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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 리뷰 : 설령 다르게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게 뭐?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7. 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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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

설령 다르게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게 뭐?

 

인간은 자기가 경험해보지 않은 존재에 대해 세상에 없는 것이라 쉽게 규정하곤 한다. 그러다 이 세상에는 없다고 생각했던 존재를 맞닥뜨리게 되면 그것을 특이하고 이상한 비정상적인이라는 범주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세상에서 처음 본 그 존재가 세상의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그것이 지닌 기존과 다른점을 잘못되고 틀린것이라 인식해 버린다. 마치 괴물이 등장하기라도 한 듯 배척하고 두려워한다. <모어>는 이러한 세상의 치졸한 구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털 난 물고기(毛魚), 모지민의 삶을 이야기한다. 이상은의 담다디에 맞춰 기가 막히게 노래하고 춤을 추던 한 소년은 발레리노가 아니라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춤을 사랑하고 그에 상응하는 재능을 지닌 소년은 자라 모어가 되었고, 지긋지긋한 이 사회의 편견과 차별 가운데에서도 춤으로 자신을 분출한다.

 

<모어>는 인간 모지민의 일상을 따라가는 한편, 예술가 모어의 무용을 영상으로 담아낸다. 몇몇 장면에서는 전자보다 후자에 좀 더 힘을 주고 정성을 쏟고 있는 듯 보인다. 모어는 이랑의 너의 리듬신의 놀이를 비롯하여 정수라의 ! 대한민국’, 한영애의 조율’. 민해경의 서기 2000등의 노랫말에 맞추어 춤을 춘다. 선곡된 음악들은 모두 의미심장하게 모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내포하고 있다. 영화 속 모어의 공연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으로 서울 퀴어문화축제에서의 장면을 꼽고 싶다. 퍼레이드에 참가한 사람들과 동성애 반대 집회에 나선 사람들 사이에서 모어는 정수라의 ! 대한민국에 맞춰 공연을 펼친다. 차별과 혐오의 시대 앞에서 우리의 조국을 사랑하리라 외치는 모어의 과장된 표정과 아름다운 몸짓에서 자유를 외치는 당당함과 함께 변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서글픔이 진하게 느껴진다.

 

<모어>를 감상하다 보면 이따금 존 카메론 미첼의 뮤지컬 영화 <헤드윅>이 연상된다. 오프닝 장면(누군가의 뒷모습을 따라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 빨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서 화려하고 강렬하게 춤을 추는 모어)을 필두로 키치(kitsch)한 비디오 아트 그리고 어두운 밤거리를 홀로 걸어가는 전라의 뒷모습 등에서 <헤드윅>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장르적 특성을 뛰어넘어 <헤드윅>을 오마주한 이러한 장면을 통해 헤드윅을 향한 모어의 애정(혹은 존경)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연유로 현실에서 실제로 성사된 모지민(모어)과 존 카메론 미첼(헤드윅)의 만남은 놀라우면서도 이내 당연한 순리로 받아들여진다. 세상이 거부하려는 나의 다름을 표현하는 모지민과 존 카메론 미첼, 두 사람이 나누는 삶과 예술의 대화는 서로를 향한 응원처럼 느껴진다.

 

예술이 삶을 모방하는 것보다 삶이 예술을 훨씬 더 많이 모방한다.

 

오스카 와일드가 거짓의 쇠락에서 위와 같이 주장한 문장이 모지민의 삶과 겹쳐 보인다. 모어는 춤과 음악을 매개로(그뿐만 아니라 춤을 추는 장소, 의상, 메이크업까지 춤을 추는 주체인 모어와 하나가 되어) 현실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속내를 솔직하고 과감하게 토해낸다. 그리고 모어의 예술은 현실에 스며들어 모지민의 삶을 변화시킨다. 모지민이라는 한 인간의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20년을 함께 한 연인 제냐가 있고, 가족들이 있다. 모지민은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현실에서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모어를 통해 전달한다. 고향집 마당에서 아비가 빚을 져서 사주었던 발레복을 입고 춤을 추는 모지민의 몸짓은 아리도록 아름답다. 삶으로 예술을 빚어내고 그것을 다시 현실에 흩뿌리는 모어를 좀 더(more) 알고 싶은 순간이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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