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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가 사라졌다> 리뷰: 나는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나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6. 19.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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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가 사라졌다>

나는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나

 

종종 주연이 아닌 조연의 연기에 꽂힐 때가 있다.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작품의 창작자가 의도했는가와는 상관없이 감상자에게는 소위 필 꽂히는대목이 있기 마련인데 5분 이상 진지할 줄 모르는 이 밝고 경쾌한 영화에 긴 여운과 잔상을 남기는 장면이 있다. 윤시내를 흠모하며 그를 좇는 사람들이 출연하는 이 영화에서 필자는 운시내(노재원)열애를 부르는 모습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아이돌 연습생을 10년간 하며 연습실 앞에서 기다리는 팬들 때문에 힘든 시절을 버텼다는 그는, 지금은 자신을 찾는 팬은커녕 노래하는 모습을 눈여겨보거나 귀담아 들어주는 관객도 없는 밤무대의 이미테이션 가수일 뿐이다. 그러나 과거 대중의 인기와 관심을 얻는 것으로만 향하던 노력의 지향이 이제는 오롯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

 

누군가가 펑크 낸 자리에 대타로 들어간 그는 훗날을 기약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무대이지만, 진심을 가득 담은 진지한 표정으로 윤시내의 열애를 부른다. 독백으로 차분히 시작하여 점점 고조되는 가사와 감정의 흐름이 특징인 이 노래는, 영화에서 가사의 내용이 마치 연인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 흠모하는 원작 가수에 대한 운시내의 마음이나 자신의 삶 자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느낌으로 새롭게 해석된다. 특히,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대목을 부르는 그의 처연한 눈빛과 내면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리는 듯한 음성은 그 자체로 마치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전부를 함축하듯 다가온다. 누가 지켜보든 말든 나는 그 누구보다 뜨겁고 진지하게 나의 삶을 사랑하며 살고 있다고……

 

문득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가 떠오른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하거나 찾았다 한들 그것에 제대로 된 열정 한번 쏟아붓지 못하고 산다. 이에 반해10년의 연습생 끝에 이미테이션 가수의 길을 걷는 운시내, 20년을 윤시내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왔던 연시내(오민애), 그리고 많은 이미테이션 가수들은 자신의 꿈과 선망의 대상을 향해 무던히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남의 뒤를 좇는다고 가짜라고, 거짓이라고 비난 받거나 멸시 받을 이유가 없다. 누구보다 뜨거웠던, 그래서 자신의 삶을 하얗게 태워버린 그들은 오히려 남들이 맛보지 못한 희열을 경험한 선망의 대상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영화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주제를 너무 심각하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외줄 타기 하듯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이미 대중의 기억 저편으로 상당 부분 사라진 윤시내를 불러내면서도 짱하(이주영)라는 유투버가 연시내의 딸로 등장하는 덕에 영화는 신선함을 잃지 않는다. 특히 유투버의 등장은 고전적인 방식의 로드무비에 진부하지 않은, 꽤나 젊은 감각을 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미테이션 가수가, 반대로 기성세대에게는 유투버가 낯설고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 세대를 대표하는 연시내와 짱하의 대립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부모 세대나 자녀 세대 모두에게 상대의 삶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연시내는 별풍선과 조회수 떡상을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 것 같은 짱하의 유투버 활동을, 반대로 짱하는 윤시내 따라하기에만 빠져 딸에 소홀했던 연시내의 일생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한 차에 올랐지만 각자의 목적이 달랐던 그들의 여행과 닮았다. 목적이 달랐기에 그 여정에서 필연적으로 서로 다투고, 경로를 이탈하거나 뿔뿔이 흩어져 각자 방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가 지향하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한 곳에 모였을 때 그들은 상대를 좀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오늘도 진짜에 한 발 더 가까이라는 이미테이션 가수들의 외침과 같이 진짜의 삶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을 뜨겁고 진지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와 같으면서 다른 타인의 모습이 드디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진짜 여행은 이제 시작되었다.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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