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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빛, 좋은 공기> 리뷰 :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5. 11.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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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빛, 좋은 공기>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

 

영화의 제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좋은 빛, 좋은 공기란 대한민국의 한 도시의 이름 뜻과 아르헨티나의 한 도시의 이름 뜻을 나란히 놓은 것이다. 광주光州를 달리 이르는 말은 빛고을이고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는 문자 그대로 좋은 공기라는 뜻이다. 두 도시의 이름을 풀어 나란히 배치하니 어쩐지 자연의 따스하고 신선한 기운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영화에서 드러나는 두 도시의 근과거 역사는 실상 그렇지 않다. 19805월 광주에서는 신군부 세력에 의해 7천여 명이 무고한 희생을 당했고, 1976~1983년의 아르헨티나에서는 군사정권에 의해 7천여 명의 사상자, 3만 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두 도시가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서로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두 도시의 이름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필수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의 부분을 뜻한다는 점이 기묘하게 연결된 느낌을 전한다. 영화는 아주 일관되게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을 잇는 시도를 한다.

 

과거와 현재

영화의 시간은 크게 세 축으로 이루어져 서로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시간이 세 축이라는 것이 이상하지만 그 점이 이 영화의 독특한 운동성을 만들어낸다. 첫 번째 축은 70~80년대를 겪었던 피해자들이 당시의 일을 증언하는 인터뷰와 각종 이미지 자료로 구성되는 과거다. 두 번째 축은 과거의 역사에 대해 올바른 청산을 원하는 피해자와 조력자가 직면한 현재다. 그리고 세 번째 축은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잇는 영상교류워크숍인 거울-당신의 고통을 나누는 방법에 참가한 청소년들의 현재다. 과거의 사건에서 한 세대를 넘어간 상태이며, 이 끔찍한 과거를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를 비교적 명확한 시점으로 대변한다.

이 세 축은 서로 협력해서 두 개의 시간 운동을 만들어낸다. 특히 세 번째 축은 영화의 돌발적인 운동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축이기도 하다. 만약 첫 번째와 두 번째 축만 영화에 존재했다면 아마 가장 기본적인 과거와 현재를 일직선으로 왕복하는 운동만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피해자와 피해자의 조력자들의 시간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대의 시간이 존재한다. 이 청소년들의 시간은 현재에서 출발해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새로운 현재로 나아간다. 이들의 시간은 최초의 피해자들과 조력자들과 다른 선에서 흐르고 있으며, 피해자와 조력자보다 분명히 더 먼 미래의 시간으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잔혹한 군부독재의 피해를 다루지만, 세 축을 통한 부지런한 시간의 움직임이 영화에, 그리고 영화가 담은 실제 세계에 생명력 불어넣는다.

 

 

이곳과 저곳

영화는 시간을 연결해 나가기도 하지만 장소를 연결해 나가기도 한다. 이 영화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흑백화면과 컬러화면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색채 빠진 이미지는 편집을 통해 이어 붙어서 거리감을 무화시키고 이곳과 저곳이 아주 가깝게 위치한 느낌을 준다. 주로 희생자의 어머니로 이루어진 광주의 오월어머니집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오월광장어머니회70~80년대에서 현재까지 겪은 어떤 유사한 형태의 일들과 태도들이 더욱 그렇게 만든다. 물론 현재 이들이 감당하고 있는 것들이 완전히 같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에 나타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독재 역사의 시기가 훨씬 길기도 했고, 피해의 규모가 훨씬 컸으며,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것에 관해서는 광주보다 더욱 진일보한 형태로 진행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현재는 오월어머니집에서 투쟁하고 있는 사안의 지향점처럼 보이기도 해서 미묘하게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느낌을 준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참혹한 항쟁 기간 시장에서 푸른 나물을 통해 생명을 느끼고 지금도 그 나물, 쑥갓을 보면 좋은 느낌을 받는다는 광주 시민의 인터뷰와 함께 영화는 서서히 컬러로 전환된다. 광주의 인터뷰가 흰 벽의 병원 복도를 지나 초록이 무성한 수풀에 가까이 가는 쇼트 위로 흐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좋은 빛, 좋은 공기에 관한 인터뷰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실종자들이 떠오른 바다 근처에도 역시 초록 잔디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초록 쑥갓과 좋은 빛, 좋은 공기 이야기는 푸른색을 띠는 화면과 만나 미래의 어떤 상생적 느낌을 전한다.

 

<좋은 빛, 좋은 공기>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이면서 희생자들과 역사에 대한 현재의 올바른 태도를 고민하는 탐구서다. 영화의 답변은 마지막 장면으로 정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은 가상으로 구성된 에스-에스마(전 해군 사관학교, 비밀감금소) 기억의 공간 박물관에 광주의 청소년들이 들어간 장면이다. 우리는 이제 더 깊이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의 세상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고통을 나누고, 더 깊은 관심으로 대해야 한다. 미얀마가 진행 중이다.

 

-송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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