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쓰는 시> 씨네토크
2024.5.11.
초청 : 정다운 감독, 김종신 프로듀서
진행 : 김유진(강릉원주대 환경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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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씨네토크 진행을 맡았고요. 강릉원주대학교에서 환경조경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유진이라고 합니다. 제가 씨네토크 진행이 처음이라서 너무 긴장되는데요. 관객분들 궁금하신 점이나 감상평 잘 들어보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소개 부탁드립니다.
정다운 : 저는 <땅에 쓰는 시>를 만든 정다운이고요. 옆에 계신 프로듀서분은 제 짝꿍이고요. 영화 시작할 때 뛰어다니고, 마지막에 노래 부르는 꼬마 김단우의 엄마입니다. 반갑습니다.
김종신 : 같이 영화 만든 김종신 PD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김유진 : 요새 빠르게 진행되는 시리즈물이 많잖아요. 영화들도 그렇고. 이렇게 속도감이 느리고, 생각할 만한 여지를 주는 영화가 저는 개인적으로 되게 오랜만이어서 보는 것 자체로도 힐링이 됐던 것 같아요. 아마 관객분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으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영화를 만드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종신 : 저희가 <이타미 준의 바다>를 마무리하던 그쯤이었어요. 다른 프로젝트로 정영선 선생님을 만나 뵙게 돼요. 그전에도 정영선 조경가라는 이름은 너무 많이 들었고요. 조경계에서도 많은 얘기를 해주셨죠. 정영선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매력적인 캐릭터에 저희 둘이 반하게 됐고요. 너무 인간적이기도 하고, 유머도 있으시고, 캐릭터가 매력적이어서 저희가 선생님하고 꼭 같이 하고 싶다고 처음 만났을 때 말씀을 드렸고요. 이후에 저희가 용산역 앞에 아모레퍼시픽 사옥이 있는데 그 사옥이 지어질 때 아모레퍼시픽의 건축가들이라는 전시가 있었어요. 그때 저희가 아모레퍼시픽 관련된 건축가분들을 인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선생님을 인터뷰하면서 더 깊게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저희가 자연스럽게 선생님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계기는 그렇고요.
정다운 :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한 공간 이상은 다들 인생의 스폿이지 않을까. 저는 전국에 계신 모든 분들이 정영선의 공간과 연결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정도로 우리 조경계의 1세대이시고, 전설이시고, 여전히 현역이십니다.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여서 선생님을 보면 저런 분을 영화로 담아야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정말 제 인생에 너무 중요한 공간에 선생님의 손길이 묻어 있었던 거예요. 다큐멘터리를 만들려면 정말 결정적인 내적 동기가 필요하거든요. 선생님이 카리스마 있게 인터뷰를 하시다가 끝날 때 아기 얘기가 나오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너는 아기가 몇 살이냐, 나는 손자가 지금 태어났는데 얘기 나누다가 갑자기 사진 배틀을 하게 된 거예요. 선생님 손자가 예쁘냐, 우리 아기가 예쁘냐. 손자가 완전 예쁘더라고요. 우리 아기도 예쁜데 손자도 참 예쁘시네요 그랬더니 카리스마 넘치던 선생님이 할머니 얼굴로 바뀌시는 거예요. 내가 많이 봤던 얼굴인데, 저 얼굴. 저도 할머니가 키워주셨거든요. 저는 세월의 흐름과 시간이 들어있는 얼굴을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고요. 그렇게 컸어요. 저희 할머니께서 저를 키워주셨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할머니 얼굴을 보는 순간, 영화의 구조가 떠올랐고 이 분을 영화로 담아야지 이렇게 생각을 했죠.
김유진 : 저는 영화를 두 번 봤는데 첫 번째 볼 때는 저희 남편이 조경설계하는 업을 하고 있어서 정영선 선생님은 어떻게 설계하시지? 평소엔 어떻게 생활하시지? 뵌 적이 많이 없어서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카리스마 있게 현장을 지휘하시는 모습도 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엄청나게 천진난만하시고,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 같기도 하면서, 물건도 잃어버리고 나가시기도 하고 막 혼잣말 하시기도 하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천재가 나타나려면 저런 순수한 열정이 있어야 되나? 남편이랑 그런 얘기하고 그랬거든요. 선생님을 5년간 지켜보면서 찍으셨잖아요. 가까이에서도 찍으시고, 친해지는 기간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어떤 에피소드 같은 게 있으실 것 같아요.
