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정말 먼 곳 | 박근영 감독, 강길우 이상희 배우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5. 10. 19:22

본문

<정말 먼 곳>

/2021.04.02.

 

김진유 감독 진행

박근영 감독, 강길우 배우, 이상희 배우 초청

 

_

이상희 : 안녕하세요. 배우 이상희입니다. 신영극장에는 방문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때마다 촬영이 생겨서 오늘 처음 오게 되었는데요. 극장 분위기가 너무 좋고 오래오래 지켜 갔으면 하는 극장인 것 같아요. 이곳에서 만나 뵙게 되어 더 특별하고 너무 감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 오늘 재미난 시간 함께 보내고 들어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길우 :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에서 진우역을 연기한 배우 강길우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올해 초 2월에도 왔었고 지난해에도 이어서 방문했는데 매번 올 때마다 조금 썰렁했었거든요. (웃음) 제가 방문한 이래 가장 많은 관객들이 자리해주신 것 같아 감사드립니다.

 

박근영 : 안녕하세요. 저는 <정말 먼 곳>을 연출한 박근영입니다. 신영극장에는 관객으로만 몇 번 놀러 왔었는데 이렇게 제 영화로는 처음으로 관객을 만나 뵙게 돼서 오는 길 내내 굉장히 설렜고요. 모두들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고, 또 강원도에서 찍은 영화인데 강원도에 계신 분들에게는 영화가 어떻게 보였을지에 대한 부분도 함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진유 : 오늘 진행 중에 질문이 있으실 경우 손을 들어주시면 마이크가 전달될 예정이니까요. 자유롭게 질문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고요. 관객 여러분이 질문을 생각하시는 동안 제가 준비한 질문을 먼저 드려보겠습니다. 영화 <정말 먼 곳>은 저에게 굉장히 반가운 영화였어요. ‘오랜만에 기다려서 찍는 영화가 나왔다라는 생각? 촬영 현장의 상황은 늘 급작스럽게 벌어지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는 촬영 준비며, 배우들 모두가 성실히 리허설을 했다고 느껴져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배우 두 분에게는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를, 감독님께는 이 영화의 출발 지점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이상희 : 저는 이 영화를 전주영화제 때 박근영 감독님께 대본을 받아서 처음 접하게 됐고요. 이 이야기가 저에게 마음이 많이 가더라고요. 작품을 계속해서 하다 보면 조금 더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를 만나는 때가 있는데 그 빈도가 높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이 인물들에게는 너무나 마음이 가고 나도 한 구성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원래 제 역할이 진우의 동생역이었거든요. 너무 탐이 나기는 하는데, “나는 강길우(진우 역) 동생은 못 하겠다. 그렇게 되면 관객들이 몰입에 방해가 될 것이다.”라고 했어요. (웃음) 그러던 중에 저희 영화의 PD를 맡아주신 장우진 감독님께서 박근영 감독님과 상의한 끝에 쌍둥이라는 설정은 어떨까하는 이야기가 나왔고요. 저 또한 동의해서 그 아이디어가 정말 반갑고도 감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감독님은 쌍둥이라는 설정으로 인해서 어떤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것 같고 이 작품 안에서 둘은 아주 다른 사람인 듯 보이지만 비슷한 길을 걷는 부분도 있거든요.

 

김진유 : 처음부터 이란성 쌍둥이는 아니었던 거군요.

 

이상희 : 원래는 여동생이었죠.

 

강길우 : 그 역할은 못하겠다고 하셔서.. (관객 웃음) 저는 이 영화를 선택을 했다기보다는 영화 촬영을 2019년도 10월에 했는데요. 1년 전인 201810월에 감독님과 지방의 영화제를 다니다가 화천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저에게 보여주셨고, 여기에서 영화를 찍고 싶은데 어떤 이야기가 좋을까라는 이야기부터 나눴어요. 전주영화제의 피칭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촬영이 시작되기까지 옆에서 함께 의견도 주고받으면서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캐릭터를 만들어갔죠. 본격적으로 제가 진우로서 캐릭터를 만든 것은 전주에서 피칭(pitching)이 되고, 제작 지원이 확정이 됐을 때 외형부터 내면까지 어레인지(arrange)를 하면서 만들어갔죠.

