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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갔어, 버나뎃> 리뷰 :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는지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10. 1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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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갔어, 버나뎃>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는지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건축가 버나뎃. 건축계의 아이콘으로 유명세도 치렀지만 결혼 후 남편 엘진(빌리 크루덥)과 함께 시애틀에서 딸 비(암메 넬슨)를 돌보며 친구도 사회생활도 없이 다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다소 평범한 일상이라고 한 것은 이전에 유명 건축가여서 상대적으로 평범하다는 뜻도 있지만, 버나뎃이 하는 일은 평범한데 그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나오는 대응 방식 같은 것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나뎃은 수면 장애를 겪고 있고, 사람이 많은 장소에 머무는 것도 어려워한다. 고집을 꺾지 않으며, 누군가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굉장히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버나뎃은 평범한일상을 보내는 것이 힘겹다. 버나뎃과 엘진은 딸의 소원으로 남극 여행을 가기로 하는데, 이것이 버나뎃의 일상을 더욱 흔들리게 만든다. 크루즈를 타고 떠나야 하는데, 뱃멀미는 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버나뎃이 일상을 보내기가 어려워진 데는 아무래도 건축가로 잘나가던 시절 어떤 트라우마가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꼭 그것이 백 퍼센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문제든 한 번에 풀기 어려워지지는 않는다. 자신의 건축물이 조롱거리처럼 파괴되는 것을 본 버나뎃은 미국 남부의 화창한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안개와 비의 도시 시애틀로 자리를 옮겼다. 건축계의 아이콘이었던 과거가 무색하게, 덤불이 무성하고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비가 오면 바닥에 빗물을 담는 통을 괴어놔야 하는 집에서 살게 된다. 게다가 이 집의 옆집에 사는 이웃 역시 만만치 않아서, 사사건건 버나뎃과 부딪히게 된다. 여기서 버나뎃은 온라인 비서인 만줄라에게 의존하여 대부분의 것들을 해결한다. 정확히는 해결한다기보다는 집에 비가 샐 때 물을 받아놓는 것처럼 임시방편으로 때운다. 버나뎃은 지금을 잘 살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가 오고 도시설계가 엉망인 시애틀에서의 삶은 언제나 수리가 필요한 집에서만 이루어진다. 지금은 완전히 워커홀릭이 되어버린 엘진이 과거에 반했던, 온 건축계가 주목하던 재능과 자신감 넘치던 버나뎃의 모습은 사라져버렸다. 마음을 열지 못하고 불안해하던 그녀의 지금 모습 역시 본 모습이 아닌, 지금을 견디기 위한 임시방편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버나뎃은 지금까지 임시방편처럼 때워왔던 일이 한꺼번에 큰 문제로 나타나자 어쩔 줄 몰라 한다. 특히 가족과 함께 문제없이 살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문제를 뒤로하고 남극으로 떠난다. 엘진과 비와 길이 엇갈리면서 혼자 남극으로 가게 되지만, 집과 가족이 없이 있는 남극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되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미지의 세계인 남극, 오염되지 않고 햇살이 그 어느때보다 환하게 비치는 남극에서 버나뎃은 새로운 자극들과 창의력이 샘솟게 된다. 남극 기지를 건설하는 일을 우연히 들은 버나뎃은 그 일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린다.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이고 생생한 느낌의 버나뎃으로 변한다. 남극 기지에서 다시 재회한 엘진과 비는 버나뎃의 새로운 모험을 완전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버나뎃이 지금까지의 모든 커리어를 저버리고 은둔하다시피 살며 육아에 완전히 집중한 것이 나쁜 선택이었던 것은 아니다. 딸을 최선을 다해 키우려고 삶의 어느 부분을 잠시 접어놓고 시간과 노력을 쏟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버나뎃이 자기 자신을 보살펴야 할 시간이 찾아왔고, 가족 구성원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향해 나아갈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영화는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 있다. 당신은 로스앤젤레스에 있을 수도 있고, 시애틀에 있을 수도 있고, 남극으로 가는 여정을 이제 막 시작했을 수도 있다. 만약 실제 상황이었다면, 불면증이나 불안증, 국제범죄, 홍수 피해 같은 것들이 마냥 밝은 이야기일 수는 없겠지만, 감독은 이것들을 떠나보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보여준다. 버나뎃의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특히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였으면서 또 한 사람으로 멋지게 살아나가려고 하는 모든 여성을 향한 응원과도 같은 영화다.

 

-송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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