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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별 뒤에 알게 되는 것들> 리뷰 :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가장 대담한 방법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10. 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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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별 뒤에 알게 되는 것들>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가장 대담한 방법

 

영화는 전처(前妻)와 현처(現妻)의 기묘한 동거를 그린다. 캐미(헤더 그레이엄)와 그녀의 딸 애스터(소피 넬리스)는 전 남편 크레이그(션 갤러거)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전해 듣는다. 캐미와 애스터는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전에 살던 집에 방문한다. 캐시는 그곳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 자신들이 살던 때와 달라진 내부 인테리어와 그곳에 함께 있는 사람들 탓이리라. 캐미의 방문은 크레이그의 현재 아내 레이첼(조디 발포어)에게도 불편한 듯 느껴진다. 캐미와 레이첼 사이에 크레이그의 존재가 끼어있다는 사실이 그녀들의 관계를 껄끄럽게 만들고 있다.

 

영화는 퇴거 통지라는 장치로 크레이그의 전 아내 캐시와 그녀의 딸 애스터 그리고 크레이그의 현재 아내 레이첼과 그녀의 딸 털루라(애비게일 프니오프스키)가 함께 지내도록 한다.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 그러나 영화는 오히려 그녀들 사이에서 부딪힘이 증폭될 수 있도록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그녀들의 충돌 속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표현하려 한다. 캐시, 애스터, 레이첼, 털룰라 네 여자 사이에 공통분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크레이그를 떠나보낸,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크레이그의 죽음은 네 여자가 드러내지 않은 진심 안에서 더욱 짙어간다. 그녀들은 진심을 들키지 않으려 각자의 방식으로 애쓴다. 캐시는 레이첼과 털룰라가 새 보금자리를 찾는 동안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자신의 가정을 파탄시킨 여자와 그녀의 딸을 거둔 그녀의 진짜 속내가 궁금해진다. 동시에 캐시의 방 한구석에 자리한 검은색 란제리가 그것에 대한 답을 줄 것이라 예상한다. 캐시가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글렌우드 모텔에서의 일들과 검은색 란제리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애스터는 레이첼과 털룰라를 집에 들인 캐시의 행동을 위선이라고 여긴다. 애스터의 과민함은 부모의 이혼으로 받은 상처를 이유로 보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사실 애스터는 그녀의 절친 개비(타메카 그리피스)의 남자친구인 네이선(찰스 길레스피)과 만나고 있다. 아빠의 불륜을 증오하던 자신이 불륜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으리라. 요동치던 애스터의 감정은 볼링장에서 나눈 애스터와 레이첼의 대화를 기점으로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애스터를 진정 이해하는 사람이 크레이그의 불륜 상대였던 레이첼이라는 것에 이상하게도 위로를 받는다.

 

캐시가 검은색 란제리와 함께 떠올리던 글렌우드 모텔의 정체가 발각된다. 캐시는 그곳에서 이혼한 전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다. 캐시의 배려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던 레이첼을 배신감에 캐시의 집을 떠난다. 털룰라의 생일 파티를 위해 다시 캐시의 집에 모인 네 여자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결국 레이첼과 캐시의 갈등은 폭발하고 그 여파로 애스터와 털룰라는 그 자리에 엄마들을 남겨두고 가출한다. 덕분에 두 엄마와 두 딸이 그동안 드러내지 않은 진심을 내보일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수영장 앞에 비치 베드에 나란히 앉은 레이첼과 캐시는 어딘지 모르게 홀가분해 보인다. 숨겨두었던 진심이 밖으로 나온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애스터와 털룰라는 하룻밤 가출의 마무리로 그녀들의 아버지 크레이그의 화장한 유골을 처리한다. 바닷가에 뿌리려고 했지만 익사한 아버지를 걱정하는 털룰라 때문에 계획을 변경한다. 달리는 차 안에서 애스터와 털루라가 아버지의 유골을 흩뿌리는 장면 뒤로 자유(free)’라는 가사가 담긴 배경음악이 깔린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캐시의 집 수영장에서 캐시, 레이첼, 애스터 그리고 털룰라 네 사람이 함께 물놀이를 즐기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미친 소리 같겠지만 이걸로 다 털어버리는 건 어때요?”라는 레이첼의 대사가 이들이 새로운 일상을 맞이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된 것 같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방법 중에 가장 빠른 것은 엉켜있는 부분을 댕강 잘라내는 것이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다시 엮을 수는 있다. 남겨진 이들이 떠안고 있던 질긴 악연은 이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는 이들의 나날 속에서 다른 모양의 인연으로 엮어갈 것이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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