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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사람입니다> 리뷰 : 나무와 같은 재일조선인들의 삶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12. 2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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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인입니다>

나무와 같은 재일조선인들의 삶

 

 왜 조선일까? 누구나 물음을 갖게 되는 부분이다. 왕조시대의 조선은 이미 끝난 지 오래고 우리의 머릿속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들어가는 그 조선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재일조선인들이 일제의 식민지배 하에서 강제 징용이나 빈곤 등으로 일본에 넘어왔고, 해방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고국으로 되돌아갈 때에도 경제적 이유 등으로 남은 사람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조국은 여전히 그들이 떠나왔던 조선에 머물러 있음에 수긍할 수 있다.

재일조선인들은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그때까지 조선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학교를 세우고 조선의 말과 글, 역사를 가르쳤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머무르고 있으며, 조국은 전쟁을 치르고 땅이 둘로 나뉘어 서로 반목하고 있다. 지금의 현실은 비록 그렇지만, 그들에게 조국은 남한이나 북한의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조선반도 전체이며,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가 되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 하는 곳이다.

언젠가는 돌아갈 조국을 그리며 조선인으로 살고자 하는 그들에게 일본 사회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일본은 고등학교 과정까지 무상교육이 이루어지지만 조선학교에는 지자체의 지원까지 막으며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있다. 더구나 재특회와 같은 극우단체들은 우리 동포들을 조센징, 김치, 바퀴벌레라고 욕하며 멸시한다. 일반인들도 재일조선인들을 차별받아 마땅한 사람들로 생각하며 싫으면 일본학교에 가라’, ‘조선사람으로 살기 힘들면 일본사람이 되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재일조선인들은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우면서도 미움과 증오에만 머물기보다 일본 정부와 시민들을 설득하고자 노력한다. 더불어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가며 존재 그대로 존중받고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투쟁한다. 급여를 제대로 못 받아도 기꺼이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진심인 젊은 선생님들, 일본 문부성 앞에서 조선학교 차별철폐를 외치는 청소년들과 한국말을 배우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들이 얼마나 단단하게 스스로를 지켜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런 재일조선인들에게 자아와 정체성의 근원인 조국의 분단은 커다란 상처와 시련을 안겨 주었다. 그저 조국에 대한 사랑과 호기심으로 남한의 대학에 유학을 왔던 많은 학생들이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일본에서는 총련과 민단으로 나뉘어 이국땅에서조차 분단의 아픔을 겪으며 어느 한쪽의 선택을 강요당했다.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타국에서의 고단한 삶에 위로와 격려가 아닌 또 다른 갈등과 고통이 되돌아온 것이다.

서울대 의대로 유학 갔다가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 13년을 복역한 강종헌 씨는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분노를 에너지 삼아 세상을 바꾸고 기쁨으로 나눌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그의 담담하지만 신념에 찬 말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조국을 사랑하면 할수록 멀어졌다며 남한은 아예 갈 수 없었기에 평양 순안공항에 내리며 계속 눈물만 흘렸다는 김창오 씨의 증언 역시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그 외에도 모든 출연자들의 진솔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인터뷰들이 많은 깨달음을 가져온다.

 

 영화는 시작과 끝에 나무의 모습을 비춘다. 비바람과 눈보라에 시달리는 나무, 하지만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결국은 그 푸르름으로 돌아와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듬직한 나무. 그 나무와도 같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땅에 깊게 뿌리 박고 하늘을 향해 힘차게 팔 벌리는 재일조선인의 모습은,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 벅차게 떠오른다. 분단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잊고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 통일을 꼭 이루자고 다짐하고 싶다. 그래서, 통일된 이 땅에서 재일조선인들과 손을 맞잡고 누군가 말했듯이 필자도 말하고 싶다. “나도 조선인입니다!”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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