 

박근영 : 저는 강길우 배우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기차 타고 가면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 나눈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었고 지인이 살고 계셔서 그 전 6~7년 전부터 화천을 자주 오갔어요. 그곳의 공간들에 매료가 되면서 여러 가지 느낀 것과 생각들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곳에서 살고 싶다’, ‘여기서 살면 어떨까하는 것을 강길우 배우와 함께 기차에서 이야기 나누게 되었죠. 화천이라는 공간 그리고 강길우 배우가 있었고, ‘정말 먼 곳이라는 시가 또 생각이 났고. 그런 것들에 복합적으로 영감을 받아서 만들어진 이야기에요.

 

김진유 : 공간에서 출발해서 시까지 생각이 났고, 그것들이 종합되어 시나리오 작업을 하시게 된 거네요.

 

박근영 : . 처음은 공간, 그다음 강길우 배우랑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이야기 목장에서 일하는 청년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청년은 어떻게 해서 이 공간에 오게 되었을까. 또 박은지 시인의 시가 떠오르면서 이야기가 흘러갔던 것 같아요.

 

김진유 : 영화를 보다 보면 시가 당연히 떠오를 법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더 좋았던 부분이었어요. 영화에 기주봉 선생님과 기도영 배우님이 나오시는데요. 실제로 두 분은 부녀 관계이시잖아요. 그 두 분의 연기뿐만 아니라 관계 또한 매우 놀라웠고, 함께 작업하게 되었을 때 들었던 기분 혹은 함께 합을 맞춘 소감 같은 것이 있을까요.

 

이상희 : 저는 사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 문경이라는 캐릭터가 되게 씩씩하고, 단단하고, 듬직하다고 봤었거든요. 그런데 기도영 배우가 이 역할을 소화하면서 본연의 심성이 묻어서 되게 깊은 레이어가 생긴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기도영 배우 말고 다른 배우가 그 역할을 했다면 도영 배우가 연기한 따뜻하고 깊은 배려와 품성들이 잘 드러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우리 팀의 운이 좋았죠. 이런 구성원을 만난 건. 또 부녀 관계이기에 저에게 재밌던 것은 기주봉 선배님께서 굉장히 열려계신 분이거든요. 후배들이랑 지낼 때도 진짜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주세요, 항상. 함께 있다 보면 여러 가지 잡담을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기도영 배우가 저 멀리서 다가오면 갑자기 멋있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웃음) 변모하시는 거죠.

 

김진유 : 감독님이랑 이야기 하다보니까 기주봉 배우님이 술을 되게 좋아하시는데 그걸 기도영 배우가 딱 커트해주는 역할을 하셨다고도 들었어요.

 

박근영 : 다음 날 촬영이 있을 때는 늦게까지 마시면 안 되니까. 또 현장의 스태프들의 나이대가 꽤 어린 편이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기주봉 배우님께 이제 그만 드시죠라는 말은 쉽게 할 수가 없는데 기도영 배우님께서...

 

이상희 : “아빠 그만 마셔!” (관객 웃음)

 

박근영 : “그만 마셔!” (웃음) 라고 하면 그걸 기주봉 배우님은 그럴까? 그래 내일이 있지.”라고 잘 들어주셔서 많은 부분에서 의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강길우 : 저는 원래부터 기주봉 선배님을 굉장히 좋아하고 존경했었어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이랑 저랑 셋이서 만나서 인사하는 자리도 따라갔었는데, 촬영이 시작되면서 원래 너무 좋아하던 선배님이니까 좀 어려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배우 기주봉 선배님이 아니라 도영이 아빠로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관객 웃음) 너무 편해지더라고요.

 

김진유 : 영화 속에서도 도움이 되셨겠네요.

