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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타는 여자들> 리뷰 : 누구보다 뜨거웠던 이들의 위로와 응원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 27.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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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타는 여자들>

누구보다 뜨거웠던 이들의 위로와 응원

 

영화는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젊은, 아니 젊다 못해 어렸던 청계 피복 여공들에 대한 위로와 경의의 헌정과도 같다. 1970년대 평화시장 하면 자연스레 떠올릴 수밖에 없는 노동열사 전태일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까지 살리고 싶어했던, 그 여리고 가여운 존재로만 생각됐던 여공들의 알려지지 않은 얘기를 그들 스스로의 증언을 통해 정성스레 재현한다.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되살아난, 숱한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투쟁하며 서로 연대했던 여공들의 주체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그들의 노동사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함으로써 영화는 그들이 살아낸 삶은 물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위로와 용기를 선사한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여전한 현실 속에 어린 나이부터 공부 대신 돈벌이에 내몰렸던 그 시절, 평화시장 여공들은 노동학교에서 배움을 접하며 새로운 세상과 만나게 되고 자아를 마주하는 환희를 맞보게 된다. 배움에 대한 그들의 열의는 실로 놀랍다 못해 보는 이들을 경건하게 만든다. 하루 종일 허리 한번을 제대로 펼 수도, 밥 한 끼 편하게 먹을 수도 없는 고되고 고된 노동에 시달린 육신을 이끌고 다만 몇 분이라도 수업을 듣기 위해 노동학교로 달려갔다는 그들. 밥과 공부 중에 고르라면 공부를 택했다는 그들의 증언을 듣고 있자면, 너무나 쉽게 주어져서 잊고 있던 배움의 소중함에 대해 반추하게 된다. 동시에 그들에게 목숨처럼 소중했던 배움의 기회를 약탈하려는 자들에 저항하고 맞설 수밖에 없었을 그들의 현실에 분노가 치민다.

 

영화는 지난 사진과 편지 같은 자료들과 주인공들의 증언을 촘촘하게 엮어내며 당시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재현하고 복원함으로써 마치 과거의 여공들이 현재의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공감을 경험하게 한다. 주인공들의 단독 인터뷰가 과거의 사건과 사실에 대한 깊고 진지한 회고를 담고 있다면, 옛 동료와의 대화는 서로의 기억을 확장하며 작은 기억의 편린까지도 되살리고, 이는 자연스레 그날의 감정까지도 스크린을 통해 오롯이 관객에게 전달하게 된다. 특히, 엄혹한 탄압 속에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그들의 진심 어린 표정을 보면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영화가 주인공들과 동료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경의는 오프닝과 엔딩 장면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오프닝에서 세 명의 주인공들은 사방이 시원하게 트인 공간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놓인 미싱(재봉틀)에 나란히 앉아 소소한 얘기들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유쾌하게 기계를 돌린다. 대화는 자연스레 미싱을 돌리던 그 시절의 회상으로 이어지고 당시 열악했던 작업 환경도 거론된다. 악명 높던 1970년대 평화시장의 작업장에서 그들은 하늘은커녕,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낮은 천장과 환기도 안 되는 먼지구덩이에서 하루 15-16시간 이상 혹사당해야만 했다. 때문에 오프닝은 역설적인 설정을 통해 어린 시절 주인공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던 미싱을 타고 영화의 제목처럼 저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는 상상을 하도록 만든다.

 

마지막 엔딩은 마치 극영화를 보는 듯한 구성으로 매우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다. 평화시장의 복도를 거닐며 옛 기억을 회상하던 주인공들과 동료들은 자신의 사진 앞에 이르러 환하게 미소 짓는다. 그들은 불우하고 착취당하는 일들만 가득했을 법한 시절에도 동료들과 함께 하며 밝게 웃고 있는 자신의 옛 모습을 보며 그래도 잘 살았어. 지금도 잘 살고 있고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 묻어두었던 과거의 자신에게 스스로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그들의 모습은 오늘을 힘겹게 살아내는 관객들에게도 위로와 격려를 건넨다. 그리고, 여러 동료들과 함께 어려운 시절 자주 부르며 서로를 토닥이고 힘을 모았을 흔들리지 않게를 합창하는 그들의 모습은 박찬욱 감독의 말마따나 오열이라도 할 것 같은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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