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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 인 벨지움> : 미처 알아채지 못한 나에게 그리고 나를 알아갈 나에게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12. 1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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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 인 벨지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나에게 그리고 나를 알아갈 나에게

 

<로그 인 벨지움>은 유태오라는 예술가가 지나온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삶의 궤적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태오는 그의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로 엮어내어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유태오는 감독과 각본을 비롯하여 촬영과 편집 그리고 주연배우까지 모두 소화한다. 유태오는 작품에 대한 소회로 "내 심장을 몸에서 찢어 접시에 옮겨 드리는 심정"이라 밝힌 바 있다. 그만큼 영화는 온통 유태오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갑작스레 찾아온 고립을 견뎌내야 하는 시간을 유태오는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하는 지점에서 대만 출신의 차이밍량 감독이 말했다던 사람이 외로울 때, 그 사람은 진짜가 된다. 진짜 자기 자신이라는 문구가 화면에 등장한다. 마치 그 말이 계기가 된 것처럼 외로움으로 가득한 나날 속에서 유태오는 바로 그 자신과 만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 모두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유태오는 벨기에 앤트워프의 한 호텔에 홀로 남겨져 있다. 영화는 홀로 남겨진 상황 속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고독이라 불리는 씁쓸하고 메마른 감성으로 시작한다. 호텔방 안에서 홀로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빨래를 하는 유태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왠지 모를 피로와 지루함이 느껴진다. 그러다 메일로 전달된 벤이라는 배역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현재의 유태오 앞에 누군가가 나타난다. 검은색 와치 캡을 쓰고 검은색 롱코트와 와이드 팬츠를 입은 남자는 태블릿 PC 안의 화면으로 처음 등장한다. 벌쳐 선글라스만 있으면 꼭 영화 <레옹>의 레옹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것만 같은 사람이다. 요상한 행색을 한 그는 바로 또 다른 유태오이다. 그는 현재를 살고 있는 유태오가 과거와 꿈 그리고 미래의 자신을 만나는 계기가 된다.

 

현재의 유태오와 과거의 유태오가 대담을 나누는 신은 영화가 편집으로 빚어지는 예술임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가상의 유태오와 현실의 유태오로 두 명인지만, 실제로 촬영한 배우는 오로지 유태오 한 명이다. 한 명의 유태오가 분장을 바꿔가며 촬영을 하고 쇼트를 번갈아 가며 붙여 두 명의 유태오가 서로 대화하는 장면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유태오는 지금의 유태오가 되고 과거 어느 순간의 유태오가 되고 심지어 그림자가 되어 화면에 나타난다. 그런데 배우가 12역을 소화하여 동일한 사람이 마치 다른 존재처럼 느끼게 하는 영화의 편집은 그다지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로그 인 벨지움>보다 더욱 매끄럽고 그럴듯한 편집기술을 선보인 영화들이 보다 많을 것이다. 심지어 <로그 인 벨지움>은 조금은 거칠고 엉성한 편집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깨끗하고 정제되지 않은 화면으로 직조된 몽환적인 가상 세계에서 유태오는 또 다른 자신과 함께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관망한다. 앤트워프에서의 고독한 일상에서 벗어나 서울로 돌아온 유태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배우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신인남우상이라는 빛나는 성취도 일궈낸다. 화려하고 풍성해진 서울의 일상 가운데에서도 유태오의 삶에 대한 고찰은 이어진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이 이를 증명하는 듯 보인다. 시상식을 마치고 대기실에 들어온 유태오는 분장대 거울 앞에서 앤트워프에서 만난 과거의 자신을 마주한다. 잠깐의 대화를 나눈 뒤 현재의 유태오는 거울 너머의 유태오가 입고 있던 복장을 하고 공간 밖으로 사라진다. 유태오가 알아갈 또 다른 유태오의 모습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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