 

강길우 : 좀 더 편해지고 난 뒤에는 선배님 얼굴을 잘 보게 되더라고요. 눈을 맞추는 게 저에게는 조금 어려웠는데 그가 가진 수염의 모양도 진우의 수염 모양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면서 어떤 공통점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재밌었던 건 도영 배우가 신고 다닐 슬리퍼를 구매해서 숙소로 배달받았는데 아빠 거랑 본인 것을 산 거죠. 그런데 사이즈를 잘못 산 거예요. 핑크색이 본인 거였는데 그 핑크색 슬리퍼를 선배님이 신고 다니셨어요. 본인은 회색을 신고. 그건 진짜 아빠와 딸만 할 수 있는 행동들이잖아요. 너무 좋았어요.

 

김진유 : 기도영 배우님은 영화에서 옥수수를 건네는 장면에서 한 컷에 모든 게 설명이 되더라고요. ‘아 이 사람은 진우를 좋아하는 구나.’ 그리고 설레하고 있구나.’를 딱 표현하는 배우여서 익숙하지 않은 배우였는데도 너무 놀라웠어요. 굉장히 몰입감이 생기는 배우였어요.

 

박근영 : 저도 도영 배우의 연기를 통해 두 번의 황홀했던 순간이 있었는데요. 마찬가지로 옥수수 주던, 잠깐의 멈춤이 있을 때의 눈빛에 대한 부분이 있었고 후반부에 볏짚을 나르다 잠깐 1초 정도 둘이 말없이 눈이 딱 마주치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그럴 때 도영 배우의 눈빛이 너무 좋아서 현장에서 보면서도 놀라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진유 : 혹시 이쯤에서 관객에게 마이크를 넘겨볼까 하는데 질문하고 싶은 분이 계실까요?

 

이상희 : 그런데 진짜 오랜만인 것 같아요. 코로나 이후로는 채팅방으로 들었잖아요. 그런데 진짜 오랜만에 육성으로 질문을 듣겠네요. 기대된다. 부담 드리는 건 아닙니다. (웃음)

 

관객 1 : 극 중에 할머니로 출연하신 배우님이 굉장히 인상이 깊었어요. 저는 처음 뵙는 배우분이셨는데 그 연령대의 배우님을 섭외하기가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원래 전문 배우였는지, 아니면 일반인이 출연하신 건지 궁금해요. 일반인이 출연하신 거라면 굉장히 실감나게 연기를 해주셔서 어떻게 디렉팅 하셨을지에 대해 궁금합니다.

 

박근영 : 할머니역을 연기해주신 최금순 배우님은 아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겠는데 <명패>라는 단편영화를 만드신 이용래 감독님의 친할머니세요. 조선족이시고, 실제로 연기에서 수십 년간 배우로 활동하신 배우님이세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그 나이대의 배우를 찾기에 어려움이 있어서 헤매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마땅한 후보조차 찾을 수 없던 중에 강길우 배우가 이용래 감독님과 단편 작업을 많이 했던 덕에 최금순 배우님을 소개를 받게 되었고, 영화 속 설정들이나 연기 등의 모든 면에서 가장 딱 맞아떨어지는 배우였기 때문에 적합한 배우를 참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던 경우였어요. 굉장한 베테랑의 배우셔서 디렉팅이 어려운 적은 없었고요. 철저하게 컨트롤해서 연기를 보여주셔서 오히려 어떻게 보면 현장의 스태프들이 그 연기력에 더욱 압도되는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연기의 무게가 크게 남았었기 때문에 저한테는 되게 소중한 캐스팅이었죠.

 

김진유 : 마지막 식사 중에 할머니가 찌개를 끓여주시잖아요. 큰 어른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끼리 따뜻한 밥 한 끼 먹이고 가겠다는 어떤 인사로 느껴지는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은 시나리오 작업부터 염두에 두셨던 부분일까요?

 

박근영 : 시나리오 쓸 때부터 구성을 했던 측면도 있었고, 저는 이 영화가 어떤 슬픈 우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만들었거든요. 죽음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의 요소들을 동화처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김진유 : 또 할머니가 식혜를 만들어주실 때 기다려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시잖아요. 그 순간 은영이라는 캐릭터가 조금 변화하는 부분이라고 느꼈거든요.

