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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탄적일천> 리뷰 : 끝끝내 그날의 결말을 알 수 없다 한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 1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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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탄적일천>

끝끝내 그날의 결말을 알 수 없다 한들

 

<해탄적일천>1983년에 개봉한 대만의 거장 에드워드 양의 장편 데뷔작이자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소녀 시절에 헤어져 여인이 되어 만난 린자리(장애가)와 탄웨이칭(후인몽)이 카페에서 나누는 대화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또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그녀들의 이야기 덕분에 40여 년 전 타이베이 도심의 세련된 면모와 일본식 가옥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화면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영화의 제목(海灘的一天:That Day, On The Beach)을 번안하면 바닷가의 그날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영화는 그날 바닷가에 벌어진 사건을 중심에 두고 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의 사건은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단일 뿐, 그것을 알아내려는 목적성은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다.

 

감독은 사건의 진상보다는 자리와 웨이칭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자연스레 배어나는 두 여인의 지난 삶을 조명한다. 상실을 겪어낸 인간의 변모한 모습으로부터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림으로써 번뇌하고 한 걸음 나아가는 인간의 성장을 그려내는 듯 보인다. 영화는 웨이칭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극의 초반부는 유명 피아니스트가 되어 13년 만에 타이베이로 돌아온 웨이칭이 자리를 만나 자리의 오빠 자썬과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후속 장면에서 응당 관객이 기대하는 웨이칭과 자썬의 다음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본격적인 서사를 풀어나갈 때, 영화는 웨이칭의 삶을 이야기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자리의 삶을 세운다.

 

영화는 자리의 눈을 통해 바라본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리의 인생을 조명한다. 극 중 자리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언제나 그녀의 지인들과 대화를 나눈다. 자리와 자썬의 대화를 예로 들어본다. 자리는 집안에서 정해준 결혼과 연인 창더웨이(모학유)와의 미래 사이에서 고민한다. 자리는 자썬을 찾아가 대화를 청한다. 연인 웨이칭과의 미래를 포기하고 정략결혼을 선택했던 자썬은 자리에게 자신의 변화한 가치관을 이야기한다. 이때, 카메라는 자썬을 홀로 화면에 세운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 자썬은 이제는 미래를 기대하기보다 현재 느끼는 소소한 만족감에 안주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리에게 하는 말이지만, 자썬의 시선 때문에 관객은 마치 그의 자조 섞인 고백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릴없이 담배를 태우며 무미건조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자썬과의 대화 끝에 자리는 한밤중에 집을 떠난다. 그리고 연인 더웨이와 혼인 서약을 하고 타이베이에 정착한다. 손을 맞잡은 자리와 더웨이 뒤로 혼인 서약을 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이 자아내는 소음은 현재 시점의 자리를 비추는 다음 장면에까지 이어진다. 북적거리는 소리 위로 보이는 자리의 옆얼굴에 상심이 묻어난다. 그날을 떠올리는 자리가 행복한 기억에 슬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리의 기대와는 달리 더웨이와의 결혼생활은 위태롭고 불안하다. 가장의 책임에 잠식된 더웨이는 자리와의 시간을 소홀히 하고 그럴수록 자리는 더웨이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간다. 금이 간 자리와 더웨이의 관계는 더웨이의 실종으로 이어진다.

 

더웨이는 자리와의 추억이 서려 있는 바닷가에서 사라진다. 더웨이의 목격담을 들어보면 더웨이는 자살을 기도하고 바닷속으로 들어간 듯 보인다. 해변에 앉아있던 자리는 더웨이의 시신을 수색하는 인부들을 뒤로한 채 바닷가를 떠난다. 다음 장면에서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담배를 물고 있는 현재 시점의 자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는 더이상 과거의 이야기를 말하지 않는다. 끝내 바닷가에서 벌어진 이야기의 결말은 미완인 채 남겨진다. 허나, 자리가 그날을 계기로 새로이 변화하였음은 분명하다. 떠나는 자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웨이칭의 내레이션은 자리의 성숙을 확신하게 한다. 자리를 바라보는 웨이칭의 시선에서 자리에 대한 연민과 동감이 느껴진다. 상실의 고통을 겪어낸 사람만이 마주할 수 있는 새 출발선을 두 여인 모두 지나온 듯 보인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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