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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 리뷰 : 과거로부터 나의 빈칸을 채워가는 여행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7. 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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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

과거로부터 나의 빈칸을 채워가는 여행

 

영화의 주인공 지완의 처지는 이러하다. 세 편의 영화를 찍었지만 활발한 성적을 내는 영화감독은 아니기에 사무실에서 곧 쫓겨날 판이다. 아들과 남편에게 가정을 살뜰히 챙기는 엄마도, 일하느라 당당한 엄마도 아니다. 게다가 세상의 풍파를 기세 있게 헤쳐나가기에 지완은 나이가 들었고, 몸도 예전 같지 않다. 네 번째 영화는 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지완의 인생은 진퇴양난. 오프닝 씬처럼 먼저 출발했다 한들, 지완은 앞서나가는 사람들은 많은 거 같다.

 

그런 지완에게 페이는 별로지만 의미 있는 아르바이트 제안이 들어온다. 여성영화인 박남옥 감독의 영화이자 개관기념작으로 상영을 앞둔 영화 <여판사>에 빠진 사운드를 채워야 한다. 이 완전하지 않은 영화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조감독을 자처한 극장 직원과 함께 지완은 박남옥 감독과 영화 <여판사>의 작은 증거들을 쫓기 시작한다.

 

박남옥 감독의 딸부터 시작해서 영화인들의 아지트인 '명동다방'의 사장, 그녀와 함께 일했던 동료 편집자 옥희, 그녀와 작업한 배우, <여판사>를 상영했던 극장 등 지완은 박남옥과 관계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영화를 찍기 쉽지 않았던 시절을 보낸 그들의 이야기에는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또한, 영화와 함께 이미 오랜 세월을 보내버린 이들의 얼굴에서 나이 듦, 시간의 야속함이 느껴진다.

 

지완이 퍼즐을 맞춰가는 인물, 박남옥 감독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에서야 박남옥 감독은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으로, 여성영화인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앞서나간 영화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할머니 될 때까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검열하는 시선을 상대로 자신의 삶을 숨겨야 했다. 그렇게 노력했지만 영화가 뭔지 모르겠다는 불안을 안고 있었다. 박남옥 감독의 인생을 맞춰가는 퍼즐들은 현대의 여성영화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완의 마음을 콕콕 찌른다.

 

박남옥 감독과 '빈칸'과 마찬가지로, 지완이 사는 아파트 주변 공원에 일어난 자살사건 또한 지완의 불안을 표현하는 또 다른 장치로 작동된다. 지완은 옆집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을 자동차 근처를 계속 배회한다. 연탄재를 마시며 자살한 이름 모를 이처럼, 박남옥 감독처럼 결국 모든 이들은 허무한 끝을 맞이한다. 이러한 장치들은 마술적이고 기묘한 사운드와 장면 연출과 더불어 관객이 지완이 안고 있는 불안을 가늠하게 한다.

 

지완의 주변은 이 와중에 그녀의 마음 한쪽을 따끔하게 만드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남편은 꿈을 꾸는 아내에게 제대로 챙김 받지 못한다는 신세를 한탄하며 그녀를 타박한다. 아들은 친근한 듯 얄밉게 '일도 가정도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엄마'인 정체성을 콕콕 찌른다. 자신의 오랜 동료인 프로듀서는 불안한 미래를 이유로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영화를 만들기 쉬워졌다 한들, 정말 쉬워진 걸까? 주변 인물과 함께 그려지는 현실감 있는 에피소드는 지완이 영화 <여판사>'빈칸'을 채우는 것에 몰두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이제 이 일은 지완 자신의 채우지 못한 '빈칸'을 찾기 위한 여정이 되었다.

 

영화의 말미에서 지완은 새어 나온 빛 아래에서 영화 <여판사>의 빈칸 일부를 찾아낸다. 시대의 상황으로 인해 드러내지 못하고 흩어질 수밖에 없던, 숨겨진 필름 장면은 사뭇 감격스럽다. 그 장면은 영화를 향해 꿋꿋이 해온 박남옥 감독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것을 보는 주인공의 표정과 그 당시 시대의 상황을 말하는 편집자의 대사는 현실감 있게 그려낸 주인공의 불안이 차곡차곡 쌓여온 서사의 끝에서 마음 벅차게 빛난다. 그때 주인공의 빈칸은 채워졌을까? 비록 수완의 몸은 예전 같지 않고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적어도 '빈칸'을 채워갈 용기는 채워지지 않았을까 싶다.

 

여성영화인은 더 이상 생소한 존재가 아니며, 영화를 상영하는 방식은 변했다. 또한, 꼭 극장을 오지 않아도 영화를 볼 방법들은 많다. 세상은 변한다. 그 안에서 변화를 잘 받아들이는 이, 낙오되는 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오래된 것을 아직도 끌어안는 이 등 다양한 존재들이 있다. 변화의 파도에서 각자의 자리에 불안을 안더라도 계속 살아있길 바라는 염원과, 영화인과 영화에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따뜻한 인사를 남기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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