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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센도> 리뷰 : 저 벽을 넘어 함께 연주할 평화를 위해…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7. 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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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센도>

저 벽을 넘어 함께 연주할 평화를 위해

 

영화의 오프닝은 관객에게 묻는 것 같다. 그저 서로 사랑했을 뿐인 이 순수한 젊은 연인이 무엇을 피해 도망쳐야 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답 대신 이들에게 결국은 비극이 닥쳐왔음을 바라보는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아프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고 가족을 등져야 하는 그들의 현실은 로미오와 줄리엣에 박제된 비현실적인 얘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도 살아내야만 하는 그들의 엄연히 실재하는 삶이란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도무지 답을 알 수 없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단서를 찾아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같은 오디션을 목표로 같은 곡을 연습하는 두 바이올린 연주자의 환경은 너무나 다르다. 시위의 소음과 최루탄 연기에 눈물을 흘려가며 맹렬히 연습하는 라일라(사브리나 아마리)와 밝고 쾌적한 조건에서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는 론(다니엘 돈스코이). 그에 더해 오디션을 위해 라일라는 론이라면 겪지 않을 검문소의 고압적이고 일촉즉발의 긴장이 흐르는 관문을 통과하여 고된 여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작은 것부터 다른 환경 속에 살아온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사람들이 다른 시각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우려했던 대로 동일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되었지만 서로를 향한 무조건적인 반감을 보여주듯 연주자들은 첫 연습의 시작부터 대립한다. 악장의 자리를 놓고 그것이 두 집단의 우열을 가리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추호도 양보할 마음이 없고, 평화를 위한 연주는 시작도 전에 정치적 구호의 전쟁터가 돼버린다.

 

갈등의 현장을 떠나 오스트리아의 경치 좋은 곳에서 연습을 시작하지만 서로의 연주를 듣지 않고 적대적으로 대하는 모습에, 지휘자는 연습보다 단원 간의 화합이 우선임을 느낀다. 먼저 서로에 대한 솔직한 감정들을 털어놓게 하자, 상대에게 갖고 있는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저주의 말들이 쏟아진다. 그들의 기억 속에 있는 각각의 얘기는 대부분 부모나 조부모를 통해 평생 반복해서 들어왔던 간접경험들로부터 시작된다. 기성세대로부터 증오를 물려받고 그들과 동일한 감정과 적개심을 느끼도록 키워졌던 젊은이들 내면의 뿌리 깊은 반감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다행히 그토록 오랜 세대를 거치며 켜켜이 쌓여온 미움과 불신의 앙금은, 안토닌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의 2악장 선율과 함께 서로의 입장을 바꿔보며 조금씩 마음의 간극을 좁혀가는 노력들로 서서히 가라앉는 듯하다. 특히 이 곡은 ‘고향’이라는 공통의 정서로 공감을 가질 수 있는 곡이라는 점에서 그 선택의 안목이 돋보인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드디어 수십 년을 이어온 반목과 갈등의 해소를 위한 출발점이 되어줄 것 같았던 그들의 연주회는 작은 사건으로 인해 파국을 맞게 된다. 마음 깊이 쌓여있던 불신과 증오는 잠시나마 그들이 이룬 것 같았던 이해와 포용의 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렸고, 그들은 처음 모여 벌였던 난장판의 싸움을 재현한다. 결국 이들은 절대로 화해할 수 없고 서로에게 끝없는 폭력을 가하며 영원한 원수로 지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인가? 이쯤에서 오마르(메드히 메스카르)와 쉬라(에얀 핀코비치)가 사랑에 빠졌던 과정을 되짚게 된다. 그들은 여느 단원들과 달리 서로에 대한 편견 없이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 노력했기에 결국 사랑까지 이를 수가 있었다. 비록 그들의 사랑이 작은 실수로 인해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은 두 나라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연주회장이 아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공항에서 그들은 처음 모였을 때 그 모습처럼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다. 그때 오마르의 사망 소식과 그로 인해 연주회가 취소됐음을 전하는 뉴스가 방송된다. 그런데 그 순간 론은 자신의 바이올린을 꺼내 들고 팔레스타인 단원들을 바라보며 활로 유리 벽을 두드려 리듬을 만든다. 곧이어 드럼 연주자가 그 리듬에 합세하고 이제는 팔레스타인 연주자들을 포함한 다른 연주자들도 하나둘 그 리듬에 맞춰가며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를 연주한다. 매우 뻔한 전개임에도 서로를 마주 보며 결국 모두 함께 악기를 연주하여 아름다운 한 곡을 완성해내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감동이 전해진다. 언젠가 저들 사이를 가르는 저 유리 벽을 뛰어넘어 함께 평화의 연주를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오늘, 바로 지금, 두 나라가 마주 보고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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