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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보스> 리뷰 : 완벽하게 균형 잡힌 세계 아래 숨겨진 한 발의 총알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2. 1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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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보스>

완벽하게 균형 잡힌 세계 아래 숨겨진 한 발의 총알

 

어떤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 또는 시간과 에너지를 동시에 측정할 때, 둘 사이의 정확도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이 이야기는 저울 제조회사 블랑코 스케일즈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한 편의 사회풍자극이다. 극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은 블랑코 스케일즈의 대표 블랑코(하비에르 바르뎀), 무엇이든 저울처럼 공평함을 신조로 삼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꽤 유머러스하게,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 야심가는 자신의 회사 블랑코 스케일즈가 우수 기업상 최종 후보에 오르자, 수상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한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만큼의 완벽한 균형 잡기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수기업상 심사위원의 평가를 잘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간은 단 일주일이다. 짧다면 짧다고 말할 수 있는 이 일주일 사이에 블랑코 스케일즈에는 많은 일들이 들이닥친다. 정리 해고된 회계부 직원 호세(오스카르 데 라 푸엔테)가 회사 정문 앞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복직 시위를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문제가 시작된다. 블랑코는 눈엣가시인 호세를 내쫓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총동원하지만, 호세가 점거한 장소가 블랑코 개인의 사유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를 내쫓을 수가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블랑코의 30년지기이자 창립 멤버 2세인 미랄레스(마놀로 솔로)는 이혼 위기로 제정신이 아니다. 그의 온 정신이 아내와의 관계 정리에 집중되어있는 통에 회사 일이 온통 엉망진창이다. 블랑코는 옛정을 생각해 모르는 척 그를 안고 가려 하지만, 계속되는 사건 사고로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는 미랄레스의 사생활 문제를 해결하면 회사가 안정화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한편, 블랑코는 새로 들어온 마케팅팀 인턴 릴리아나(알무데나 아모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회사 일로 머리가 아픈 와중에 그는 릴리아나와의 관계가 휴식처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녀가 여타 다른 이들처럼 쉽게 끊어내면 끝나게 될 관계가 아니었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릴리아나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의 딸로, 블랑코가 끊어내면 끊어내려고 할수록 그녀는 그의 앞에 끈질기게 나타난다.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릴리아나의 행동에 블랑코의 숨이 막혀온다.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감독은 전작 <어 퍼펙트 데이>(2016)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유머와 풍자를 통해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리얼리티에 기반하여 어딘지 친숙한 느낌을 주다가도, 허를 찌르는 현실 속 이야기에 뒷골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노사 간의 문제, 인종 차별 문제, 이민자 문제, 권력형 외도 등 우리 현대 사회에 만연한 이슈들이 영화 곳곳에 녹아있다. 감독은 작품 전반에 걸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언급하는데, 이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역설하고 있다. 가족 같은 회사를 표방하며 누구나 원하는 꿈의 직장으로 그려지는 블랑코 스케일즈는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평이 맞지 않은 저울처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양쪽의 동등한 가치는 애초에 성립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절대적인 악인과 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이클 부블레의 'Feeling Good'이 흐르며 이야기는 정점에 치닫는다. 심사위원의 눈을 속이며 모든 것을 포장하는 블랑코와 결국 그의 장단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 모든 사회의 이슈들이 결국 자본주의의 거대한 틀 속에 있음을 나타내며 마무리된다. 우리는 희생된 노동자들의 절규는 잊은 채, 블랑코의 행위에 어느새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불공정한 것들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우리네 모습이 서글프다.

 

극 중 블랑코는 맞지 않는 저울의 균형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 한 발의 총알을 저울 아래에 숨겨 놓는다. 억지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용된 희생된 자들의 모습이 총알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자신의 이익을 취하며 기꺼이 블랑코의 총알이 된 이들은 조용히 침묵한다. 결국 모든 것이 일단락되어 완벽한 균형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우리들 또한 이 사회 속 한 발의 총알일지도 모른다.

 

-이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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