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더 파더> 리뷰 : 흘러가는 시간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4. 27. 02:11

본문

<더 파더>

흘러가는 시간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

 

영화 <더 파더>는 치매를 겪는 노인 안소니(안소니 홉킨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영화에는 기억을 잃어가는 인간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들이 주로 다루는 가족의 사랑, 이웃의 연대 등의 따뜻한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한 인간이 치매로 인해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정신적인 혼란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안소니의 아파트 내부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등장인물들도 병원 의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안소니의 아파트에서 안소니와 대면한다. 영화가 제한된 공간 안에서 펼쳐놓은 안소니의 분절되고 왜곡된 기억은 관객이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에게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장치로 작동한다.

 

안소니는 거실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남자(마크 거티스)를 보고 영화에서 가장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표정을 드러낸다. 남자는 자신이 안소니의 딸 앤(올리비아 콜맨)의 남편이며 안소니의 집을 자신의 집이라고 말한다. 바로 직전의 장면에서 안소니는 앤에게 애인과 함께 런던을 떠나 파리로 가겠다는 통보를 받는 모습이 그려진다. 안소니는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뒤이어 집으로 낯선 여자(올리비아 윌리엄스)가 들어와 자신이 앤이라고 말한다. 완전히 다른 기억이 충돌하는 이 상황을 시작으로 안소니는 계속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사실들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오롯이 안소니의 시점으로 서사를 풀어낸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안소니가 겪는 상황의 내막을 알 수 있는 정보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관객 역시 안소니와 함께 혼란을 느끼게 된다. 안소니가 방문을 열고 나와 마주하는 집안의 구조는 거의 유사하다. 그러나 안소니가 방문을 닫고 들어가 다시 나올 때마다 내부의 인테리어와 마주하는 인물들이 바뀌어 있다. 반복되는 극의 구성을 보며 안소니가 기억을 잃어가고 있음을 유추할 수는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안소니를 대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무언가를 숨기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안소니의 시선을 따라 주변의 인물들을 의심하게 된다.

 

그런데 안소니가 방문을 나올 때마다 바뀌는 상황들 속에 매번 안소니의 시계에 대한 이야기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안소니는 간병인이 자신의 손목시계를 훔쳐 갔다고 앤에게 말한다. 사실 손목시계는 안소니가 스스로 숨겨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안소니는 자신의 손목시계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심지어 앤의 애인 폴(루퍼스 스웰)이 차고 있는 손목시계를 자신의 것이라 의심한다. 안소니는 폴과 대화하는 내내 폴의 손목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안소니의 손목시계는 그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었던 기억을 상징한다. 사라진 손목시계처럼 안소니가 지나온 시간들이 그에게서 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말미에서 관객은 안소니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안소니가 방문을 열자 병원 복도가 보인다. 병원 복도는 안소니의 집안 복도와 비슷한 구조를 지닌다. 안소니의 병실도 창문의 모양만 조금 다를 뿐 안소니의 방과 거의 비슷하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병원에서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안소니를 덮쳐온다. 자신의 잎사귀가 다 지는 것만 같다며 흐느끼던 안소니는 이내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처럼 간병인의 품에 안겨 서글프게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안소니를 통해 인간이 결코 거스를 수 없는 늙어 죽어가는현실을 보여준다. 이를 지켜본 관객은 자연스레 흘러가는 시간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