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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리뷰 : 실증적 섹시함을 위하여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8. 2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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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실증적 섹시함을 위하여

 

60년이 넘는 인생 동안 단 한 번도 만족스러운 성관계를 가져보지 못한 여인, 낸시(엠마 톰슨). 그녀는 그동안의 삶에서 느껴보지 못한 오르가슴을 경험하기 위해 퍼스널 서비스 전문가 리오 그랜드(대릴 매코맥)에게 의뢰를 보낸다. 남편과 사별하고 은퇴 후 홀로 남은 중년 여성이 젊고 아름다운 청년과의 만남을 계기로 변화를 맞이한다는 이야기는 그 설정에서부터 어딘지 모르게 야릇함이 풍겨온다. 이런 류의 영화는 관객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할만한 격정적이고 대담한 정사 신으로 가득하리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자연스레 뒤따라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낸시와 리오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에로틱한 분위기를 차분하고 지적인 대화의 장()으로 활용한다. 두 사람의 대화는 줄곧 과감하고 거침없지만 결코 저열한 음담패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네 번의 만남을 통해 가장 내밀한 본성을 받아들이는 낸시(어쩌면 리오도)를 지켜보는 과정은 꽤나 감동적인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낸시와 리오는 연령에서부터 성별, 기질에 이르기까지 반대적 위치에 서 있다. 첫 만남이 이루어진 장면에서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은 이들의 양극단적인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낸다. 리오는 다리를 꼰 자세로 소파에 기대어 앉아 양팔을 넓게 늘어뜨려 그의 여유로운 상태를 짐작하게 한다. 반면, 낸시는 리오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소파에 살짝 엉덩이를 걸치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 낸시의 자세에서 그녀가 얼마만큼 긴장하고 있는지 충분히 느껴진다. 두 사람이 앉은 소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나 다른 두 사람이 앞으로의 만남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기대감이 일어난다. ‘반대가 끌리는 이유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서로 다른 낸시와 리오가 함께 있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감돈다.

 

영화는 단 한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은 장소(모던하고 심플한 장식의 한 호텔 룸)에서 일어난다. 지극히 단조로운 배경이 지루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낸시와 리오가 쌓아가는 대화가 단순한 구조에 변주를 더함으로 익숙한 장소에 새로운 자극을 더한다. 만남이 이어질수록 줄어드는 의상만큼 낸시를 짓눌러온 규율과 두려움이 가벼워지는 것을 체감한다. 남편과의 잠자리에서 해보지 못했던 체위의 목록을 만들어 와서는 빨리 해치워버리자며 채근하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성적 쾌감 그 자체를 추구하는 낸시의 변화는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낸시가 억압의 세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 리오와의 관계가 치정으로 이어지지 않음에 안도감을 느낀다. 표현에 어폐가 다소 있지만 낸시와 리오가 빚어낸 아가페적 에로스는 성에 대한 욕구를 진중한 자세로 존중하고 있는 이 영화의 태도를 한껏 표출한다.

 

영화 속 리오의 대사 중 실증적 섹시함을 위하여라는 표현이 있다. 비교적 초반에 등장한 이 문구가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모든 장면을 바라보며 영화가 말하는 그 실증적섹시함에 대해 의문이 더해간다. 의문은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하여 실증적인 섹시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는 미완인 채로 남겨져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확신한다.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 그것이 곧 섹시함이라는 것.

 

리오와 작별을 하고 홀로 남은 호텔 룸 안에서 낸시는 자신의 몸을 들여다본다. 거울 앞에는 앞선 장면에서 낸시가 표현한 바대로 가슴은 처지고 배와 허벅지에는 두툼하게 살이 붙은 주름진 피부의 늙어버린 여인이 서 있다. 자기 몸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길은 너무도 부드럽다. 수치심과 회한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느끼는 낸시에게는 사랑스러움만이 가득하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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