 

이상희 : 그 장면은 대본 과정에서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나눌 때 감독님께서 은영과 할머니 사이의 어떤 교감이 있는 신을 만들려고 한다. 혹시 아이디어가 있겠느냐 물으셨어요. 그런데 그때 당시 저희 엄마가 갑자기 아프셔서 울산의 병원으로 급하게 내려갔거든요. 모든 게 짜증이 나더라고요. 잘해드려야 하는데 엄마가 아픈 것부터 정말 모든 게 심통이 막 올라오는 거예요. 그 병동이 6인실이었거든요? 며칠 병원에서 지냈는데 옆에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께서 저를 부르셨어요. 그래서 갔더니 갑자기 제 머리를 쓰다듬으시고는 자두를 한 알 주시더라고요. 그때 되게 위로를 받았고 엄마를 대하는 나의 마음을 다시 볼 수 있는 것 같았어요. 그 경험을 감독님께 전해드렸을 때 시나리오에 반영해주셨죠. ‘식혜를 끓일 때는 천천히 기다려야 한다라는 것은 감독님이 의미를 부여하신 부분이고, 그 순간 쓰다듬는 제스처가 내용으로 담겼죠. 그 장면을 연기하며 그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해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십몇 년간은 누구도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적이 없던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박근영 : 이상희 배우님의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둘 사이에 특별히 전사가 없이 뜬금없을 수도 있는 행동임에도 이상한 위로를 받게 되는 부분이 되게 좋았어요. 식혜는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것이 생각이 나서 적용하게 되었고, 영화 속 은영은 내내 홀로 외로이 서 있는 입장이다 보니 예측 못 한 위로가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관객 2 : 영화 잘 봤습니다. 저는 감독님께 두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첫 번째로는 영화 내 감독의 태도가 배우들과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마다 카메라의 무빙이 있을 때 저는 그걸 감독이 개입하는 순간이라고 느꼈는데요. 그런 연출을 하실 때 어떤 원칙 혹은 관객들이 어떤 걸 느끼길 바라고 움직이셨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부엌 공간에서 인물하고 공간이 놓이는 프레임이 되게 낯설다고 해야 할까요? 마지막에 밥 먹는 장면 같은 경우는 반으로 나누어서 인물들이 안쪽에 있는 장면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한 씬 연출에 대한 부분도 함께 궁금합니다.

 

박근영 : 영화를 만들 때 카메라의 태도를 생각하고 접근하는 측면이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조금 멀리서 떨어져 지켜보고 있는 식의 태도를 유지하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영화 속에서 중만의 태도와 비슷할 것일 수 있겠는데요. 중만이 특별히 진우와 현민에게 개입해서 묻거나 확인하지 않잖아요. 카메라의 태도가 약간 그와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인물들에게 최소 한 번 이상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을 찍자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장면들은 어떤 타이밍에 어떤 식으로 찍을까를 고민 했었어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는 오히려 이 서사 안에서 인물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담고 싶었고, 직접적으로 감정이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가까이서 찍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랬을 때 관객들이 인물들에게 이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에 대해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상상의 여지를 남길 수 있을까를 바탕으로 카메라의 위치를 계획했던 것 같습니다. 또 영화 속에 많이 등장하는 식사 장면 같은 경우도 그 식사 신들 마다의 목표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이 다 달랐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촬영으로도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을까, 이 신의 목표에 걸맞은 연출을 하기 위해 고민했던 것 같고요. 일반적인 롱샷보다 더 멀어지는 것을 의도했던 것들이 결국 계속해서 낯선 느낌을 던져주고 싶었습니다. 카메라의 위치만으로 어떤 낯선 자극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관객 3 : 저는 영화에 등장하는 양에 대해서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양이 꼭 사람 같다라는 대사도 그렇고, 특별한 소재로써 양이 선택된 것과 영화의 개연성까지도 궁금합니다.

