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타인의 친절> 리뷰 :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4. 19. 21:14

본문

<타인의 친절>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시작되고 불과 몇 분 만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두 아이를 데리고 가출한 클라라(조 카잔)는 돈 한 푼 없이 무작정 뉴욕에 들어선다. 익명성에 기대 가장 안전하게 숨을 수 있을 곳이기도 하거니와, 그 거대하고 풍요로운 도시에서 먹고 사는 것쯤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이라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는 말로 최면을 걸듯 되뇌지만 그들이 맞이하는 현실은 엄혹하기만 하다. 뉴욕은 날마다 수많은 파티들이 열리고 음식 한 접시쯤 없어져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풍요로운 도시이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그들에게 돌아갈 음식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침대보다도 넓어 보이는 거대한 책상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책이 쌓여 있는 도서관은 있지만, 피곤한 엉덩이 한 짝 걸칠 공간도 빈털터리 도망자 신세인 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제프(칼렙 랜드리 존스)의 사정 또한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일하는 요령이 부족하고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는 일에 서투르다고 그를 굳이 내쫓을 필요까지 있을까 싶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벌어 먹고살기에 경쟁력이 있는 유형의 인물은 분명히 아니다. 그는 직장을 잃어 수입이 끊기며 먹는 것은 물론이고, 누추한 보금자리마저도 빼앗긴다. 곧이어 그가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는 모습을 영화는 너무도 아무렇지 않은 듯 보여준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 실재하는 흔한 장면임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에 관객은 더욱 무겁고 답답한 마음이 되어버린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호의를 갈구하는 클라라와 아이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악인이 아님에도 제프가 마주하는 냉랭한 현실과 그로 인해 생존의 고난에 흔들리는 그들의 눈빛을 보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영화는 도움을 청하는 타인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는 보통의 우리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당신이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니 하룻밤만 묵을 수 있게 해달라는 클라라의 간절한 요청을 거절하는 여관의 데스크 직원 역시, 본인이 직업을 잃고 방을 잃게 될것이 두렵다. 클라라의 부탁을 거절하지만 그녀는 이미 클라라의 처지에 마음이 흔들려 눈조차 피하고 있다. 이쯤에서 누구나 그녀 역시 한 발만 잘못 디디면 클라라와 같은 형편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할 수 있다. 자신도 힘겹게 버티는 현실에서 누구든 타인에게 선뜻 도움의 손을 내밀 수는 없다. 내가 베푼 선의가 반드시 내게 선의로 되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작은 친절의 대가로 내가 갖고 있는 얼마 안 되는 것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설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작은 친절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 영화의 간곡한 요청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가장 마음을 끄는 건 제프와 앨리스(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이다. 죽을 고비까지 넘기는 제프는 누구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앨리스에게 뭐라도 보답하고 싶어 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건강한 몸뚱이밖에 없는 궁극의 결핍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도울 수 있는 일들에 진심이다. 앨리스 역시 업무에서는 물론이고 업무 외적으로도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돌보며 지속적으로 타인을 돕는 일에 매진한다. 오히려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게 더 문제이다. 이 비현실적인 두 인물의 헌신과 노력으로 영화는 선한 영향력의 선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헌신과 노력이라는 것이 그저 작은 배려와 공감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도 얼마든지 그러한 일에 동참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친절하지만 정작 자신의 옆자리는 허용하지 않았던 앨리스를 따뜻하게 포옹해주는 제프의 모습은 무거웠던 관객의 마음을 녹이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섬세하고 사실적인 연출과 아역을 포함한 모든 배우의 열연이 조화를 이루고, 이와 더불어 아름다운 음악이 세상살이에 지친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의 난로 한 개쯤 피워줄 영화이다.

 

-관객 리뷰단 이호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