라보고 있노라면, 언젠가는 무너질 절벽 끝에 매달린 위태로운 한 가정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음악적 천재성 자폐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성호에 대해 알고 싶어 시작했다. 찍다 보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찍을수록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관찰하고 기록하다 보니 10년을 훌쩍 넘겨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확실한 건 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는 것,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감독의 말처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도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히 파악하고 완벽하게 대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듯 더 이상 그들만의 외로운 싸움으로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계속 관찰하고 고민하고 대화하며 대책을 세우고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는 일을 지금이라도 당장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11년에 걸쳐 지켜본, 상처투성이 속에서 불투명한 미래와 싸우는 이 가족의 고군분투를 통해, 관객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그 가정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종영하던 날, 신영에서 이 영화가 개봉됐다. 그리고 일주일도 안 된 오늘,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를 둔 어느 엄마가 본인의 손으로 자신의 아이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처한 현실인 것이다. 드라마가 단지 배우의 연기력에 대한 찬사와 장애에 대한 단기적인 호기심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을 움직이는 단초가 되어 주길 바란다. 드라마에 열광했던 사람들이 이 영화를 꼭 보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어떠한 움직임이라도 다 함께 일으켜 내길 소망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성호의 러시아 공연에서 앵콜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조수미의 노래로 많이 알려진 권태희 곡의 바람이 머무는 날이 성호의 클라리넷과 건기의 피아노 반주로 연주되는 장면을 보며, 장애아를 둔 엄마의 노력이 더 이상 외롭고 서글픈 싸움이 되지 않는 날을 상상해본다.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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