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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리뷰 : 노동이라는 인간의 존재적 가치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8. 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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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노동이라는 인간의 존재적 가치

 

<언더그라운드>에서 감독이 영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노동의 문제는 오로지 노동이라는 행위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여타 노동문제를 다룬 작품과는 달리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벌어지는 온갖 투쟁의 현장은 단편적 사건으로만 등장할 뿐, 서사의 중심에는 조금 벗어나 있다. 감독의 시선을 대변하는 카메라는 그저 묵묵히 노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는 일 외에는 여념이 없다.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서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신 일하는 노동자의 움직임 위로 깔리는 일터에서 발생하는 기계음이나 마찰음이 주를 이룬다. 이로 인해 관객은 부족한 청각 정보를 위해 평소보다 시각 정보에 의존하여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

 

이러한 <언더그라운드>의 촬영과 편집은 관객에게 관찰의 미학이 무엇인지 체감하게 만든다. 카메라는 영화 전반에 걸쳐 지하철이 운행하는 지상 아래의 세계를 조명한다. 동이 채 트지 않은 이른 새벽, 열차 운행이 시작되고 역내에서는 방범 셔터가 올라가면서 열차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날이 밝자 지하철은 분주한 승객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지하철에 몸을 맡긴 채 각자 목적지를 향해 이동한다. 우리가 이미 경험하여 알고 있는 지하 공간에서의 일상을 비춘 직후, 카메라의 시선은 지하철과 역사의 노동자를 향해 이동한다. 화면은 지하철의 차량을 점검하고 수리하는 노동자들, 역사 내를 청소하고 분리수거를 하는 여성 노동자들, 어두운 터널 속 선로 정비사들의 일터에서의 움직임으로만 채워진다.

 

관객은 카메라의 시선에 따라 프레임 속 지하철 노동자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평소에 우리가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지하철을 운행하기 위해 구축된 지상 아래의 세계가 인간의 노동을 통해 유지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노동 현장에서 묵묵히 땀을 흘려 일하는 이들에게 풍겨오는 생동감은 입을 통해 전달되는 호소보다 더 크고 진한 감정적인 울림을 준다. 그와 동시에 은연중에 느껴지는 일터에서의 위계를 목격하게 된다. 노동자의 처우는 본사냐 하청 업체냐 또는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노동에 종사함에도 지금의 사회는 소속과 직함에 따라 노동의 대가에 격차를 두고 있다. 심지어는 더 많은 업무량을 처리하고 있음에도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와 차별은 만연하다.

 

야간 선로 작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노동은 영화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으로 기억된다. 선로 정비 노동자들은 지하철을 운행하지 않는 심야에 작업을 시작한다. 한없이 늘어선 선로를 걸으며 이음새를 확인하고 선로의 부품을 수리하는 이들의 작업은 한눈에 보아도 높은 노동 강도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은 매우 저렴한 값으로 책정되어 노동자에게서 자기 일에 대한 자긍심을 빼앗는다. 선로 작업이 개인의 생존을 넘어 사회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지금 세상은 자본의 논리를 휘두르며 효율성만 따진다. 어둠으로 가득한 작업장에서 선로 정비 노동자들은 더욱더 어두운 일터로 걸어 들어간다. 화면에 비춘 이들의 모습은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언더그라운드>는 무인운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기관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노동 현장의 기계화로 일자리를 잃은 기관사에게서 무력감과 막막함이 느껴진다. 노동 현장은 일하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 채 해결되기도 전에 인간과 기계 문명과의 갈등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가 속한 사회가 정리해야 할 노동문제는 선로 위를 순환하는 열차처럼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이 문제에 관한 해결 방안을 제안하지 않는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노동 현장 안에 있는 인간을 조명한다.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노동이란, 인간에 의해 이어나가는 행위이자 인간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임을 깨닫는다. 그러기에 노동문제는 인간의 존재적 가치를 위한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함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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