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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전쟁> 리뷰 : 향 내음이 멀리 퍼지도록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3. 1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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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전쟁>

향 내음이 멀리 퍼지도록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이미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동맹으로 참전한 한국에게 경제적 도약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그리고 고엽제와 전쟁의 후유증을 앓는 참전군인과 베트콩이라는 오명을 쓴 채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베트남 양민이 존재했다. 나는 이 양면을 정규교육 과정에서 학습한 역사로 거리 두기를 했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오며 오히려 (당혹스러운) 웃음이 났다. 왜 피해자도 목격자도 아닌 내가 도리어 위로를 받은 기분이 드는 것일까.

 

생존자의 몸짓과 언어로 보여주는 일상의 모습은 경직된 채 영화를 바라보던 나에게 호기심을 일깨웠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웃는 저 사람은 누구인지. 앞이 보이지 않는 저 사람은 제단을 왜 저리도 화려하게 꾸며 놓았는지. 또 자막으로 설명되지 않는 저 사람의 몸짓은 무슨 말인지. 이런 호기심은 온전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를 카메라의 자리에 위치시켰다. 화면 안에는 감독의 목소리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바로 옆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는 것처럼, 어느 순간 피해자들 가까이에 앉은 내가 느껴졌다.

 

그렇게 지척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체험하던 중, 화면에는 어두운 저녁의 베트남과 위령비가 보이고 내레이션이 흘렀다. 자신은 그저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는 응우옌 럽 씨는 선조들의 죄가 그 후손에게 전가되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한국군이 묻어둔 지뢰에 시력을 잃은 럽 씨의 말은 그 한국군의 자손인 나에게 어깨의 힘을 빼고 피해자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연신 몸짓으로 자신이 봤다고 말하는 딘 껌 씨의 모습은 나를 보고 듣는 시청자의 위치에서, 그 감각과 기억을 모두 가진 증인의 위치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까.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의 모습 뒤로 한국군 학살의 생존자인 응우옌 티 탄 씨의 모습을 겹쳐 한 화면에 담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그 모습은 다음 세대인 탄 아주머니의 자식이나 한국 학생들의 지지로 이어진다. 어렵사리 이루어진 모의 법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용기를 내어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생존자들의 지난한 과정은 감독에 의해 섬세하게 쌓여간다.

 

영화 속 생존자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내 증언을 하고 다른 생존자의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것을 보며, 그리 대단하지 않은 방법이지만 좀 더 많은 이가 생존자들과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위로가 생존자들이 끊임없이 피워 올리던 향의 내음처럼 다른 이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관객 리뷰단 박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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