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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리트의 정리> 리뷰 : 기꺼이 헤맨 자만이 길을 찾는 법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7. 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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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리트의 정리>

기꺼이 헤맨 자만이 길을 찾는 법

 

 영화 <마거리트의 정리>는 수학이 세상의 전부였던 마거리트(엘라 룸프)가 뜻하지 않은 좌절을 통해 새로운 세상은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는 삶을 두고 길을 찾아가는 여정에 빗대어 말한다. 어느 대중가요의 노랫말처럼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건만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나아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맹신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래서일까. 막다른 길을 마주했을 때 대게 당혹을 금치 못한다. 만약 예상하지 못한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막막하여 주저앉아버린 누군가가 필자의 주변에 있다면 이 영화를 조심스레 추천해 보련다. 마거리트의 방황기를 보며 자신이 걸어온(혹은 걸어갈) 길에서 당면한(혹은 당면할) 삶의 위기를 극복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한 가지를 분명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영화의 첫 장면, 학내 교지 편집부원과 마주 앉아 인터뷰에 응하는 마거리트의 자태에는 소위 말하는 공붓벌레의 기운이 가득하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과 캐주얼한 복장, 안경을 고쳐 쓰며 겨우 들릴듯한 소리로 답변하는 숫기 없는 자세. 그러다가 자신의 연구 과제(‘골드바흐의 추측에 관한 새로운 접근)에 관한 질문에 마거리트는 안광을 번뜩인다. 그리고 수학이 자신의 전부라는 그녀의 말에는 애틋함이 서려 있다. 수학만이 삶의 이유인 듯한 마거리트에게 갑작스러운 변수들이 나타난다. 시작은 마거리트의 지도교수 로랑(-피에르 다루생) 밑으로 새로 들어온 제자 루카(줄리앙 프리종)의 등장이다. 마거리트의 일상에 들이닥친 변수들(원치 않는 동료의 등장, 지도교수의 최종 검토 거절 그리고 동료에게 연구 검토를 요청하지 못하는 마음의 벽)은 불안을 머금은 채 누적되어 기어이 논문 발표회에서 불행한 사건을 야기하고야 만다. 자신 있게 연구 결과를 써 내려간 것도 잠시, 마거리트는 루카가 제기한 증명의 오류에 대응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강당을 빠져나온다. 눈앞에 밀려오는 변수들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마거리트는 너무도 허무하게 필생의 연구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원망과 절망만이 드리운 어두운 시기임이 분명하건만, 이상하게도 논문 발표회에서의 해프닝 이후 영화에 담긴 마거리트의 좌절에는 질척이고 텁텁한 맛보다는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감돈다. 아마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삶의 전부였던 수학을 포기한 마거리트의 결단 때문일 것이다. 충동에 가까운 결정이긴 했지만, 익숙한 길을 이탈한 덕분에 마거리트가 비로소 넓은세상을 알아차릴 수 있었으리라. 붕괴된 나의 우주 너머로 또 다른 우주가 있음을 발견한 순간, 마거리트가 느꼈을지도 모를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설렘이 스크린 너머로 스며 나온다. 처음 만난 댄서 노아(소니아 보니)와 룸메이트가 되고, 스포츠샵에 취직을 하고, 집주인의 가게 뒤편에서 벌어지는 도박판에서 마작을 알게 된다. 길을 잃어버려도 그 과정에서 충분히 즐거울 수 있음을 마거리트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거리트의 삶은 여전히 수학을 향해 있다. 영화의 초반부 루카와의 대화에서 등장한 래틀백(Rattleback)의 운동처럼 마거리트의 인생은 역행 운동을 하다가 다시 본래의 방향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기존과는 다른 방향으로 운행하는 과정에서 마거리트는 확실히 시야가 트인 것 같다. 마작패의 배열에서 소수(素數, prime number)의 규칙성을 접목하고, 뒤집힌 골드바흐 삼각형을 보더니 새로운 접근 방향을 찾아낸 그녀를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질 따름이다.

 

 추락의 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충분히 방황한 끝에 마거리트는 마침내 어둠이 끝나는 터널 앞에 다다른다. 한 줄기 빛이 내리쬐는 터널 너머에는 마거리트가 그토록 갈망하던 수학의 길과 방황하는 과정에서 습득한 소중한 사람과 관계하는 길이 포개어 있는 듯 보인다. 마거리트는 까맣게 칠한 벽면을 루카와 함께 증명으로 채워나가며 수학보다 소중한 것(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신에게 생겨남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수식으로 가득 채운 벽을 배경으로 선 채 루카를 바라보는 마거리트의 눈빛에서 분명 무미건조했던 이전과는 다른 떨림이 느껴진다. 영화의 말미, 학회에서 저명한 학자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한 새로운 증명을 제시한 마거리트는 쏟아지는 학회 참석자들의 질문을 뒤로한 채 루카를 따라 나간다. 그리고 뒤에서 달려와 루카를 안고 선 마거리트는 사랑을 고백한다. 혼자가 편하고 수학만이 세상에 전부였던 마거리트가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마거리트의 이야기를 계기로 필자는 본인의 삶이 컨베이어 벨트 위의 안락함에 취해 자신이 할당받은 운명이 알아서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고만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계기를 얻었다. 그렇게 영화는 관객에게 기꺼이 헤매어 볼 마음에 대하여 질문을 남기고 있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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