정다운 : 순수한 열정 말씀하시니까요. 생에 대한 찬사, 그 모든 생명체에 대한 애정과 찬사, 진짜 소녀감성이라고 하죠. 실제로 감탄을 계속하시고요. 일하실 때는 안 그러시지만 일상에서는 실제로 감탄을 늘 하세요. 그다음에 생애에 대한 감사. 크리스천이기도 하시고 기본적으로 감사가 깔려 있으세요.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가 가진 좋은 것을, 계속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데 최대한 더 잘 지켜서, 최대한 더 좋은 상태로 내 손자 세대한테 전달해 주고 싶은 것. 그 세 가지 맥락 안에서 삶이 이루어지세요. 나머지는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집중해서 당신의 기본적인 일을 하시고, 정원을 돌보시고, 손자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그거 이외에는 다른 생활이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정말 그냥 삶 자체가 열정이고요. 작업이 일단 열정이니까요. 그리고 그 외에는 생애에 대한 찬사와 감사. 그게 정말 너무 아름다웠어요.
김종신 : 다큐멘터리를 만들려면 정영선 선생님한테 사인을 받아야 되잖아요. 이 사람들이 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걸 허락합니다라고. 그걸 받는 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결국에 해주셨죠. 그리고 다행히 제작지원금을 받았죠. 최근에 배정한 선생님과 그런 얘기를 나눴어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정영선 선생님, 그리고 선유도 공원, 그리고 정영선 선생님의 정원이라고. 선생님 집을 저희가 사계절만 간 게 아니라 몇 년 동안 계속 갔거든요. 그래서 에피소드 지금 여쭤보시니까 생각나는 게 너무 많아요. 처음에 찾아갔을 때 촬영 허락에 대한 사인을 하시고는 (나는 찍지 말고) 정원의 꽃들과 나무만 촬영하고 다큐멘터리 잘 만들어 이러시는 거예요. (웃음) 선생님이 언론에 많이 노출됐다고는 하지만 작년에 조경계의 노벨상인 제프리 젤리코 상 받으신 이후에도 주요 매체 인터뷰를 진짜 안 하셨어요. 그만큼 촬영 허락을 받기가 어려웠어요. 촬영을 안 한다, 안 한다 그러셨죠. 저희가 아침부터 찾아갔어요. 가면 선생님이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고 밥을 차려주신 적이 있어요. 새벽에 일하고 들어오셔서 밥을 차려주시는 거예요. 선생님 너무 맛있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하면서 식사를 하죠. 요리를 너무 잘하세요. 그게 한 두 번 지나고 나니까 그다음부터는 밥 못해주겠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에 저희가 뭐라고 하니까 “지랄하고 있네” 이런 표현을 쓰셨는데요. 그때부터 선생님이랑 가까워졌구나 그렇게 느꼈어요. 선생님 댁 가는 길에 맛있는 김밥집이 있어요. 가는 길에 선생님께 연락드려서 김밥 사 갖고 간다고 하면 선생님이 그러라고 하세요. 김밥을 좋아하시거든요. 나중에는 선생님 없을 때에도 저희끼리 가서 촬영하고 그랬어요. 반려견 여울이가 있는데 나중에는 저희 보고 짖지를 않을 만큼 선생님 댁에 자주 방문한 거죠. 최근에 통화하면 선생님이 너희들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나 때문에 망해서 어떡하냐고 말씀하세요. (웃음)
김유진 : 배정한 교수님이 『환경과 조경』 5월호에 <땅에 쓰는 시>에 대해 쓰신 글이 있더라고요. “영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으로 계절을 순환하며 선유도공원의 공간감과 시간성을 포착한다.” 영화 속의 시퀀스나 시간성을 처음부터 구상하신 건지, 아니면 찍으면서 생각하시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정다운 : 그럴 리가 없죠. 처음부터 다 만들어 놓고 시작을 해야죠. 왜냐하면 저희가 조경이라는 자연성을 다루잖아요. 자연성은 시간이고 저희가 시공간 관련된 작업을 하는 팀이에요. 그러니까 사람의 인격은 어떤 곳에서 어떤 시간을 어떤 식으로 보냈는지에 따라서 다르게 구성되잖아요. 그러니까 사람 그리고 건축, 여기서 건축은 공간성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시공간성인 거죠. <이타미 준의 바다>에 공들여서 그 부분을 많이 설명을 했었고요. 그리고 영화는 시공간의 예술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다 맞닿아 있고, 기본적으로 저는 시간성의 기본이 자연의 생명력이라고 생각을 하고, 저희는 실제로 그 땅에서 왔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자연적 요소가 없으면 숨을 잘 못 쉬고 그래요. 