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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리쉬 피자> 리뷰 : 또다시 난, 너에게 달려가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2. 2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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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리쉬 피자>

또다시 난, 너에게 달려가

 

폴 토마슨 앤더슨의 신작 <리코리쉬 피자>는 청춘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거기에 이번 작품으로 처음 연기에 도전한다는 주연 배우들의 신선한 기운까지 더해져 영화는 영글어 가는 생기로 가득하다. 영화는 1970년대 초반 샌 페르난도 밸리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시작된다. 기나긴 행렬 속에 서로를 사랑하게 될 남녀가 마주 서 있다. 여자는 25세 아르바이터 알라나 케인(알라나 하임), 남자는 15세 학생이자 아역배우인 개리 발렌타인(쿠퍼 호프만)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한 화장실 배관에서 뿜어 나오는 물폭탄이 암시하듯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의 삶에 있어 급격한 변화를 불러온다. 그리고 영화는 알라나와 개리의 사랑이 완성되는 과정을 청춘들의 무모하고 치기 어린 성장담으로 담아낸다.

 

알라나와 개리가 나누는 거의 모든 대화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는 알라나와 개리가 상반된 성향을 지녔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알라나와 개리의 감정의 줄다리기는 두 사람이 처음 마주한 장면에서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다. 알라나는 타성에 젖은 채 졸업앨범 사진을 찍기 위해 늘어선 학생들에게 거울을 보여준다. 그런 알라나에게 개리가 거울을 비춰달라 말하며 두 사람의 대화는 시작된다. 충동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개리는 거침없이 알라나에게 첫눈에 반했음을 드러내고, 신중하고 실리적인 알라나는 개리의 유혹을 천지 분간 못하는 어린아이의 장난 정도로 여긴다. 마치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알라나와 개리는 누구 하나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다. 진전이 없는 개리와 알라나의 대화는 두 사람의 첫 데이트 장면에서 물꼬를 틔운다. 개리가 무심코 던진 (지금 사는 모습에 만족하냐는 식의) 말이 권태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알라나의 욕구를 자극한 것이다.

 

알라나는 자신에게 변화의 계기를 준 개리에게 점차 매혹당한다. 개리 역시 알라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그녀의 강렬한 매력에 빠져들어 간다.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알라나와 개리는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다름이 그들 사이의 결합을 가로막는다. 연료가 떨어진 트럭으로 내리막길을 타고 무사히 시내에 도착했을 때, 알라나는 운전대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깊이 내뱉는다. 그 옆에 앉아있던 개리는 놀란 것도 잠시 화물칸에 타고 있던 친구들과 환호성을 지른다. 생사를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난 순간, 알라나는 무모함이 남긴 쓰디쓴 후회를 삼킨 듯 지쳐 보인다. 그 옆에서 개리는 무모함이 만든 쾌락을 마냥 누리고 있다. 도로 한가운데 멈춰 선 트럭 주변에서 연료통을 들고 장난치는 개리와 친구들은 마냥 해맑게 보인다. 도로변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는 알라나의 눈에는 한심함과 부러움이 묻어난다.

 

같은 위기를 겪었으나 그것을 함께 이겨내지 못한 탓일까? 알라나의 눈에 비친 개리는 나날이 허세만 가득한 철부지가 되어가고, 개리의 눈에 비친 알라나는 개리의 모든 행동을 사사건건 트집 잡는 잔소리꾼이 되어간다. 원망과 비난이 두 사람 사이에 쌓여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알라나와 개리는 비로소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달린다. 영화는 알라나와 개리가 밤거리를 달리는 장면 사이로 개리가 경찰에게 잡혀갔을 때, 알라나가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바닥에 떨어졌을 때 알라나와 개리가 연인을 향해 달려가던 장면을 보여준다. 서로를 향한 나아가던 순간이 이번이 처음은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화면의 오른쪽에서 달려오는 알라나와 화면의 왼쪽에서 달려오는 개리가 교차되어 등장하는 장면은 그들 사이의 감정이 일방적이지 않음을 더욱더 확신하게 한다. 마침내 극장 앞에서 마주친 알라나와 개리가 서로에게 달려가 있는 힘껏 껴안는 순간, 그들은 중심을 잃고 자빠지며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이 장면으로 두 사람 사이에 응어리진 감정이 눈 녹듯 무너져가고 있음을 표현한 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더해본다. 마침내 두 손을 맞잡고 달려가는 알라나와 개리. 앞뒤 재고 고민할 시간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두 사람이 만들어갈 관계에 대해 감독은 알라나의 입을 빌려 마지막 대사 한마디로 표현한다.

 

사랑해, 개리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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