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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리뷰 : 죽음이라는 안식을 맞이할 때까지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2. 14.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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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죽음이라는 안식을 맞이할 때까지

 

김동령 박경태 감독의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뺏벌을 떠도는 존재들을 다루고 있다. 뺏벌의 유령은 나무가 임신을 한 것에 슬퍼하고, 저승사자는 기록되지 않은 혼을 저승에 데려가길 주저한다. 그리고 도깨비는 저승사자를 도와 뺏벌의 망자(亡者)를 인양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도 오묘하고 기괴하여 한 편의 괴담을 전해 듣는 것만 같다. 괴담의 근원에는 대개 원통함이나 억울함과 같은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가 지닌 이야기의 근원도 이와 비슷하다. 때문에 영화가 '옛날 옛적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이라는 탈을 뒤집어쓰고 그 안에 감춰둔 서슬 퍼런 복수심은 영화 전반에 죽음의 기운이 퍼뜨린다. 결국 영화의 이야기는 뺏벌이라는 공간에서 자행된 해결되지 못한 죽음을 마무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잊혀진 과거를 설화에 빗대어 그려낸 이야기 속에서 풍겨오는 스산함과 서글픔은 오랜 과거에 파묻혀 있던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장르적 특성이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영화의 서술 방식은 그 안에 담긴 존재들의 사연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미술작가(김아해)가 기지촌을 돌아보다 텅 빈 가게 중 한 곳에 들어가 벌어지는 장면은 픽션과 논픽션의 모호한 경계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미술작가는 스러져가는 공간을 찬찬히 이리저리 살핀다. 뽀얀 먼지가 내려앉은 빈 병과 당구대 그리고 벽면을 가득 메운 사진은 촬영을 위해 조성된 소품이 아니라 실제로 뺏벌에 남겨진 과거의 흔적이다. 낡고 해진 그 공간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지 궁금해질 때 즈음 뜬금없이 꽃분이가 나타난다. 꽃분이는 살아있지 않으나 이승을 벗어나지 못하는 귀신으로 감독이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이다. 꽃분이와 같은 창작된 인물의 등장으로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사실감 위에 극영화의 인공성을 덧칠한다.

 

영화는 관객을 혼란스러운 상황에 던져놓으면서도 박인순이라는 인물을 통해 영화의 이야기가 현실에 발 닿아있음을 명백히 드러낸다. 영화 중간에 삽입된 박인순의 영상들은 화면 비율과 해상도에서 느껴지듯 영화가 만들어진 시점보다 이전에 촬영된 것들이다. 박인순의 인터뷰와 생활의 한 부분을 담아낸 장면들은 박인순이라는 인물이 실존함을 증명하고 있다. 영화는 박인순의 지금을 통해 시대로부터 잊혀진 뺏벌 기지촌 미군 위안부의 가련한 인생을 위로하려는 듯 보인다. '전쟁 미아가 된 소녀가 기지촌 양공주로 살았었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기엔 너무도 가혹한 고난과 역경으로 굴곡진 인생이다. 그러나 세상은 박인순과 그녀의 동료들을 위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때문에 영화는 뺏벌이 지닌 사연들의 진위 여부보다 뺏벌의 이야기가 세상에 퍼져나가지 못한 현 상황에 대한 탄식을 그려내는 데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뺏벌에 덩그러니 남겨진 존재들이 육신의 죽음에도 이승을 벗어나지 못한 원인을 영화는 '응어리진 한()'에서 찾은 듯 보인다. 영화는 복수극의 체험을 통해 뺏벌의 존재들의 원통함을 풀어내려는 시도를 한다. 박인순은 그녀가 바라던 대로 (박인순의 전 남편을 형상화한) 군복 차림의 흑인 남성의 목을 벤다. 그리고 그것을 밧줄로 묶고는 저승으로 가는 아홉 고개를 끌고 다닌다. 복수를 성공한 박인순의 얼굴은 일말의 희열과 환희의 감정 없이 무표정하다. 게다가 한을 풀렸을 거라 생각했던 꽃분이는 저승에 가지 못하고 소멸되어 버린다. 진정한 죽음에 도달하기 위해선 한풀이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고개에 도달한 박인순은 저승사자의 부채를 맞고 괴성을 지른다. 까마귀의 울음소리와 닮은 그녀의 고성 위로 여인들의 날카로운 절규가 섞여 들린다. 그녀들의 비명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애원처럼 느껴진다. '기억되지 못한' 이들이 죽음이라는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뺏벌의 이야기를 기억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자라나는 순간이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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