저는 그런 스타일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서 자랐고요. 그래서 자연의 생명력이 너무 중요하고, 저희 조경 프로젝트 <땅에 쓰는 시>는 기본이 시간성인 거죠. 기본이 계절인 거고. 다시 봄으로 순환하는 그 과정의 디테일을 전부 다 잡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시간성을 계절로 따라가면서 아이로 시작해서 아이로 끝나는 기본적 골조는 처음부터 생각하고 들어간 거였고요. 아이에서 시작해서 아이로 끝나는 이유는 저희 작업은 미래 세대에 대해 바치는 연서, 사랑의 편지 작업이에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시간보다 미래의 아이들이 살 시간이 사실 저희에게 더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좋은 공간에서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굉장히 많은 혜택을 받은 것 같은데 저희 아이 세대를 보면 물질적인 거 말고는 아주 많은 걸 박탈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굉장히 안타깝고 사실 굉장히 속상하고 걱정이 돼요. 굉장히 절박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희 작업은 좋은 생각과 좋은 철학 그리고 이것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도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희의 바람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미래 세대에게 바치는 연서라고 저희 작업을 표현해요. 그래서 그 자연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특히 생명력이라는 지점에 있어서 공간을 다루는 분들이라면 저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타미 준의 바다>에서도 그 지점을 차분하게 외치면서 얘기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자연성이에요. 그래서 시간과 계절의 순환이라는 부분은 저희 영화에서 굉장히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죠. 작업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까 굉장히 많은 공간을 다녔고, 어떤 시즌에 어디를 가야 될지는 제가 리서치를 하기도 하지만, 당연히 선생님께서 권해주시죠. 이 공간은 언제 꼭 찍어야 된다고. 언제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가세요. 그 계절에는 거기를 꼭 찍어야 되니까 데리고 가시는 거거든요. 마지막 선생님과 손자의 정원으로 가는 그 구조가 사실은 가을까지 가는 거예요. 다시 봄이 되고 그리고 여름이 오고, 마지막 우드랜드 묘지공원은 가을입니다. 그래서 사실 가을까지 시즌이 더 지나간 거예요. 그리고 이제 멈추죠. 다큐멘터리는 완성이라기보다는 어느 순간 멈춰야 되는 것 같아요. 이제는 극장에 올려야 하니까.
김유진 : 저는 첫 도입부가 계속 기억에 남더라고요. 왜 그럴까? 하면서 다시 봤는데 약간 정지된 사진에서 시작을 하잖아요. 이후에 자연물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고, 빛이랑 바람이 보인 뒤에 천천히 이동하더라고요. 그리고 아이가 들어와서 뛰놀기 시작하고. 일상적으로 우리를 감싸주고, 지켜주고 있던 공간이 내 앞에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나타나니까 거기서 오는 약간의 뭉클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되게 느리게 움직이면서 살짝 위에서도 보고, 약간 아래에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니까 그게 정영선 선생님의 공간과 아이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는 시선들인 것 같아서 뭉클함이 느껴지고, 그 정서가 영화 끝까지 이어졌던 것 같았어요.
김종신 : 감독님이 지금 하신 말씀 너무 좋아하실 거예요. 그게 저희 의도였거든요. 처음 보실 때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 나오면서 여기가 어딜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고, 어떤 아이가 등장하는데 결국에 그 아이를 따라서 이 영화로 저희가 인도하는 장치였거든요. 지금 말씀해 주신 게 말하자면 연출의도의 모범답안이죠.
