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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여름> 리뷰 : 괜찮아, 내 청춘은 여전히 반짝거리니까!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8. 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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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여름>

괜찮아, 내 청춘은 여전히 반짝거리니까!

 

처음 몇 번은 어떻게 해서든 마감일을 지키려는 마음에 밤을 새워도 봤다. 한 올 한 올이 소중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글을 짜내고 짜내지만, 깜빡이는 커서가 조금 앞으로 나가는가 하면 그 전진한 만큼의 곱절로 다시 후퇴하기를 반복하는 그 절박하고 답답한 필자의 모습이 딱 영화 속 현실(김예은)의 모습이다. 필자는 그렇게 글이 막다른 곳에 갇혔을 경우, 여전히 책상머리에 앉아 키보드와 씨름하며 전전긍긍 어쩔 줄을 모르는데 시가 산으로 가버렸으니 산으로 가는 게 답이라는 현실의 쿨한 선택은 정말 신박하다. 대체로 어떤 일이 잘 안 풀릴 때에는 그 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전혀 다른 일을 해보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쉽지 않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의 결단력이 부럽다.

 

산을 오르내리며 현실은 선배와 그의 전 여친, 자신의 첫사랑을 가로챈 전 베프를 아주 우연히 마주치기도 하고, 자신처럼 뭐 하나 시원한 구석이 없는 남사친에게 질척이며 기어코 밖으로 끌어내 낮술을 함께 하기도 한다. 애매한 관계가 본색을 드러내며 반가움이 어색한 만남이 되기도 하고, 이미 몇 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미운 감정과도 마주한다. 자신의 앞가림도 못 하는 자의 어설픈 조언을 듣고, 위로받고자 했던 이에게 반대로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딱히 시원한 답을 바랐던 만남들은 아니었겠지만, 사람에게 상처받고 관계에 지쳤을 법한 현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관계 맺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곤 그 공허한 만남들 끝에 결국 불쑥불쑥 자꾸 기억 속으로 들어오는 남친을 가당치 않은 핑계로 불러낸다. 관계 회복의 가능성을 상상하기도 했겠지만 그런 기회는커녕 깔끔한 관계 정리가 확정적으로 내려질 뿐이다.

 

이 청춘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기성세대에 대한 피해 의식이나 사회의 구조적 문제,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암울함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영화는 이미 차고 넘치니 이 영화만큼은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밝지만 치열하게 성장해가는 청춘의 그 뜨거움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는 듯 보인다. 현실은 스물아홉 살이나 먹고도 여전히 지망생신분으로 아르바이트에 의지하며 원룸에서 기거하는,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궁핍한 현재의 삶 속에 있는 대한민국 2030들의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 좌절이나 절망의 그늘이라고는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굳은 각오와 의지를 불태우는 전사의 모습도 아니다. 그저 오늘을 즐겁게 살며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삶의 태도에 오히려 웃음과 응원의 마음이 배어난다.

 

그렇다고 현실이 아무 생각 없는 철부지 같은 인물도 아니다. 서른이 다 되도록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왔고, 헤어짐의 아픔에 좌절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상처를 시의 언어로 꽃피워낸다. 이제 그는 자신만의 꿈을 향해 가는 또 다른 청춘, 유정(신기환)에게 간지나는 선망의 대상이 될 만큼 성장하였다. 여름을 뜨겁게 보낸 현실은 포스터에 걸린 말풍선의 내용대로 씨처럼 단단해진 게 분명하다. 마침내 마지막 시를 완성했고, 우연히 다시 마주친 전 남친과도 장난을 치며 쿨하게 웃어넘기는 엔딩에서의 그의 모습은 앞으로 다가올 가을과 겨울도 거뜬히 버텨낼 자신만의 외투까지 준비한 듯 보인다.

 

영화는 감독의 의도대로 시와 가깝게 만들어졌다. 요즘 잘 나간다는 황인찬의 시 5편과 어우러진 영화는 아직 남은 여름의 끝자락에서 청춘뿐만 아니라 필자와 같은 안 청춘에게도 시원하고 달달한 수박과 같은 위로와 희망을 안겨준다. 영화 곳곳에서 마치 발을 걸듯 툭툭 튀어나오는 유머는 절대 심각해지지 말 것을 상기시키는 것 같다. 이제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지금, 내 삶만 여전히 답답한 열대야 속에 지쳐 있다면 꼭 보기를 권한다.

 

또다시 마감일을 넘겨 리뷰를 쓰는 지금, 영화의 한 장면이 계속 뇌리를 맴돈다. 현실이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려는 순간, 동전 몇 개가 땅에 떨어지는 것에 그만 마음을 빼앗겨 그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땅바닥에 떨어뜨린다. 때로는 그렇게 사소한 것에 부질없이 마음을 빼앗기고는 정작 중요한 것을 잃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자. 부족해도 실수해도 괜찮아. 남아 있는 내 삶 중에서 가장 젊은 지금, 내 청춘은 아직 반짝이니까!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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