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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의 노래, 정태춘> 리뷰 : 시대를 위해 기꺼이 거스르는 자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5. 2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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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의 노래, 정태춘>

시대를 위해 기꺼이 거스르는 자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한 시대를 풍미한 음유시인 정태춘이 남긴 무수한 노래들을 토대로 쌓아 올린 작품이다. 회백색의 머리칼과 주름이 파인 얼굴 아래로 기타 줄을 튕기는 정태춘의 섬세한 손길로 시작하는 영화는 정태춘과 같은 시대를 지나온 이들에게 지난 40여 년의 세월을 돌아보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정태춘이라는 존재가 낯선 세대에게도 그의 노래에 담긴 사연과 의미를 곱씹어보는 시간을 선사함으로써 문득 눈가가 시큰해지는 감동을 전하고 있다. 감독인 고영재는 '정태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던 자신의 오랜 바람을 이번 영화를 통해 이루어낸 듯 보인다. 감독은 정태춘이 걸어온 삶 속에서 잘못된 관습과 억압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순간을 조명한다. 보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기꺼이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며 살아온 한 인간의 삶을 통해 감독은 관객에게 하고픈 말을 대신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정태춘이라는 인간을 말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주재료는 그의 노래이다. <시인의 마을>, <촛불>에서부터 <사람들 2019‘>, <정동진 3>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30곡에 가까운 정태춘의 음악으로 정태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자취를 집대성한다. 완곡을 열창하는 정태춘을 비추거나 삽입된 음악 위로 가사를 자막에 넣는 등의 장면을 주로 사용함으로써 영화는 오롯이 정태춘의 노래에 집중하게 한다. 하지만 콘서트 실황을 보고 있는 듯한 익숙한 장면과 노래 다음에 이어지는 정태춘과 그의 지인들이 남긴 인터뷰가 반복되는 편집은 영화를 조금 지루하게 만든다. 분명 정태춘의 노래는 감동을 주고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가 떨어지는 건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고집스럽게 정태춘의 노래를 중심에 세운 이유는 그가 노래를 통해 말하고 노래를 위해 저항한 시절을 영화에 담아내고자 함에 있다고 본다. 정태춘은 독재정권에 대항하며 80년대에는 얘기노래마당이라는 소극장 공연을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였고, 90년대에는 <, 대한민국....><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검열을 거부하며 스스로 불법이 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엄혹한 규제의 시대 속에서 한 개인의 투쟁이 들불이 되어 음반사전검열제가 폐지된 사건(1996)은 진정 역사에 기록될 만한 업적이다. 그 개인이 바로 정태춘이며, 정태춘은 그 이전(청계피복노조 후원, 전교조 합법화 지지 공연 등)에도 그 이후(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 촛불항쟁 등)에도 투쟁의 현장에서 노래를 통해 저항한다.

 

광주 콘서트에서 정태춘은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를 부르기 전, 광주의 아픔을 위로하고 처벌받지 않은 학살자들을 꼬집는 글을 읊는다. 그러자 한 관객이 "정태춘 씨! 난 여기 당신 노래 들으러 왔지, 당신 이념을 들으러 온 게 아니에요!"라고 외치고는 공연장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이 장면은 정태춘에 대한 세간의 양분된 시선을 응축하고 있다. 정태춘의 향한 응원과 격려 뒤에는 거부와 비난의 목소리도 따라붙는다. 정태춘이 사회문제에 대해 글과 그림 그리고 노래로 표현하는 행위에 대한 평가는 과거에도 지금도 어쩌면 미래에도 호와 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세간의 평가가 어떠하던 정태춘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세상을 향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정태춘을 비난한 관객이 떠난 콘서트홀에는 남겨진 이들의 긴장감과 함께 무대를 향한 집중력이 증폭되어 공간을 가득 채운다. 눈을 질끈 감은 정태춘의 묵직한 자태가 더욱더 빛나는 순간이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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