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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리뷰 : 비행(飛行), 비행(非行) 그리고 비행(悲行)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3. 2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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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비행(飛行), 비행(非行) 그리고 비행(悲行)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근수(홍근택)는 탈북민 보호관(이성준)을 따라 임시 거주지에 발을 들인다. 텅 빈 집 안을 둘러보며 전에 살던 사람이 잘 돼서 나갔으니 너도 잘될 것이다라는 식의 탈북민 보호관의 격려에도, 정착금이 들어 있는 통장을 대신 맡아주겠다는 탈북민 보호 담당관의 일방적인 통보에도 근수는 무어라 말을 더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인다. 근수의 속을 알 수가 없다.

 

지철(차지현)은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며 배달할 때마다 남의 물건에 눈독을 들인다. 현관 앞에 놓인 가방을 뒤져 지갑을 꺼내는 지철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다. 마당에 널린 빨간색 노스페이스 점퍼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모습은 마치 쇼핑을 하는 것 같다. 남의 물건을 훔친 지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오토바이를 타고 유유히 그곳을 벗어난다. 이런 지철에게 도덕적인 양심을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근수의 새 신발을 계기로 근수와 지철은 엮이게 된다. 근수의 약점을 잡은 지철이 온당치 못한 방법으로 이익을 챙기기 위한 공조를 제안한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속고 속이는 일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근수와 지철은 둘 사이의 공조를 끝내려 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는 같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근수와 지철은 아주 절실하게 돈이 필요하다.

 

근수는 형과 함께 남쪽에 정착해 잘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다. 형이 남쪽에 들어오면 49평 아파트를 마련하여 평화롭게 살기를 꿈꾼다. 지철은 한국을 떠나 호주에서 세탁소를 열고 잘 살고 싶어 한다. 근수와 지철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자신들의 과거를 털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 따위는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근수는 북한에서 건너온 탈북자이고 지철은 전과자이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두 사람에게 달린 꼬리표 때문에 시작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호주 이민을 준비하려 유학원 담당자와 상담하는 지철의 표정 변화가 이 영화에서 가장 아프게 기억된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는 순간 전과자라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한다. 왜 안 되냐는 지철의 질문에서 억울함과 서글픔이 가시처럼 돋아나는 게 느껴진다.

 

곰팡이 핀 단칸방을 벗어나도 모텔을 전전해야 하는 떳떳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끝내려 아등바등 애를 쓰는 지철의 간절함은 예상치 못한 근수의 배신으로 산산조각이 난다. 근수도 지철만큼 절실한 목표(형을 찾아 함께 잘살아보는 것)가 있었기에 일말의 인간적 의리는 뒤로 미룬 것이다. 그런데 근수가 지철이 부탁한 물 한 병을 모텔 방 앞에 두고 간 건 어떤 마음에서였을까? 그 마음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근수가 소중히 품고 있었던 마약의 정체가 밝혀지고, 지철은 그 마약을 찾기 위해 파출소로 향한다. 근수와 지철을 다시 꿈꾸게 만든 마약이 허상이었다는 걸 영화는 정말이지 잔인할 만큼 허무하게 드러낸다. 근수와 지철이 멋지게 살아보기(飛行)를 꿈꾸며 자행한 위태롭고 불안한 범죄(非行)는 결국, 비극을 향해 놓인 막다른 길(悲行)이었다는 게 새삼스레 씁쓸함으로 느껴진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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