 

박근영 : 여러 가지 동물 중에 선택하는 식의 발상은 아니었고요. 공간에서 출발한 영화였기 때문에 영화에 등장하는 상징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이었어요. 우화나 동화 같은 느낌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부분에서 양의 존재감이 컸고요. 화천이라는 공간이 가진 풍광들이 너무나 다채롭고 아름답기도 해서 그곳에 사는 동물들이 캐릭터가 되어 좋은 힘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또 아까 언급한 것과 같이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형식에 있어서 거리감을 제일 화두에 두고 인물 간의 거리감, 조명에서 명암의 거리감 같은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거든요. 양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발생하게 되는 신화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미가 있을 텐데요. 그 의미를 영화의 어떤 다른 의미에 대해서 더하고 싶었던 거죠. 우리가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거리감의 문제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거리감 이 탄생과 죽음의 거리감의 순환 속에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양을 통해 풀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김진유 : 거리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셔서요. 촬영이 망원렌즈 계열로 촬영이 이루어졌는데, 멀리 있지만 가까이 있는 듯한 형태로 보이는 부분,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부분이 영화를 잘 설명하는 장치가 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상희 배우님께 듣고 싶은 내용인데요. 장례식장 신에서 뒷모습만 비치고 있을 때 얼굴을 보이지 않지만 감정이 계속 느껴지잖아요. 굉장히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발적으로 아웃팅을 해버렸고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 계속해서 남아 있었을 텐데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상희 : 힘들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먼저 괜찮을 것 같은지를 물어보셨는데, “진우가 먼저 나한테 상처 줬잖아. 내 딸 아니라고 이야기했잖아. 그러면 나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을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는 입이 너무 떨어지지 않는 거예요. 저희 둘 다. 같이 살아온 시간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서로의 상처를 누구보다 가까이 봤을 수도 있잖아요. 상황이 만들어낸 우발적인 행동 때문에 뱉었음에도, 뱉은 순간 알게 되니까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 그런 경우가 저에게는 특히나 가족들을 향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중에서도 저희 엄마에게. 내가 꺼낸 말이지만 너무 패닉의 상태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요. 미안하단 말도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진우를 찾아가지만 미안하단 말이 나오지 않는 거죠.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진우가 떠나고 현민이가 잠깐 은영을 보고 가고 난 뒤 그 자리에서 은영은 혼자 무너지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박근영 : 진짜 고민을 많이 했었거든요. 이 우발적인 사건이 이렇게 일어날 수 있을 만큼의 어떤 감정적인 동요, 우발적인 마음이 다 섞여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결국엔 이 모든 게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저희 외할아버지 칠순 잔치 때 외삼촌이 한 번 아주 큰 상을 뒤엎으신 적이 있거든요.

 

이상희 : 왜 그런 일은 각 집에서 다 있는 걸까요. (관객 웃음)

 

박근영 : 그러니까요. 그 잔칫날 상이 뒤엎어지고 욕설이 난무하던 기억이 있는데 오히려 가족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관객 4 : 영화에 나오는 화천의 아름다운 공간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혹시 배우님들이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가 있을까요?

 

강길우 : 대표적으로는 목장에 한 번 가보시길 추천드리는데요. ‘해피 초원 목장이라고요. 저희가 촬영할 즈음에 SNS의 포토존으로 유명해졌어요. 또 진우와 현민이 둘이서만 놀러 갔던 섬.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여러분들은 영화에 담긴 영상으로만 보셨지만 실제 제 눈으로 봤을 때 더욱 아름다운 것들도 많았거든요. 한 번 가보셨으면 좋겠어요.

 

이상희 : 은행나무 있는 곳은요?

