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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사람들> 리뷰 : 커튼을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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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6. 1.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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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사람들>

커튼을 걷고

 

콜센터에서 일하는 진아(공승연)는 동료들과의 교류도 없이 종일 상담 전화를 받는다. 고객이 어떤 태도로 어떤 말을 하든지 흔들림이 없으며 그저 문의을 처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진아는 회사의 에이스지만, 그것은 그저 매뉴얼대로 응대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는 것에 따른 것이다. 진아는 상담원지만 진짜 상담을 하지는 않는다. 대체로 해달라는 것을 해주거나 거절할 뿐이다. 지난 한 달 카드 내역을 읽어달라고 하면 읽어줄 뿐이고, 타임머신을 발명한 고객의 카드는 과거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할 뿐이다. 영문도 없이 화를 내고 진상을 부리는 고객에게도 잘못한 일 없이 다만 죄송하다고 하면 끝이다. 진아에게서는 사람의 삶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에 아무런 보람이나 즐거움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는 스트레스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오직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뿐, 거기에 대한 반응이 없다. 아무리 일은 일일 뿐이지만, 온종일 상담을 하는 진아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적막하며 어쩐지 쓸쓸한 감정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진아가 적어도 사생활의 면에서는 적막하지 않고 쓸쓸하지 않게 살고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진아의 사생활은 방 한 칸으로 이루어졌다.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지도 않는다. 아파트에 살지만 거실이나 주방을 사용하지도 않고, 아파트의 방 한 칸에서 생활한다. 진아의 방을 채우는 것은 오직 TV소리다. 진아는 24시간 꺼지지도 않는 TV에서 흘러나오는 것만 바라보고 있다. 또한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으며, 이어폰으로 외부 소리를 차단한다. 회사 생활과 마찬가지로 그저 적막하고 쓸쓸할 뿐이다.

 

이런 진아의 삶에 세 인물이 개입해온다. 진아는 어느 순간 이들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반응을 하게 된다. 세 인물은 진아 엄마의 임종을 지켰던 아버지(박정학), 회사의 신입직원 수진(정다은), 옆집 남자 성훈(서현우). 각각 가족, 직장, 이웃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이 세 인물은 끊임없이 진아에게 말을 걸지만, 진아는 좀처럼 의미 있는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회사에서 전화 상담을 하듯이 필요한 것을 요구하거나 부탁을 거절할 뿐이었다. 세 사람과의 관계는 별개의 세 관계인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로 이어져 진아를 변화시킨다. 진아의 엄마는 죽었다. 옆집 전 세입자도 죽었다. 진아에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정리되지 못한 무엇이다. 엄마의 유산은 외도했다 돌아온 아버지에게로 모두 넘어갔고, CCTV를 통해 본 아버지의 삶에는 애도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엄마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상담 실적 1위를 유지한 것을 보면, 진아에게는 충분한 애도가 있었을지 역시 의문이다. 진아는 엄마의 죽음을 대할 때조차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한 것 같다. 하지만 이 태도에 대한 의문은 옆집 남자 성훈의 행동으로 인해 변화하게 된다. 성훈(서현우)은 얼굴도 본 적 없는 전 세입자의 제사를 아파트의 다른 주민들과 함께 지낸다. 혼자 살다가 포르노 DVD에 깔린 채 죽은 그 사람을 추모하는 것이다. 여기서 진아의 삶이 흔들린다. 타인의 삶에 전혀 관여하지 않던 사람이 처음으로 타인에게 말 같은 말을 건넨다. 진아는 회사에 무단결근을 한 수진에게 사과하고 제대로 된 작별을 고한다. 잘 보내지 못한 것들을 잘 보내기로 한다.

 

영화는 정말로 혼자 사는 사람들을 비춘다. 특히 진아는 늘 수신만 하던 사람인데 처음으로 송신을 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모든 교류에서 마음을 활짝 열고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내어줘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각 관계에 맞는 정도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면 될 일이다. 아마 그래서 수진에게는 제대로 사과를 했고, 아버지에게는 우리는 이 정도 관계를 유지하자고 말을 건넸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아처럼 우리가 커튼을 걷거나 창문을 열 수 있다는 점이다. 빛이 많이 드는 편이 좋다.

 

-송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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