정다운 : 그리고 사진 같은 스타일에서 아이가 나온 뒤에 속도감이 변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되게 감사한 거예요. 왜냐하면 만드는 사람이 내레이션으로 설명하지 않았잖아요. TV 다큐는 내레이션으로 설명을 해주죠. 설거지를 하면서도 내레이션이 꼭 들어가요. 놓치지 않게 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래서 영화랑 메커니즘이 다릅니다. 우리 같은 극장용 영화는 그런 거 하면 안 됩니다. 똑같은 걸 설명해 주면 안 돼요. 저희가 원래 은유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데요. 이 영화는 더군다나 은유라는 걸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을 했고요. 그중에 하나가 오프닝 시퀀스예요. 이 영화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고, 그 공간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겠구나 그래서 결국 어떤 방향의 이야기를 하겠구나라는 걸 오프닝 시퀀스 안에 담는 게 저희 스타일이거든요. <이타미 준의 바다>도 그렇고,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도 오프닝 스퀀스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를 굉장히 은유적으로 표현을 하죠.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해주신 게 일상으로 보인 그 공간이 의미를 획득하는 순간, 그리고 의미를 창조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예요. 그것이 저희에게는 미래 세대고요, 저희 아이가 등장을 하면서 속도감이 바뀌고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픽스 컷이었다가 그 아이가 들어오면서 그때 카메라가 움직이기 시작해요. 그러니까 공간은 사람과의 관계성에서 의미가 생겨나는 것이죠. 그것이 특별한 장소가 되는 거죠. 장소성을 획득하는 건 사람과의 관계인 거고, 사람을 위한 공간인 거고, 사람을 위한 이야기인 거죠. 결국은 어떤 공간을 다음 세대에게 줄 건지, 어떤 식으로 자연과의 교감 아래서 어떤 인물로 컸으면 하는지 그런 어마어마한 걸 영화에 집어넣은 거예요. 그걸 아이의 행복한 표정에도 집어넣고, 대동여지도를 만드신 김정호 선생님의 아름다운 손길과 그런 메타포가 다 그렇게 확장이 되는 거예요. ‘땅에 쓰는 시’는 선생님의 표현이십니다. 당신의 철학을 설명하실 때 하시는 표현이고요. 왜 땅에 쓰는 시인지를 저희는 영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니까 영상으로 표현을 한 거죠. 선생님이 실제로 당신의 철학을 설명하실 때 오프닝에 김정호 선생님의 대동여지도를 보여주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답다는 걸 상직적으로 표현하시거든요. 조선시대로 돌아갑시다라는 얘기가 아니라 김정호 선생님께 대동여지도를 만든 마음, 애민 사상이잖아요. 기본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기본적으로 우리의 산천을 사랑했던 마음이 지도 안에 들어있죠. 그 지도는 그대로 예술이 됐습니다. 너무 아름답잖아요. 그 자체가 선생님께서 작업을 하시는 방향성이에요.
김종신 : 그런 말씀하시는 분들 많은데, 영화에서 정영선 선생님께서 국토라는 표현을 많이 쓰신다고요.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국토에 대해서 감독이 꼭 전달하고 싶었던 게 그런 거였던 것 같아요.
정다운 : 기본적으로 정원이라고 하면 사실 개념이 굉장히 좁아집니다. 정원이라는 건 에덴동산을 짓는다는 서구의 개념인 거고요. 경계를 만들고 그 안을 에덴 동산화시키는 게 정원의 개념이에요. 근데 이 개념은 옛날 선비들이 정자를 어디에 지을지, 정자에서 어디를 바라보면서 시를 지을지 결정하는 한국의 정원 개념과는 맞지 않는 거죠.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에 하나가 창경궁 비원에 외국 건축가나 외국 조경가분들을 손님으로 모시고 가잖아요. 그러면 우와, 멋지다고 하세요. 한 바퀴 돌고 난 다음에 정원이 어딨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당신이 지금까지 둘러본 이 모든 공간이 다 정원이다라고 설명을 하죠. 정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담에 둘러싸인 곳이 정원이라고 생각하니까 정원이 어딨냐고 자꾸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창경궁 비원을 보고 정말 쇼크를 먹으세요. 진짜 깜짝 놀라시는 거예요. 그냥 다른 거예요. 우리 민족 스케일이 그 정도입니다. 저 경관을 우리 마당 앞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경험이고 개념이잖아요. 산과 강과 바다를 자기 집 안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에 건축도 굉장히 개방적인 거죠. 사방으로 다 트여 있고 우리나라 건축이 굉장히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공기 순환을 하기 때문이에요. 요 앞에 마당만 정원이 아니기 때문에 시선의 확장도 건축에 포함되죠.
