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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라운드> 리뷰 : 술에 취하듯 아름다운 인생에 취하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 27.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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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라운드>

술에 취하듯 아름다운 인생에 취하다

 

토마스 빈터베르의 <어나더 라운드>는 권태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나이 듦에 대한 통찰을 이야기한다.

 

 '젊음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

 

쇠렌 키르케고르의 시를 인용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중심인물들은 40, 50대 중년이지만 그들 주변에는 활력 넘치는 청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감독은 "인생을 편하게 살아가는 젊은이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중년의 삶을 그려냄으로써 인생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려 했다"고 말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한때는 청춘이었던 이들이 시간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현재의 자신을 어떻게 살아내는지를 그저 지켜보게 한다. 무료한 인생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려는 네 명의 중년 남성이 음주(飮酒)로 인해 일으키는 사건들은 상쾌하고 짜릿하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감독의 전작 <더 헌트>(2012)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매즈 미켈슨, 토마스 보 라슨, 라스 란데가 이번 작품에서도 함께 열연을 펼친다. 이들이 선보이는 또 한 번의 앙상블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에 흠뻑 취하게 만든다. 학교에서 각각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마틴(매즈 미켈슨), 토미(토마스 보 라슨), 피터(라스 란데),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는 인생의 무료와 권태에 찌들어가고 있다. 영화는 이들 중 마틴이 처한 상황을 보다 조명한다. 마틴은 직장에서는 수업 평판이 좋지 않아 학생과 학부모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가정에서는 아내 아니카(마리아 보네비)와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고 있다. 무미건조한 삶을 꾸역꾸역 버텨내던 마틴은 니콜라이의 생일에 술 한 잔의 힘을 빌려 자신의 괴로움을 토해낸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마틴의 눈물 섞인 한탄은 기폭제가 되어 네 사람은 엉뚱하고 기발한 실험을 실행한다.

실험은 체내 혈중알코올농도에 따른 개인의 심리적·수사적 영향을 관찰하고, 사회적·직업적 수행 능력 증진을 확인하는 목적으로 다음과 같은 3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1단계: 인간의 혈중 알코올 수치가 0.05% 부족하다는 스코르데루 가설 시험 - 와인 1~2잔 정도의 적당한 알코올이 삶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는지 알아보기 위함

 2단계: 개인의 혈중알코올농도 실험 - 개인에 따른 최적의 알코올 수치를 찾기 위해 좀 더 마셔보기

 3단계: 최대 혈중알코올농도 실험 - 한 마디로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셔보기

 

실험 단계에 따른 네 사람의 변화는 술에 취한 정도에 따른 감정과 매우 유사하다. 마틴의 변화를 예로 들자면, 1단계에서 마틴은 살짝 기분 좋은 변화를 맛본다. 마틴은 책상에 앉아 교과서만 읽었던 수업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술과 인연이 깊은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참신한 질문을 던진다. 지루하기 짝이 없던 마틴의 수업은 교사인 마틴뿐 아니라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바람을 일으킨다. 2단계에 이르러서 마틴은 전보다 과감한 시도를 한다. 음주를 예찬하는 것으로 우려되는 질문으로 학생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가족 캠핑을 주도하며 아니카와의 관계도 개선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3단계에 도달하자 마틴에게는 통제할 수 없는 절망만이 그의 곁에 남는다. 아니카와 자녀들은 마틴의 곁을 떠나고 마틴의 삶은 다시 무기력해지는 듯 보인다.

 

이들의 실험은 지대하고 부정적인 사회·도덕적 영향을 우려하여 중단되지만 통제 불능한 음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토미가 사망하기에 이른다. 술이 만든 환희의 절정에서 술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자니 모든 탓을 술에게 돌리고 싶어진다. 그러나 감독은 조지 쿠브(George F. Koob)의 음주 단계론을 인용하며 자신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마시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런 연유로 영화에서 '키르케고르의 불안'이 등장한 것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유급의 아픔을 겪은 세바스찬(알베르트 루드베크 린드하르트)이 낙제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험을 포기하려 하자 피터는 그에게 약간의 술을 제공한다. 세바스찬은 피터에게 받은 술로 불안을 해소하고 시험으로 출제된 '키르케고르의 불안'에 대해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좌절과 불안, 두려움으로 인한 고통은 인간을 ''로 살게 하는 힘이 된다.'라고 답변한다.

 

외줄 타기와 같은 인간의 삶은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황을 벗어나고자 애쓰기에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마틴과 그의 친구들이 벌인 프로젝트는 술을 도구로 한 삶의 활력을 되찾기 위한 시도였으리라 짐작한다. 그들이 그저 불안과 두려움에 잠식되어 있다면 그들이 맛본 희열을 알지 못했으리라. 토미의 장례를 마친 마틴과 피터, 니콜라이가 졸업생들과 함께 선착장에서 벌이는 광란의 파티는 오프닝 장면의 젊은이들의 음주 릴레이 경기와 겹쳐 보인다. 마틴은 춤추고 노래하고 술을 마시는 졸업생들 사이를 휘저으며 모던 발레를 선보인다. 마틴의 몸짓은 우아하다. 그의 춤사위 위로 흐르는 노래와 섞여 아름다운 인생을 예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상하는 새처럼 바다를 향해 몸을 날리는 마틴은 자유롭고 약간은 불안해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너무도 아름답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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