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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리뷰 : 두 번째 폭동이 일어날 때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5. 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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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두 번째 폭동이 일어날 때

 

사회문제에 대해서 흔히 사회구조,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개개인의 잘못도 있지만 애초에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얘기, 시스템이 먼저 잘 갖추어져 있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는 얘기. 하지만 이 시스템이라는 게 얼마나 복잡하고 어렵게 실행되는지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정말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면 사회문제가, 이주민 문제가, 종교 분쟁이 해결될까? 정치인들이 기가 막힌 정책을 내놓고 실행하면 뭔가 해결이 될 것도 같지만, 사실 꼭 그렇게 풀리지는 않는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국가에서 시행하는 정책만 시스템이 아니고, 어느 도시나 어느 동네나 작게는 어느 집안에도 그 나름 굳어져 온 시스템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굴러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울지도 모른다. 모든 게 잘 굴러가더라도 시스템도 사람이 실행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너무나 큰 변수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몽페르메유는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을 쓰게 만든 도시다. 1862년 당시에도 너무 처참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처참하기 짝이 없다. 현재 이곳에는 이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으며 마약과 매춘이 판을 치고 있다. 오랫동안 몽페르메유 구역을 담당해온 경찰들은 주민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여기고 의심의 눈초리로 살핀다. 간혹 아무 증거도 없이 불시검문을 하기도 한다. 과거에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들과 모종의 커넥션을 가지기도 한다. 불법인지 아닌지, 옳은 일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경찰의 권력을 앞세워 폭력적으로 대하는 것을 이 동네를 관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긴다. 스테판(다미앵 보나르)의 시선으로 이어지는 이 영화는 이민자를 대하는 경찰 권력에 대한 명확한 비판을 품고 있다. 영화 자체가 프랑스의 실패한 이민 정책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영화는 시스템 차원의 비판보다는 사적인 차원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첨가한다. 시스템이라고 하는 이 경찰들이 어떻게 이민자들을 대했는지, 여기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영화는 고무탄 오발 사건이 어쨌든 수습되는 기색을 띠자 갑자기 경찰들의 사적인 순간을 집어넣는다. 이 영화의 이상한 정점인 퇴근 후 경찰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스테판은 떨어져 사는 아들을 보고 싶은 아빠, 크리스(알렉시 마넨티)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두 딸을 돌봐야 하는 아빠가 됐다. 그와다(지브릴 종가)는 오늘 하루의 일 때문인지 엄마가 보는 앞에서 눈물을 쏟고 만다. 스테판과 그와다는 고무탄 오발 사건에 대해서 일면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하다. 너무나 거칠고 폭력적이고 견고해 보이던 경찰 시스템의 실체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장면들은 대단히 유별나지도 않은 것 같은 사람들이 경찰이 되었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스테판과 그와다 크리스로 이어지는 경찰의 어떤 스펙트럼이 있다. 이 시스템은 실질적으로 하나의 고정된 입장과 태도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명확한 지침과 법 테두리 안에서도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간다. 안타깝게도 시스템을 대변하는 인물들의 개별성의 부작용은 약자를 향하게 된다. 이것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사(이사 페리카)와 몽페르메유 지역의 아이들이 화염병을 던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의 바탕에는 2005년 파리 소요사태에 대한 어떤 회고와 반성이 깔려있다. 파리 소요사태는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인 클리시수부아에서 벌어진 일로 촉발되었다. 세 명의 무슬림 이민자 소년이 경찰의 추격을 피해 변전소에 들어갔다가 두 명이 감전되고 한 명은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 이에 대해 경찰과 정부는 추격한 적이 없다고 했으며, 이 사건은 계층 간의 갈등으로 번졌고 프랑스는 폭동에 휩싸이게 된다. 영화는 파리 소요사태 이후 대대적인 변혁에도 그다지 나아진 바가 없는 이민자의 현실을 다룬다. 동네 사고뭉치인 이사는 고무탄 오발에 죽을 뻔했지만, 단지 자신이 원래 사고뭉치여서 다쳤다고 제 입으로 말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남의 집 닭이나 새끼 사자를 훔치긴 했지만, 죽을죄는 아니었다. 이 이민자 2세들은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지 않을 수 없다. 2005년과 현재에 차이가 없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인용문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시스템을 고친다고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 공고해 보이는 시스템이 사실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송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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