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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의 딸> 리뷰 :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6. 2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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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의 딸>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경아(김정영)는 스크린 타임 내내 내 잘못이라는 말을 한다. 남편이 자신을 때리는 것도 제 잘못, 딸이 바르게 크지 못한 것도 제 잘못, 딸의 성관계 영상이 유포된 일도 모두 경아의 잘못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이게 정말 경아의 잘못인가?

경아의 딸은 건실한 선생님이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고 선생님들 간의 사이도 좋다. 경아는 그런 자신의 딸 연수(하윤경)가 항상 걱정이 된다. 집에 남자 숨겨놓진 않았지? 밤늦게 다니면 위험하다. 연수는 그런 경아의 걱정과 잔소리가 지칠 때도 있지만 엄마의 말을 따라 바쁜 와중에도 본가에 들르고, 영상통화를 할 때면 집 구석구석을 보여준다. 둘의 관계는 이상적일 정도로 사이가 좋은 모녀지간이었다.

영화는 연수의 전 남자친구 상현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뒤바뀐다. 이미 헤어진 연수를 못 잊고 계속 쫓아다니며 연락하던 상현은 단호한 연수의 반응에 그가 자신과 관계를 맺었던 영상을 연수의 지인은 물론 인터넷에 유포하는 짓을 저지른다.

상현의 행동으로 인해 연수의 인생은 완전히 무너졌다. 연수는 어딜 가든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거금을 들여 영상을 다 지웠음에도 주기적으로 사이트에 올라오며 자신의 휴대전화에는 모르는 사람이 기분 나쁜 전화를 걸어댄다. 결국 견디지 못한 연수는 학교를 그만두고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는 집에 틀어박혔다. 반면 경아는 연수가 못마땅하기만 했다. 이런 영상을 찍은 연수가 이해가 가지 않고, 그래서 연수에게 걸레가 따로 없다며 크게 화를 낸다. 연수가 받은 고통과 상처를 이해해주기는커녕 되려 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그어버린 것이다.

카메라는 인물들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관객들에게 시선을 공유한다. 동시에 인물 하나하나에 시선을 맞추어 그들의 시선 또한 관객들에게 전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제삼자의 눈으로 영화를 관람하면서도 때때로 인물들에게 몰입하여 사건의 전개를 쫓아가게 된다. 경아의 시점에서 봤을 땐 자신과 딸에게 일어난 일에 당황스럽고, 동시에 화도 나지만 연수의 시점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아무도 편을 들어주지 않아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 까맣게 물든 컴퓨터 화면을 깨뜨린 장면에서 관객들은 연수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다.

경아 또한 일상이 망가져 버렸다. 연락이 되지 않는 연수가 걱정되어 종일 휴대폰만 부여잡고, 집에 홀로 있을 때면 생전 남편의 폭력적인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려 그를 한없이 옥죈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주변 사람들 간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기고 끝끝내는 술을 마시며 복잡한 마음을 달래고자 한다.

두 모녀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에 끊임없이 자책하고,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영화는 모녀의 고통을 단순히 시각화하는데 지나지 않고 천천히 시간이 지나 어떻게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지까지 보여주었다. 연수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과 주변 친구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잘못이 아니며 본인을 괴롭게 했던 생각을 떨치고 제대로 법정에 섰으며 경아 또한 연수와의 대화 이후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란 강박을 벗을 수 있었다.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기술 속에 디지털 성범죄가 급증하는 세상 속에서 영화는 단 하나의 메시지만을 던진다.

이 이야기 속에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범죄를 저지른 사람만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또 상처받은 사람들 주위에는 그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을 보며 경아와 연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는 제대로 끝맺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 연수는 다시 교단에 설 수 있을까? 남편의 잔재와 자신이 두르고 있던 거짓된 잘못을 내려놓은 경아는 어떤 시작을 맞이할까? 하나도 시원하지 않은 결말이지만 그로 인해 관객들은 현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그들에게 연대하는 것, 이것이 영화가 맺어주는 진짜 결말이 아닐까.

 

-관객 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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