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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탄> 리뷰 : 경계를 허무는 이전에 없던 존재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12. 1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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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탄>

경계를 허무는 이전에 없던 존재

 

다수의 언론 평에 나오는 대로 미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 기준, 상식이라는 것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틀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겠다는 듯, 영화는 초반부터 강렬한 이미지와 비트로 폭주한다.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하고 불쾌하며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기존의 영화적 문법이나 관념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장면들이 통쾌하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는 경계를 넘나들고 이분법적 사고를 무력화하며 농락한다.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구분하는 것은 애초에 무의미하다. 여성과 남성의 성적 구별은 물론,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마저도 모호하고 무의미하게 뒤섞는다. 계속되는 알렉시아(아가트 루셀)의 살인 행각에도 그 당위나 개연성을 찾기 어렵다. 그의 임신은 더더욱 납득할 수도, 실감할 수도 없다. 이러한 경계 허물기 내지는 가치관 낯설게 하기는 영화를 아주 새롭다 못해 미친 것으로 만든다.

 

알렉시아는 교통사고로 인해 머릿속에 티타늄을 넣은 이후부터 내재해 있던 독특한 성향이 폭발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일말의 주저함이라곤 전혀 느껴 볼 수 없이 가족의 해체까지 이어진다. 어차피 이 가족의 서로에 대한 사랑이란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상실된 가족의 자리엔 뱅상(뱅상 랭동)이 들어선다. 그는 10년 전에 잃어버린 아들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도망칠 곳이 필요했던 알렉시아는 바로 그 아들의 자리로 숨어든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자신도 파괴하겠다는 광기를 가진 뱅상은 남성성에 집착하는 폭력적이며 강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그가 알렉시아와 일촉즉발의 갈등 상황으로 치닫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서로의 가장 어두운 내면에 대한 깊은 이해는 예상치 않았던 애정으로 쌓이고, 기계처럼 차가웠던 알렉시아를 변화시킨다. 뱅상을 아버지라 부르고 웃음을 되찾으며, 살인을 저지르던 손으로 사람을 살린다. 심지어 제 손으로 제거하고 싶어했던 태아에 대한 모정까지 생겨난다. 전혀 변화될 것 같지 않았던 그를 변화시킨 건 결국 혈연을 넘어선 사랑이다.

 

물론, 알렉시아의 아이가 과연 이 세상에 환영받을 존재가 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다.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살인 직후 샤워를 하다가 어떤 소리에 이끌려 자동차와 격렬한 정사를 벌이고 그로 인해 임신을 했다니 도대체 있을 법한 일이기나 하단 말인가? 대부분의 관객은 알렉시아가 임신 기간에 보여왔던 몸의 변화와 끊임없이 배출되는 기계 오일을 보며, 태어나는 아기는 틀림없이 피도 눈물도 없는 트랜스포머 정도의 모습일 것이라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몇 가지 단서들이 관객들에게 이 아이에 대한 궁금증의 작은 실마리를 준다. 뱅상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소방대원들에게 알렉시아를 자신의 아들이라 소개하며 예수에 비유를 한다. 물론, 대원들은 비아냥거리지만 허투루 넘길 수는 없다. 알렉시아가 출산을 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또한 무언가를 암시하는 장치로 보인다. 이는 인터뷰를 통해서 감독이 알렉시아는 예수이며 성모 마리아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를 희생양으로 전혀 새로운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그는 인류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과연 금속으로 된 골격을 소유하고 붉은 피 대신 검은 기름이 흐를 것 같은 이 새로운 생명이 인류를 구하는 메시아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악의 화신이 될 것인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의 힘으로 변화됐던 알렉시아의 모습과 자신의 아들이 아님에도 있는 그대로 알렉시아를 감쌌던 뱅상의 태도를 보아왔던 터라 이제 뱅상의 품에 안긴, 그 갓 태어난 생명이 비록 지금까지 존재하던 생명이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에 새롭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몸으로 증명하리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사랑이라는 진부한 소재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한 숙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철저히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이 영화가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문제작이다. 감독 줄리아 뒤쿠르노의 인터뷰를 찾아보며 영화 속에 담긴 여러 가지 상징과 메시지들을 되새겨보는 것도 이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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