 

강길우 : 은행나무는 화천 성당에 있죠. 아주 오래된 나무에요. 가지치기를 해서 현재는 영화 속에 나온 것만큼 풍성하지는 않을 거예요. 하나의 에피소드인데 감독님께서 수년 전부터 이곳에서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을 하시고 그 장면을 찍는 날이었어요. 성당에서 그 큰 나무를 가지치기하려고 예약을 해둔 상태였는데요. 그런데 저희는 찍어야 했으니까 못 찍으면 의미가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어렵게 가지치기 일정을 미뤘죠. 그 나무 외에 카메라에 담긴 다른 나무들은 이미 가지치기를 다 끝낸 상태였어요. 저희를 위해 기다려주신 거죠. 그래서 지금의 나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화천이라는 공간이 전부 예뻐요. 그래서 꼭 한 번 가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진유 : 은행나무 하니까 또 영화 <나는 보리>에 나왔던 장덕리의 은행나무를 추천드립니다. (관객 웃음) 또 질문이 있으실까요?

 

관객 5 : 설이가 은영이를 깨워서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잖아요. 화장실 밖에서 설이를 기다리는 은영이가 나지막하게 설아하고 부르는데, 은영이가 꺼내고 싶었던 말을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요.

 

이상희 : 너무 조용하니까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할까 하는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은영이가 설이 앞에서 많이 서툴잖아요. 지금이 내 손길이 필요한 순간인지 아닌지를 제가 잘 모르는 거죠. 그래서 설이를 불렀는데 혼자 알아서 잘하고 있는 것을 듣고, 그때 어디 안 간다는 말을 마치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이 한 것 같아요. 사실 설이에게 분명 엄청난 죄책감이 있었을 거예요. 깊은 죄의식 앞에서 도망치지 않으려는 어떤 다짐? 그날로부터 영화가 끝난 이후 은영은 설이에게 아마 한 발짝 더 다가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 6 :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저도 의도치 않게 세 번을 관람했네요. 제가 영화를 볼 때마다 공통적으로 마음이 갔던 캐릭터는 현민이었거든요. 현민의 등장으로 인해서 안락한 일상이 변화가 오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요. 감독님께서는 처음 현민이라는 캐릭터를 어떤 의도로 설정해나갔는지와 영화에서 현민이 트럭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앉아있는 모습이 두 번 정도 나왔었거든요. 그때 현민은 어떤 마음이어야 했을까가 궁금합니다.

 

박근영 : 현민이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 어떤 사람이 상처나 시련을 받아들이는 방식,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부분은 진우도 마찬가지고요. 또 이 부분에서 두 인물의 차이점을 주고 싶기도 했고요. 진우는 기존에 갖고 있던 본인의 세계를 등지고 새로운 세계에서 시작한 것들에 대해 본인을 갉아 먹으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라면, 현민은 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놓아버려서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더 웃어 보일 수 있고요. 하지만 더 냉정해질 수 있는, 웃으며 다가가지만 거리감을 두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했어요. 트럭에서는 그 두 가지의 태도가 부딪히는 장면이었는데요. 어떤 한 방향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한 가지로만 이야기하게 될까 걱정이 되는데, 여러 가지 현민의 생각이 겹쳐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현민이 은영에게 이야기한 이유라든지, 현민은 진우의 어떤 행동들을 끌어내고 싶어 했는지, 거기에는 진우에 대한 원망도 있었을 테고요. 현민은 직접적이기보다 돌려 말하고 어떤 행동을 해서 진우에게 어떤 변화의 여지를 주려고 하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관객 7 : 배역 중 설이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고, 원래 연기를 했던 배우인지 궁금합니다.

 

박근영 : 김시하 배우는 유일하게 오디션을 걸쳐서 만나게 된 배우인데요. 오디션장에서 다른 배우들은 어리지만 훈련이 잘되어 노련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김시하 배우가 오히려 도드라져 보였거든요. 시하 배우는 연기감이 거의 없었고 저희 영화가 첫 영화였어요. 다른 배우들이 양들과 뛰어놀면서 뭔가 영화 속의 대사일 법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 그러니까 시하 배우만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소먹이를 주고 있고 사람들이 버리고 간 모이통으로 놀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별로 열심히 놀고 있지 않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에게만 눈길이 가더라고요. ‘아 설이라면 이렇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설이는 목장에서 자란 아이니까 매일같이 보는 양들을 그렇게 신기해하지 않을 테고 저게 바로 설이의 모습이라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그곳에 있던 모든 스태프들과 저 또한 만장일치로 설이를 찾았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연기를 할 때도 경험이 없기 때문에 꾸며지지 않은 날것스러움이 참 좋았어요. 김시하 배우에게 놀라웠던 점은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기를 했던 점과 경험이 없는 배우가 5분 가까이 되는 식사 신에서 본인이 고민해서 주어진 디렉팅 이외의 것들을 스스로 채워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알아서 맞춰나가는 점이 대단했죠.

