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실라>
우리가 한 것은 사랑이 맞는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가 나를 좋아한다. 프리실라 볼리외(케일리 스패니)에게 일어난 일은 로맨스 작품에 나올 것 같은 허무맹랑한 얘기 같다. 14살인 본인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엘비스 프레슬리(제이콥 엘로디)는 프리실라에게 고백한다. 군 복무에 치이고, 어머니와 사별한 상황에서 동향 출신인 프리실라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에게 안식처가 된 듯했다.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실존 인물인 프리실라 볼리외가 쓴 자서전 <엘비스와 나>에 수록된 내용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단 한 명의 연인이자 아내였던 프리실라가 그와 함께한 연애 시절부터 결혼 이야기, 그리고 이혼까지의 내용을 담은 책을 소피아 코폴라가 스크린으로 재현해 냈다.
프리실라와 엘비스는 10살 차이라는 나이의 벽이 있었지만, 서로를 사랑했다. 독일에서의 군 복무가 끝난 후 엘비스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도 프리실라는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는 엘비스의 말을 되내며 계속 그를 그리워한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엘비스가 사는 멤피스로 날아가 그와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이 모든 시간에서 엘비스는 프리실라를 절대 성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그였지만 프리실라와는 성관계를 맺지 않을뿐더러 소중한 순간이 될 테니 적절한 때를 기다리자며 오히려 프리실라를 설득한다. 함께 쇼핑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유흥을 즐기고,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볼수록 사랑의 순간보다 위태로운 순간이 더 눈에 들어온다. 짧은 데이트를 즐기고 독일로 돌아온 프리실라는 더욱 엘비스가 그리워졌고, 학업을 채 마치기 전에 멤피스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엘비스와 부모를 설득해 멤피스의 가톨릭 학교에서 학업을 마치는 조건으로 그의 집에 정착한다. 엘비스와 완전히 동거하게 되었으니 분명 프리실라 앞에는 핑크빛 미래가 그려져야 했다.
<프리실라>가 흥미로운 지점은 당대 최고의 스타 '엘비스'가 아닌 그의 일반인 아내 '프리실라'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엘비스의 일터나 무대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고, 영화 속 엘비스는 찰나만 머물고 늘 어디론가 사라지는 인물에 불과했다. 그의 사랑을 바랐지만, 엘비스의 '사랑'을 갖기 위해선 하얀 그레이스랜드에서 홀로 시간을 죽여야 했다. 오로지 그가 텅 빈 집을 프리실라가 온기로 채우길 바랐으므로. 그의 아름다운 갈색 머리를 엘비스의 취향인 검은색으로 덮고, 아무것도 칠하지 않았던 얼굴엔 매일 스모키 화장으로 꾸몄다. 프리실라가 원하는 색, 디자인의 옷을 입는 대신 그 옷을 사주는 엘비스의 취향에 맞춰 입었다. 프리실라는 연인의 억압을 수용하고 무례한 요구에 순응한다.
영화 곳곳에는 <처녀 자살 소동>,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매혹당한 사람들> 등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탁월하게 묘사한 것으로 호평받은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장기가 드러나는 장면이 많았다. 사랑의 결정적인 순간에 맞는 카타르시스는 크지 않고, 프리실라는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처럼 굴며 집안에 갇혀 있었다.
이야기는 프리실라가 엘비스와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를 가질 때부터 분위기가 전환된다. 그동안 열렬히 사랑해 주던 엘비스는 점차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장난치다가도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했으며, 노래 선정 과정에서 프리실라에게 의견을 물어 답하면 성질을 내며 의자를 집어던졌다. 곧바로 연신 사과하며 용서를 구하지만 그 순간순간들은 프리실라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일이다. 처음엔 스캔들에 대해 해명하는 모습이라도 보이지만 결혼한 후엔 오히려 그만 집착해라, 난 이런 것들을 견딜 수 있는 여자를 원한다며 대놓고 프리실라에게 침묵을 요구했다. 속상해하며 우는 프리실라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거나 시간을 갖자고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럴수록 프리실라는 점점 지쳐갔다. 그가 나를 필요로 해서, 엘비스가 자신을 사랑해서 감내한 모든 시간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프리실라> 속 프리실라가 실존 인물과 일부 다른 점이 있는 것은 맞다. 프리실라의 일생 중 비대칭적, 일방적 관계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기에 프리실라가 이혼 전 바람을 피운 것은 뉘앙스로 흘린다던가, 이혼 후에도 엘비스 프레슬리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을 다루지 않은 것처럼. 그럼에도 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하고 싶은 것, 할 줄 아는 것이 없던 프리실라가 스스로 선택해 움직였다는 결말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사랑'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맞는가? 서로에게 느낀 감정은 사랑이 맞다면 어떻게 대해야 했는가. 단순히 연인들의 로맨스 영화로 치부하기에 <프리실라>는 아름답고도 기이하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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