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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너머에> 리뷰 : 부유(浮游)하는 존재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9. 1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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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너머에>

부유(浮游)하는 존재들

 

<그대 너머에>에는 기억 때문에 살아가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숙(오민애)은 알츠하이머로 인해 서서히 지워져 가는 기억을 붙잡으려 애를 쓴다. 지연(윤혜리)은 자신을 잊어가는 인숙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 방황한다. 경호(김권후)는 지나간 기억들로 인해 크나큰 혼란에 빠진다. 이들은 땅과 하늘 사이에서 부유(浮游)하는 티끌처럼 기억이 깎여나감에 따라 삶의 중력(重力)을 잃어간다. 영화는 이들의 상실을 통해 삶을 유지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기억임을 강조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인간은 반은 먼지요, 반은 신이며. 가라앉을 수도 없고 비상할 수도 없다.”라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의 시구가 떠오른다. 그 연유는 세 사람의 상황이 인간의 삶에 주어진 숙명과 닮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기억에 손실을 당한 인물들을 비추어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기 위해선 누군가를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행위가 필요함을 드러내고 있다. 세 인물을 괴롭히는 기억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 않고 미로처럼 복잡하고 답답하다. 영화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통해 세 사람의 머릿속을 형상화하여 관객에게 그들이 느끼는 갑갑함을 체험토록 만든다. 인숙이 골목을 배회하는 장면은 가장 탁월하게 막막한 감정을 전달한다. 부감으로 촬영된 장면 안에는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그 안에서 애타게 지연을 찾는 인숙의 음성이 들리는데 인숙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화면 속 건물 사이사이를 살펴봐야 인숙을 겨우 발견할 수 있다. 인숙을 찾는 관객의 탐색은 인숙의 울음 섞인 목소리와 중첩되어 기억을 잃어가는 인숙의 고통을 관객에게 전송한다.

 

<그대 너머에서>에는 롱테이크 기법으로 촬영된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화면을 비추는 카메라의 시점은 전환되지 않고 한 대의 카메라가 인물의 이동을 긴 호흡으로 담는다. 마을 공터에서 인숙과 지연의 대화 장면에서 인숙과 경호가 만나는 장면까지 화면 전환 없이 카메라가 인물들의 이동을 따라간다. 또 앞서가는 지연을 쫓아 골목을 누비는 경호를 카메라는 경호의 뒤를 따라가며 지연과 경호의 걸음을 오래도록 촬영한다. 이러한 촬영 기법은 관객에게 카메라의 시선에 따라 화면 속 상황을 유추해야 하는 상태에 놓이게 한다. 이는 마치 내가 주인공이 아닌 꿈을 꿀 때 꿈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카메라가 오랜 시간을 들여 비추는 인물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경험은 인물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 추론하고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관객이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고 본인의 경험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기억 속을 떠돌던 인숙과 지연은 종극에 이르러 현실 세계로 침전(寢殿)한다. 인숙이 애써 모아둔 기억들은 백지가 되어버리고, 지연은 끝까지 인숙에게 낯선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두 모녀는 포옹하며 서로의 온기를 나눈다. 이어진 장면에서 인숙과 지연은 집 앞에 앉아 차를 마시는데 인숙은 지연이 자신의 딸임을 알고 있다. 이것이 꿈인지 실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인숙과 지연의 결말에는 밝고 희망찬 기운이 느껴진다. 그들과 달리 경호의 마지막에는 서글픔이 깃들어 있다. 경호의 결말은 죽음이다. 차기작으로 고민하던 어느 감독의 고독한 죽음이라는 기사로 경호는 현실에서 벗어난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경호는 여전히 현실을 헤맨다. 대한극장 앞 광장에서 서성이는 경호의 실루엣은 세상의 속도와 다르게 움직이고 점차 흐릿하게 변한다. 아무도 없는 경호의 방 안, 스스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노트북은 끝내지 못한 전하지 못한 경호의 이야기를 대변하듯 외로이 빛을 내뿜고 있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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