김유진 : 학생들도 있고 또 시민분들도 계시니까 질문이나 감상을 받아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 1 : 건축적인 부분과 조경에 대한 부분을 넘나들면서 설명을 많이 해 주셨잖아요. 제가 딸이 둘인데 큰 애가 건축을 하고 작은 애가 영상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감독님이 남 같지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주변에 혹시 건축 관련된 분들이 계신지 궁금하고요. 사실 영화 만드는 일이 굉장히 힘드시잖아요. 감독님의 부모님은 어떤 역할을 해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종신 : 정다운 감독님의 부모님은, 참고로 제 장인장모님이신데, 두 분은 교직에 계셨고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어요. 방임형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 주셨던 것 같아요. 저희가 영화 현장에서 만났는데, 이후에 감독님은 건축대학원을 갔어요. 영국 캠브리지 건축대학원에 건축과 영상이라는 과정에서 공부를 해서 지금 이런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주위에 건축가분들이 계셨던 건 아니었어요.
정다운 : 한 가지만 덧붙이면 자연에 애들을 풀어놓고 키우면 진짜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존경하는 유시민 선생님께서 뇌 과학자한테 어떻게 하면 똑똑한 애들을 키울 수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뇌 과학자 선생님께서 자연에서 놀게 하고, 시를 읽게 하라고 그러셨어요. 저희 영화잖아요. 저희 영화 전 국민이 다 보셔야 돼요. (웃음) 제가 어렸을 때 진짜 시골에서 자랐고요. 방임형이셨고요. 저희 부모님은 정말 당신들의 일을 사랑하시는 분이셨어요. 우리가 밥을 먹든 말든 식탁에서 두 분 끼리 대화를 하시느라 늘 바쁘신 거예요. 그래서 저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하고 결혼하는 게 제 꿈이었고요. 어렸을 때 진짜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컸어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도시로 오게 됐는데, 타워팰리스가 눈앞에서 올라가는 걸 봤어요. 충격을 어마어마하게 받았죠. 그러면서 자연 이외의 공간에 대한 감각, 특히 건축에 예민해졌어요.
관객 2 : 제가 산림학과에서 편입을 했는데 조경학과 들어오고 설계에 대한 부분은 처음 배워봤거든요. 스케일을 세세하게 측정하고 디테일하게 들어가는 그런 부분이 생태를 관찰하는 것보다는 되게 어렵더라고요. 근데 제가 예전부터 건축물을 보는 걸 좋아했어요. 건축에세이도 읽어보고 주변에 알아보니까 건축대학원이라는 데가 있더라고요. 감독님께서도 건축대학원을 나오셨다고 하셔서 설계에 대한 어려움이 있지만 진학했을 때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다운 : 저는 설계 디자인 전공은 아니고요. 건축대학원에 있는 건축과 영상이라는 융복합 학과였어요. 근데 조경이랑 건축을 같이 공부하시는 게 최고예요. 실제로 그런 분들이 많이 계세요. 건축하신 다음에 조경하시거나, 건축, 조경 둘 다 공부하시고. 진학 상담은 나중에 교수님께서 더 잘해주실 거예요. 근데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우리의 공간을 더 좋은 공간으로 짓기 위한 과정에서 조경과 건축은 같이 가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건축 문화가 조금 더 발전됐다고 소위 그렇게 표현이 되는 유럽이나 일본의 케이스를 보면 조금 규모가 큰 프로젝트에 건축가와 조경가 두 부류가 처음부터 같이 들어가요. 그게 제일 좋은 프로젝트로 갈 수 있는 방향인 거죠. 그러니까 맥락과 관계성 안에서 땅의 미래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조경가와 그 땅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와 동선이나 이런 디테일들을 아름답게 풀어내는 건축가가 합쳐졌을 때 최고의 프로젝트가 나온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제발 그런 문화가 한국에도 정착됐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건축이 먼저고, 그다음에 조경이 건축의 모자란 부분을 커버하죠. 좀 부족한 것 같으니 꽃과 나무로 채워주는 거죠. 커버하는 게 조경이 아닙니다. 땅을 만지는 게 조경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선생님이 땅을 계속 보시고, 국토를 생각하신 거예요. 