 

김진유 : 아마 현장 안에서 시하 배우가 어떤 성장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나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연기했기 때문에 따라 배울 수밖에 없던 현장이 아니었을까. 이제 마지막으로 질문하시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관객 8 : 현민이는 은영에게 진우의 위치를 알리면 진우의 행복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왜 위치를 알려줬을지에 대한 부분과 또 한 가지는 목사님들이 동성애에 대한 험담을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이후 진우가 성당 안에 앉아있는 장면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렇다면 감독님은 종교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시면서 이런 장면을 촬영하셨을지도 궁금합니다.

 

박근영 : 복합적인 이유에서였을 것 같아요. 물론 당장은 진우가 바라지 않는 일일 수 있죠. 현민의 마음에는 진우와 은영, 이들의 관계가 언젠가 풀리면 좋겠다. 또 설이에게도 친엄마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부딪히는 일들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이 가족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그러한 마음과는 달리 일이 꼬여버리긴 하지만요. 현민의 개인적인 욕망으로서는 진우와 둘의 사랑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삶을 바라기도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이 화천의 아름다운 풍경이 신같다고도 생각했어요. 신은 간섭하지 않잖아요. 내가 행복할 때 아름다운 풍경은 나를 더 기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내가 절망에 있을 때도 자연은 계속 아름답고, 그럴 때는 또 같은 풍경일지라도 잔인하게도 여겨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보다 보면 신하고 굉장히 비슷한 지점이라고 느껴지기도 했고, 기본적으론 그들은 그냥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김진유 : . 너무 잘 들어주셔서 모든 관객 여러분께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계속 상영이 있으니까 모두 1만 명이 될 때까지 한 번 더 봐주시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고요. 마무리 인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희 : 방금의 이야기에서 저도 살짝 덧붙이자면, 현민이는 조금 더 길게 본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설이가 진우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 없지만 이후에 설이가 갖게 될지도 모르는 생각들이 있잖아요. 그때 부딪히게 될 상처들이 있고요. 그건 진우 네가 지키고 싶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다. 그건 너의 이기심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현민의 입장에서는 더 멀리 보았다고 생각을 했어요. . 저희 영화는 7명의 다른 빛깔을 가진 인물들이 나옵니다. 각자의 빛깔을 가지고 있고, 서로 어떤 결함이 있을 수 있는데 이 모든 빛깔들이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촬영했던 것 같아요.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강길우 : 영화 봐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세 번 봐주신 분 (웃음)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무래도 코로나로 인해 극장에 관객이 많이 줄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같은 이유로 극장에 잘 가지 않는 마당에 극장을 찾아 달라 말씀드리기 쉽지는 않은데요. 그래도 저희 영화는 감독님이 늘 하시는 말씀하지만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때문에 더욱 극장이 더 소중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올 수 있다면 또 오겠습니다.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박근영 : 원래 제 성격은 굉장히 집돌이거든요. 그런데 요즘 유독 영화제에서 사람들과 왁자지껄 모여서 놀던 게 사무쳐요. 특히 이곳의 정동진독립영화제도 늘 그렇게 모여서 밤새도록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이었으니까요. 언젠가 그 시간이 돌아온다면 그때까지 우리가 극장을 지켜가는 게 중요할 텐데 오늘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극장을 지켜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언젠가 다시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바닷가에 모여 술 함께 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녹취 윤희경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