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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13구> 리뷰 : 몸이 말 하는 대로, 마음이 가리키는 대로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5. 2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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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13> 리뷰

몸이 말 하는 대로, 마음이 가리키는 대로

 

필자는 영화가 끝날 때쯤에서야 이 모든 것이 흑백이라는 걸 눈치챘다. 아니, 원래 컬러였던 영화가 마지막 부분에 흑백으로 전환되었다고 착각을 했다는 편이 더 솔직한 얘기다. 그만큼 영화는 단조로운 색채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찬란하고 감각적인 빛을 스스로 뿜어낸다. 많은 평론가들이 영화가 흑백을 선택한 것은 탁월한 판단이었다고 말을 하는데 필자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제법 수위가 높은 정사 신이 많이 등장하지만 컬러가 아닌 흑백이기에 지나치게 관능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육체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달콤한 대화를 매혹적인 장면들로 채워낸다. 셀린 시아마의 섬세하고 현실감 넘치는 시나리오와 고령의 나이에도 오히려 웬만한 젊은 사람보다 더 젊은 감성으로 영화를 연출해낸 자크 오디아르의 역량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가 선택한 무채색의 필름은 흔들리고 변화하는 심리의 흐름을 세밀하게 표현해야 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돋보이게 한다. 특히, 카미유(마키타 삼바)를 사이에 두고 교차하는 에밀리(루시 장)와 노라(노에미 멜랑)의 눈빛과 그에 이어지는 두 여인의 표정 변화는 매우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는 노라의 지적이고 우아한 모습을 바라보는 에밀리의 시선은 그의 매력을 분명하게 인식하지만 그것은 동경하거나 질투하는 것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심리로 읽혀진다. 반면에, 노라의 심리는 파티를 즐기는 에밀리의 밝고 생기 넘치는 몸짓을 바라보며 그에 대한 자격지심과 질투를 느끼는 감정적 흔들림으로 이어진다. 이 두 여인의 심리와 감정적 변화를 표현하고 미묘한 차이까지 효과적으로 대비시키는 것은, 그것을 훌륭하게 연기해낸 배우들의 능력 못지않게 흑백영화가 갖는 힘도 발휘됐음이 분명하다.

 

영화의 안목이 진가를 발휘하는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다. 파리를 배경으로 하지만 여행자의 낭만 어린 시각이 아닌 대도시에 거주하는 생활자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도시의 그 서늘하고 어딘지 모를 쓸쓸한 정서가 감각적인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영화 전반에 쌉쌀한 커피향을 풍긴다. 특히, 아직 자신의 정체성과 사랑을 찾아 방황하고 부딪히는 젊은이의 심리를 담아내기에 파리 13구 지역이 갖는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모습들은 영화의 좋은 배경이 되어준다. 파리 13구는 유럽에서 가장 큰 아시아타운이라 불릴 정도로 사회, 문화적 다양성이 풍부하다고 하는데, 바로 그러한 공간적 배경 속에서 주인공들은 어떠한 편견이나 차별적 시각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관과 취향을 추구하며 진정한 사랑과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

 

영화가 사랑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현재를 살고 있는 도시인들의 관계 맺음에 대한 고민도 품고 있다. 넘쳐나는 각종 스마트기기와 온라인 매체로 인해 사람들은 대면과 비대면의 소통으로 복잡하게 얽히고, 현실과 비현실의 혼재로 진실된 것을 찾기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다. 흑백영화의 중간에 엠버 스위트(제니 베스)의 생일축하 동영상이라는 가장 가식적인 장면만 유일하게 컬러로 처리한 아이러니는 이러한 현시대의 난제에 대한 감독의 문제 제기로 보이기도 한다. 어떠한 방식이 됐든 모든 관계 맺음이라는 것이 종국에는 서로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 상호 교감하는 것이라는, 이것과 반대되는 소통의 끝에는 공허함이 기다릴 뿐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몸이 말하는 대로, 마음이 가리키는 대로 나아간 영화 속 네 명의 젊은이들은 각자의 방황을 마치고 진정한 사랑과 마주한다. 물론 그곳이 최종 종착지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 감정의 흐름에 따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그들의 앞에 마주 선 사람이 현재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 말고 도대체 무엇이 더 중요할까.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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