조경은 꽃과 나무를 심는 소위 가드닝의 개념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건축과 조경이 앞으로 같이 갔으면 좋겠고, 교육도 같이 시켰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까 진로와 관련해서 제가 말씀드릴 입장은 아니지만, 설계나 디테일이 어려운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낯설 수는 있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맥락을 보고 관계성을 보고 내가 어떤 조경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것 같아요. 내가 이 공간에 어떤 중요한 자연성을 넣어서 사람들에게 더 좋은 공간성을 줄 수 있을까? 맥락을 해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앞을 바라볼 수 있을까? 왜냐하면 조경은 시제가 미래입니다. 지금을 보고 짓는 게 아니에요. 적어도 1년은 지나야지 짐작을 할 수 있는 게 조경인 거예요. 시제가 미래기 때문에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할 수밖에 없어요. 미래에 쓸 사람들을 계속 생각하고, 생명을 다루는 작업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게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요. 함부로 내가 무엇을 다했다는 식의 조경가분도 계실 수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대부분은 그런 자세가 아니에요. 생명에 대한 존중이 있기 때문에. 꽃과 나무를 함부로 다루시면 선생님의 철퇴가 떨어지십니다. 진짜 장난 아니게 무서우세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데 어떻게 너희는 그렇게 함부로 할 수 있느냐고 하시거든요. 그래서 생명과 협업이라는 자세 때문에 조경가분들은 웬만하면 괜찮으신 분들인 것 같아요. (웃음)
관객 3 : 일단은 한 편의 시를 너무 잘 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만들었을 때 똑같이 잘 만들면 기술자라고 얘기를 하죠. 근데 그 사람의 색깔이 보일 때는 저희가 작가나 예술가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타미 준의 바다> 감독님이 사실 누군지 관심을 갖지 않고 봤는데, <땅에 쓰는 시> 오프닝을 보면서 왠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감독의 색채가 느껴지는 점에서 좋은 감독이구나라는 생각을 했고요. 정영선 선생님께서 굉장히 행복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와 뜻을 이렇게 영상으로 담아줄 수 있는 점에서 행복하셨을 것 같은데, 보시고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궁금해요.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감사하셨을 것 같아요.
정다운 :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그 말씀 그대로 전해주세요. (웃음) 선생님은 당신이 화면에 나오시는 걸 너무 힘들어하세요. 조금 잘못된 게 있으면 혼을 내실 때도 있었고요. 다 끝나고 나서는 고생했다고도 말씀하셨어요.
김유진 : 선생님이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되게 행복하셨을 것 같아요. 조경가분들의 작품이 사라지거나, 완공되지 못한 채 스케치로 남는 경우들이 있는데 영화에 그런 것들을 다 담아주셔서 감사하고 차기작에는 어떤 것들을 계획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정다운 : 저는 우리의 좋은 것이 아주 오랫동안 무시당하고 아니면 무시를 해야 된다고 교육을 받았던 시대가 있었잖아요. 과거에 그렇다 치고 그다음에는 회복이 돼야 하는데,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좋은 걸 제대로 모르고, 은근히 우리의 것을 무시하거나 외국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면 대접받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작정하고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K-아키텍처, 한국 고건축과 전통 정원으로 영화를 잘 만들어서 외국에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김종신 : 아주 즐거운 오락 영화가 90% 이상의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와중에 저희 <땅에 쓰는 시>에 관심 가지시는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네요. 개봉하고 사실 굉장히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데요. 아무튼 저희는 조경이 중요하고, 그것이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라는 걸 영화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으면 굉장히 보람을 느낄 것 같고요.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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